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연달아 하루키의 예전 작품들을 읽었다. 두 작품 모두 그의 소품집이나 창작에세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초기의 글들인데, 특히 이 둘은 훗날의 거작이 되는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1Q84등의 밑그림이 되는 일종의 습작과도 같은 작품들이기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실제로 작가도 그렇게 언급했지만, 후기의 걸작들은 이 둘에서 다루어진, 그리고 연습되었던 이야기들이 좀더 다듬어지고, 구체화되었으며, 정립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둘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사정상 먼저 읽어버린 해변의 카프카, 노르웨이의 숲, 그리고 1Q84의 내용과 케릭터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오야마에서는 아오마메를, 사라진 스미레를 보면서 다른 세상으로, 그러나 겹쳐진 세상으로 이동한 아오마메가 떠올랐고, 스미레와 뮤, 그리고 주인공의 삼각관계에서는 역시 상실의 시대의 관계들이 떠올랐다. 그 밖에서도 다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하루키 특유의 고독, 허무, 왜곡된 시공간의 굴절 같은 것들이 습작된 흔적을 보았다.
핀볼기계를 찾아 헤메는 주인공을 보면,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소중했던 그 무엇을 한번은 찾아보게 되는 우리를 보았고, 끝내 찾은 핀볼기계와의 짧은 조우 다음에 돌아서는 주인공을 보면서 역시 추억은 추억속에 간직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하면서 겉도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볼 때, 스푸트니크 - 인공위성 - 을 이 책을 제목에 넣은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같다. 이 밖에도 무엇인가 더 쓸 이야기가 있는데, 요즘은 slow한 사무실에 혼자 몇 일 앉아있다 보니 머리가 굳어버려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쓰여질 이야기라면 이 책들을 다시 읽을때 또 떠오를 테니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서점에서 구입한 Invisible Man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옛날에 나온 책 답게 책 주머니도 따로 있고, 종이 재질도 맘에 든다. 역시 모든 것인 마구 나오는 요즘보다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었던 예전의 것들이 더 오래 가는 것 같다. 책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