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습관을 만드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습관이 없어지는 시간은 금방이다. 해서 완전체 새벽형 인간이었던 나 또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어쩌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넉넉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여유와 기쁨을 맛보고나면 다시 새벽형으로 바꾸려고 노력할 마음이 들지만 밤잠을 설치고 아슴아슴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금새 눈이 떠지고 일어날 시간이 되면 몇 시간 더 뭉개고 누워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나로 마음이 넉넉하여 새벽에도 잘 일어나게 되니 그나마 주말 이틀엔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몸도 풀어준 후 gym이 여는 시간에 맞춰 운동을 갈 수 있는 것이다. 내심 매일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은퇴하거나 은퇴한 마음가짐으로 부담 없이 일을 하다가 내키면 훌쩍 여행을 떠나버릴 수 있는 삶이 오면 새벽 세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밤 아홉 시면 잠자리에 드는 매일을 꿈꿔본다.
좋은 와인책은 넘쳐나지만 내가 읽어본 몇 권을 base로 하여 말하자면 일단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기본에 충실한 나머지 지식과 정보로 가득하지만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다. 더욱 중요한 건 이들이 다루는 standard와인 대부분이 가격이 어마어마한 유명에티킷이라서 사실 책을 보면서 한번 마셔볼 생각이 들어도 구매할 생각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시중에는 많은 와인에세이들이 있고 이들은 좀더 가성비가 좋은 와인을 많이 다루고 있으니 잘 맞는 책을 구해서 와인을 배워보면 좋겠지 싶다.
이 책은 우연히 구했고 우연히 그날 도착한 책박스 두 통에서 먼저 읽은 책이다. 공돌이에서 전업작가가 된 사람의 책이라는데 매불쇼에서도 나오는 등 나름 유명한 분 같다.
와인을 마시는 법, 감별하는 방법, 역사, 유수레이블 등 알압두면 좋을 지식은 넘쳐나지만 아주 기초적인 내용만 알면 나머지는 마셔가면서 배워야 할 것이니 이렇게 보통의 우리들이 접근하기 좋은 와인, 그것도 거의 저자가 음식과 함께 마셔본 것들을 하나씩 따라가면서 try해봐도 좋을 것 같다. raw fish가 아닌 이상 해산물과 궁합이 좋은 red도 있고 반대로 육류와 맞는 white도 있다고 하니 '신의 물방울'에서 많이 과장이 되긴 했지만 이 세계는 확실히 넓디 넓고 깊고도 아주 깊다고 하겠다.
일주일이 두 번씩 술을 마신다고 해도 혼술이 대부분이라서 같은 와인을 마시는 것보다는 매번 다른 와인을 try하고 정말 좋은 녀석들만 따로 몇 병씩 구해서 가끔 마셔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음식과 pairing하여 와인과 음식을 함께 입속에 넣고 음미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도 이 책의 영향이다. 즉 그간 와인을 너무 '술'로만 접근했다면 이제부터는 경험으로 그리고 마리아주를 더 신경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당장 다음 주에 중국집에서 송년회겸 송별회를 하기로 했으니 일단 닥치고 나오는 음식 한입에 술 한모금을 시도해볼 것이다. 나는 와인이라면 라면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는 주의지만 중국음식이 은근히 와인 pairing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 물론 우리가 가는 곳은 Korean Chinese라서 향신나 향채가 강한 원조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양장피나 오향장육 같은 녀석들하고의 궁합은 어떨지 궁금한 것이다. 오늘과 내일을 버텨 지난 일요일부터 8일간의 금주를 끝내고 마시는 월요일을 술은 얼마나 달콤할까??
