이상하게도, 책읽기와 다른 것들을 함께 꾸준히 즐기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예를 들어, 게임과 TV, 영화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함께 꾸준하게 즐길 수는 있어도, 이것들 중 하나와 책읽기를 함께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요즘, 일도 바쁘게 돌아가고 (다행이다...), 스타 2-2가 나왔고, 팟캐스트에서 딴지 라디오의 이런 저런 방송을 듣고, 야구 시즌이 시작했고, 등등의 일들로 주의가 많이 분산되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책이 들어갈 공간이 머릿속에 잠시나마 부족했던지, 책읽기도 뜸했고, 리뷰도 뜸했다. 뇌의 공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compartmentize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조리 버려야 한다는 홈즈의 말을 살짝 실감한다.
스타 2-2를 하기 위해서 2-1을 끝내려고 게임에 치중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때늦은 PS3의 tekken 6의 온라인 대전에 빠져, 하루는 퇴근 후의 저녁 시간을 온전히 다 보내버리기도 했으니, 그간의 책읽기는 운동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warming up시간, 그리고 매우 private한 몸을 비우는 시간에 주로 할 수 있었다.
언더그라운드 시리즈는 하루키가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살포사건을 접한 후 느낀 바 있어 르포 형식으로 남긴 글이다. 첫 권은 피해자를, 두 번쨰는 옴진리교 신도들을 인터뷰하고 내용을 그대로 정리한 것인데, 인터뷰이를 잘 리드하며 말을 끌어내는 재주가 돋보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그의 생각이 많이 나오는 것은 없다. 권말에 그의 감상, 그리고 하야오와의 대담을 통한 일종의 토론과 분석이 이어지는데, 이 역시 내 나라/민족의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지금으로써는 일본에 국한된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아니, 많은 것은 운명이나 카트마에 슬쩍 던져버리는, 일본인 특유의 사고가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집단 무의식에 녹아 있는 듯 하여 좀 역겹기까지 했다. 전쟁도 그런식으로 해석하는 국민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유형의 사고가 우리나라에서는 친일파들이 흔히 얘기하는 그땐 다 그랬다, 어쩔 수 없었다류의 변명과 통하는데가 있어 더더욱 맘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본 하루키의 글에서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하루키는 우익이나 보수, 극우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말이다.
로맹 가리의 책을 먼저 읽고 그의 일대기를 읽으라던 김영하 작가의 말에 따르려고 했으나, 읽고 나니 오히려 그의 작품을 접하기 전에 그의 일대기를 읽고 충분한 background, 즉 그의 작품이 되는 수 많은 스토리들의 모티브를 알고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버그의 자살은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나 로맹 가리는 자살히 확실한데, 왜 그랬을까? 전형적인 마더 콤플렉스로 평생을 살고, 많은 것을 이룬 그가, 세버그라는 여자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그리도 힘들었던 것일까? 그의 작품을 좀더 읽고나서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