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을 참을 수가 없었던 얼마전, 알라딘의 적립금을 탈탈 털어서 산 세 권의 책들 중 하나였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드디어 읽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온 것.
요녀석들 중 하나. 읽으면서. 참으로 간단하고 직설적인 화법이라고 느끼면서 읽어내려갔는데, 읽는 내내 이것은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미국의 근현대문학이라고 하면 스타인벡 정도를 알고 있기에 헤밍웨이의 몇 작품들은 알았어도 정확한 시기를 알길은 없었다. 그런데, 책 후기에 보니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써, 마지막으로 문학적인 명예를 안겨준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냥 헤밍웨이의 비극적인 최후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고 하면 과장일까? 지친, 자연에 순응하는, 그러나 허공을 잡는듯한 노인의 고기잡이에서 나는 문득 말년의 피로를 느낀 것 같다.
어떻게 해석을 하더라도 비평가들의 관점과 비슷할 수도 없겠지만,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노인과 바다'는 심하게 이야기하면, '죽음'과 '허무', 그리고 '고독'의 냄새가 너무 강했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 - 그리고 그의 최후 - 가 읽는 내내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들은 좀더 힘이 넘치는데, 이는 젊은 시절 그의 기개, 무모함, 열정,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젊은 헤밍웨이는 그의 친구 - 이자 선배였던, 그 시절 이미 퇴락해가던 - 피츠제럴드를 혹평한 적이 있다는데, '노인과 바다'를 쓰던 무렵의 그는, 피츠제럴드를 떠올렸을까?
헤밍웨이의 다른 책들도 모두 읽어볼 것이라 결심하니, 전작대상의 작가는 또 하나가 늘었다. 그래도 김영하, 로맹 가리, 발자크는 이번에 조금 시작을 할 수 있으니 한 권씩, 하나씩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외상장부를 갚으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외상장부를 긋는 그야말로 단골술집에서 술에 취한 모주꾼같은 기분이 난다.
헤밍웨이의 다른 책들은 좀더 힘이 넘치는데, 이것은 그의 질풍노도의 시기와도 관련이 있다.
'많이도 쓰셨구랴. 언젠가는 한 권, 한 권씩 읽어내려가면서 젊고 거침없던, 정열적이던 당신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내 당신을, 아니 세계대전 전의 황금시대를 생각하면서 사놓은 압생트로 리큐르를 한 잔 만들어 놓고 당신을 만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