술과 음식, 그것도 주로 소주와 순대국, 전, 찌게처럼 우리의 정서 깊숙히 들어있는 DNA같은 녀석들을 배워서 섭렵하면서 살아온 이야기. 이제 환갑을 맞을 이승환옹과 동갑인 작가의 나이를 보건데 소주가 무척 강력한 도수를 자랑하던 시절이 작가의 젊은 시절이었으니 이념적으로 역시 강력하게 단련되거나 똥후니처럼, 나베처럼 세상사에 무심한 부잣집애들의 맨탈이어야 버틸 수 있었던 87이전의 한국에서 술이 없었더라면 어찌 살 수 있었을까 싶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장통의 순대국, 실내흡연, 투명한 병에 담긴 25도 (그것도 60년대의 30도에서 낮춘 것이라고)의 소주를 마시고 다음 날 토하고 해장하면서 또 마시는 이야기가 정겹그 그지 없다. 나하고도 나이 차이가 꽤 있는 이야기라서 내가 온전히 겪은 이야기와는 다르지만 뭔가 대학생이라면 이랬을 것이라는, 어린 시절의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부합하는 면이 있어서 읽음과 공감 및 이해에 어려움이 없었다. 학생들도 지갑에 따라 차이가 나기 시작한 건 대충 90년대부터가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데 아마도 8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가 다 고만고만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순대국이나 선지해장국이 내 최애도 아니고 사실 오히려 미국에 와서 한참이 지나서 배운 음식이긴 하지만 추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따끈한 순대국에 소주 한잔이 떠오르는 걸 보면 15살때 미국에 와서 몇 년이 지나면 50을 맞이할 나이만큼 이곳에서의 시간이 훨씬 더 길지만 DNA는 어쩔 수가 없나보다.
금주에 따른 금단현상임이 심히 의심되는 책선택이 아닐까. 어쩌다 보니 술 이야기를 연달에 세 권을 읽은 모습니다. 물론 집에서는 여전히 홈즈와 크툴루의 세계관이 얽힌 네 번째 책, 정수일 선생의 아프리카 여행기를 조금씩 읽고는 있지만 늘 주기적으로 마시던 술을 아예 안 마시는 한 주간은 뭐랄까 이상하다. 더 웃긴 건 아예 이렇게 쉬는 시간을 강제로 가지니 또 그럭저럭 버텨지는 것이다. 화요일인가 수요일까지가 조금 갑갑했는데 이젠 거의 다 와서 오늘과 내일 밤만 버티면 될 것이고 월요일에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렇게 쉬다가 마시는 술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우리의 전통술을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다. 몇 달전에 모임에서 누군가 가져온 문배술과 안동소주가 처음이었던 것 같고 그 전에는 마실 기회가 없었다. 한국에 장기체류하는 기회가 오면 이런 유명한 진짜 '소주'와 동동주, 막걸리 등 우리의 것을 우리의 음식과 함께 맘껏 섭렵할 것이다. 식객에서 술에 대한 에피소드와 취재후일담 등을 모은 책이다.
글이 맛깔나서 좋아하는 이다혜 작가의 2019년 책이다. 전에 홈즈x코난도일이라는 기획도서도 즐겁게 읽었고 예전에 '빨간 책방'에서의 입담도 좋았던터라 이 책 또한 즐겁게 단숨에 읽으면서 교토에서의 여행을 꿈꿨다. (근데 최근 책은 무려 전두엽상실자이자 가짜 프로파일러인 이수정과 함께 썼는데 이유가 뭘까)
교토하면 일본에서도 깍쟁이의 이미지가 있다고 하는데 일단 사람은 무시하고 이 고도가 주는 멋진 모습과 전통의 음식을 맛보면 될 것 같다. 사실 우리 기질에는 도쿄도 교토도 아닌 오사카가 젤 잘 맞을 것 같지만.
근데 생각해보니 난 교토나 오사카보다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니 홋카이도와 오키나와가 그 둘이다. 내가 일본을 처음 가는 날이면 아마 홋카이도가 목적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가능하면 겨울에 가서 머리가 얼얼할 만큼 차가운 맥주를 마셔보고 싶다. 언제 가려나.
이제 운동을 갈 시간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하루가 아닌 이틀의 휴식을 가졌으니 주말과 월요일까지 3일을 연달아 아주 빡세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