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권인가의 책을 읽고 난 후, 또 리뷰가 밀려버렸다.  무슨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서재를 만든 이유가 책을 읽고 난 후 정리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근 2년간 꾸준히 해온 일이기에 아무래도 밀리면 좀 그렇다.  읽고나니 '가족'이라는 테마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있지 않나 싶다.  순서보다는 그냥 생각난 것들에 맞춰 정리해 본다.

 

천명관 작가는 꽤나 unique한 작가로 내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일단 그의 책은 지금까지는 모두 재미있다.  그를 단숨에 등단작가로 만들어준 '고래'가 아닌 최신작이자 화제작이었던 '나의 삼촌 브루스 리'로 시작해서 거꾸로 읽어간 것에 더 가깝지만, 어쨌든 그렇다.  이 책도 단숨에, 한 호흡에 다 읽어버렸는데, 열정적으로 읽히는 책은 열정적으로 단숨에 쓰인 책이라는 장정일의 말대로라면 천명관 작가는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책을 써내련간 것이 분명하다.

 

가족은 무엇일까?  소위 핵가족시대의, 거의 모든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어가는 시대에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거의 50에 가까워가는 막장인생의 큰아들, 그리고 실패한 영화감독인, 역시 나이를 꽤나 먹은 화자, 그리고 시든 물장사 출신의 여동생, 그들 모두는 각각 배다르고 씨다른 형제들.  공통점이라면, 뭔가 일이 될때는 엄마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고, 힘에 부치면 - 일컨데, 도입부에서의 화자처럼 더 이상 팔아먹을 것도 없어진 상태 - 집으로 기어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구식 연립주택에서 아웅다웅하면 인생의 후반부를 잠깐이지만 다시 함께 보내게 되는 이 '고령'가족을 이어주는 이는 역시 엄마다.  그것도 자식들이 돌아온 것이 못내 싫지만은 않아보이는, 어디서 난 돈인지, 고기를 구워주고, 좋아하는 반찬을 올려주는 그런 엄마 말이다. 

 

이 책을 보면, 그래도 믿을건 피붙이뿐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 사건이 터지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른 구성원은 인생의 어떤 시기의 위기를 넘겨왔으며, 넘길 것이니 말이다.  가족예찬소설이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스토리 전체에서 흐르는 끈끈한 가족의 정이랄까, 의리랄까 그런게 있었다. 

 

다 늙어, 황혼을 넘어가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잠시나마 그녀의 사랑과 함께 하는 장면은 그래서 쓸쓸하면서도 일견 아름다운, 좀 찡한데가 있다. 

 

이 책은 지난번에 읽고 간략한 후기를 남긴바 있지만, 어제 빨책에 나온 김영하 작가와 이동진 DJ의 대담을 듣고 몇 개 생각난 것이 있어 다시 올리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뜬금없이 14-5세기경의 유명했던 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일종의 illusionist계열의 마술인데, 마술사가 하늘로 던진 밧줄을 타고 올라간, 그리고 조각나 죽어 떨어진 동자를 살려내는 것이 핵심인데, 원나라 황제앞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도 잘 속은 황제는, 그래서 즐거웠던 황제는, 어린 내시를 죽이고 과연 마술사가 이를 살릴 수 있을까 보고 싶어한다. 

 

내시가 동강나는 것을 본 마술사는 다시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다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두 가지의 상징성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책에서도 언급된 바, 남겨진 동자의 운명에 대한 것.  소설속에서는 그 엄청난 초능력같은 것을 보인 리더, J가 떠난후 남겨진 자들의 운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  또 하나는,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작가의 복선인데, 에필로그를 보면 르포타쥬의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이 사실은 '뻥'이란 것을 미리 깔아놓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김영하 작가는 이 소설의 모티브를 신약성서에서, 그리고 그가 헌병생활을 하던 수원의 빈민촌 아이들, 너무 가난해서 17세 정도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에서 나와 정글같은 약육강식의 세계에 맨몸으로 던져지는, 필경 술따르는 여자와 용역철거반, 룸싸롱 웨이터 등, 몸뚱이로 하는 온갖 험한 일을 할 labor pool의 주요 공급원이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찾았다고 한다.  소설일까, 르포타쥬일까 모호하게 보이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처럼, 나도 처음에는 취재소설로 생각을 했다.  깊이 의미를 따져가며 상징성을 찾기에는 얕은 내 독서력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중점을 두는 에필로그 - 40페이지에 달하는 - 보다도 나는 왠지 작가의 말은 프롤로그에 있다는 생각.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아마도 당신은 잘 속은 것, 그러니 사실유무를 확인하려 드는 것은 마술을 보고 즐거워하며 내시를 죽여 마술사가 이를 다시 살리는가를 보려하던 원나라의 어린 황제의 멍청한 짓 같다는 것.  아닐수도 있지만, 내내 그 생각을 했기에 적어놓았다.

 

젊은 시절과 훗날 나이가 좀 든 빌 브라이슨의 좌충우돌 여행기라고 보면 되겠다.  좋던 시절, 좀더 심플하던 시절의 여행과, 이 책을 쓰던 당시의 여행이 오버랩되면서 떠오르는 이런 저런 단상과 함께, 그가 겪은 유럽사람과 나라의 이야기, 그리고 항상 그를 투덜거리게 만드는, 그러나 위트있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버린 수 많은 에피소드들을 볼 수 있다.  

 

천국같은 나라로 생각되는 곳이 꼭 그렇지만은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는 좋은 유럽과 미국인의 관점으로 보는 좋은 유럽은 분명히 시각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한다.  

 

김중혁 작가가 그랬다.  자기는 여행에서 하는 고생이나 겪는 실패가 두렵지 않다고, 그걸 소재로 해서 글을 쓰면 그만이니까.  사실 잘 된 여행은 글의 소재가 되기 어렵다고.  이 책을 보면, 일견 이해가 되는 말이다.  하다못해 여자를 꼬시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을때, 스웨덴의 무성의한 역무원때문에 겪은 고생, 기차안에서의 불쾌한 동행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많은 실패담이 있었기에 이 책이 나왔을 것이다.  빌 브라이슨은 최근에 읽기 시작했는데, 그의 책도 조만간 모두 거두어들이고, 영문판도 구해서 비교해보고 싶다.  못내 아쉬운 번역부분이 좀 있어서이다.  

 

기자생활을 거쳐 지금은 DJ가 본업인 이동진의 책이다.  내용은 사실 빨책에서 많이 인용되어 하나도 새롭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이동진 DJ와 김중혁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이동진 DJ를 보면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정리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많이 보인다.  어떤 impression으로 형상화하여, 한 두마디의 문장으로 딱 정리가 되는건데, 이게 사실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단순한 '글쟁이'도 되지 못한다는 그의 너스레가 말 그대로 너스레이고, 실상 그는 상당한 장서가이며 독서가, 그리고 글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김승옥 작가를 가장 좋아해서 그의 글은 모두 읽었다는 사람의 내공이 그리 얕을리가 있겠는가?  비록 wisdom house의 발음을 mister mouse같이하여 매우 오래 나를 헷갈리게 했지만, 영어는 한국의 국어가 아니니까 패쓰!  조금은 상업적이지만, 깔끔한 글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나도 그처럼 마구잡이로 책을 사들였으면 좋겠다 (지금도 충분히 마구잡이라고 할 사람들, 내 주변에 여럿있다만, 뭐 그렇다는 거지).

 

그 밖에도 지금 읽고 있는 영어책을 몇 권 소개하려 했으나, 워낙 오래된, 그러나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라서 그런지, 알라딘에 reference가 없다.  oh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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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3-17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마음으로 아끼는 사람들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줄 알고, 스스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눈여겨 읽을 줄 안다면,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 생각해요.

transient-guest 2013-03-19 02:50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에요..ㅎ

달사르 2013-03-2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책 정리의 의미, 좋아요. 그렇게 정리를 한 번 하면 책 내용이 더 오래 간대요. 그리고 두고두고 생각나구요.
저도 간만에 책 한 권 읽는 중인데, 중간중간 정리의 의미로 막막 포스팅하고 있어염. ^^

트란님은 여전히 바쁜 와중에도 책 많이 읽으시네요. 힛.

transient-guest 2013-03-25 03:02   좋아요 0 | URL
정리를 해도 자꾸 잊어버리게 되네요. 어릴때하고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물론 그때만 해도 책이 귀한펀이라서 있는 책을 읽고 또 읽고 하긴 했었지만요.. 그저 꾸준히 읽는다라는 행위를 이어가는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