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은 모르지만 이곳은 확실히 동지를 거쳐 신년을 맞으면 금방 조금씩 해가 길어지고 날이 따뜻해진다. 오늘처럼 bomb cyclone이 와서 비가 줄창 내리는 날도 그렇다. 덕분에 잠깐 비가 그친 틈을 타 1마일 정도를 걸었다. 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처리하고자 했던 큰 건의 업무는 거의 그냥 두었다. 천상 내일 하루를 꼬박 할애해서라도 해결해야 하나씩 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개인사무실을 차린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일이란 건 늘 있다. 하루도 그냥 보내면 안되는 일상인 것. 특히 1월에는 밀린 업무를 하나씩 처리해서 잘 정리해야 남은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을테니 열심히. 


일단 아무리 일하기 싫은 날이라도 하다못해 쉬운 일이라도 처리해야 옳다. 처리되지 않은 업무는 크기와 난이도를 떠나서 고스란히 쌓여 누군가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인데, 우리 회사에는 그 누군가란 곧 나를 의미한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까. 


가끔 이 정도 매출에 나 혼자 일하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지만 HR의 어려움과 높은 임금상승에 따라 가뜩이나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작은 회사에서 예상되는 지출수준에 비례해서 원하는 능력의 사람을 쓸 가능성은 거의 떨어지기 때문에 그저 혼자 버티고 또 버티는 것으로 아낀 비용을 은퇴를 위해 투자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짓게 된다. 


요즘의 구인/구직 트렌드가 우습다. 2023년 최저시급이 $17이 되어버린 이곳에서는 맥도날드에서도 시간당 $19정도를 제시한다. 한편 오피스환경에서는 아무리 못해도 $20-$25 정도의 시급에 맞춰 연봉을 제시해야 그나마 관심을 가져 준다고 한다. 문제는 맥도날드에서 면접을 보는 사람은 $19를 받고 일하느니 적당한 사무직을 찾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오피스에서 면접을 보는 사람은 $20-$25를 받고 머리가 아픈 일을 하느니 맥도날드에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맥도날드 지원자가 오피스로 오는 일도, 오피스 지원자가 맥도날드로 가는 일도 없다.


그냥 일을 하기엔 너무 아깝거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주식과 코인이 무너지기 전까지 한국이나 여기서 젊은 친구들은 금융투자로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었던 한편 급등한 부동산가격으로 집을 구할 가능성이 zero가 되어버린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middle class stability의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COVID-19을 거치면서 일과 삶에 대한 perspective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는 것이다. 


일을 안 할 수 없으니 열심히 일하되 스마트하게 일하고 사치하지 않고 낭비를 없애는 것으로 은퇴를 향해 살고 있다.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한숨 돌리고 살 수 있을까. 


요즘은 사무실에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대충 작년 중반부터는 그랬던 것 같은데 사무실에 앉아서 한가롭게 책을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늘 뭔가를 하고 있고 해야 하는 그런 상태. 평일에는 집에서 잠깐 몇 페이지를 보는 것이 전부라서 이대로 가면 40부터 80까지 40년을 잡고 만 권을 읽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 


목표를 세우고 counting을 시작한 것이 작년까지 해서 full 6년인데 연 평균 261.66권을 읽었고 2022년까지 1570권의 책을 읽었지만 남은 4년간 열심히 해야 간신히 첫 10년의 2500권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2023년의 나흘이 지난 오늘까지는 아득하니 멀기만한 목표달성, 그에 비해 엄청나게 빨리 흘러갈 시간. 

 


Easton Press라고 가죽으로 제본된 예쁜 책을 매우 비싸게 파는 회사가 있다. 대학교 때 구해둔 Sherlock Holmes를 이 판본으로 조금씩 읽고 있다. Equalizer의 남자처럼 아주 나중엔 모든 걸 처분하고 Easton Press의 책만 모아서 읽다가 갈지도 모르겠다. 이때만 해도 한 권에 $45정도 하던 것이 이젠 보통 $100-$150에 새책 한 권을 살 수 있다. 중고서점을 기웃거리면서 한 권씩 모아들이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이것도 주춤한 편이지만 언제나 한 권 정도는 갖고 오고 싶은 예쁜 책이 많다. 


2020년에 읽기 시작한 이 책을 아직도 읽고 있다. 원문만 약 900페이지가 넘는 책의 1/3을 겨우 읽었다. 한창 William Shirer의 책을 읽다가 이 책에 와서 힘이 좀 빠졌던 탓에 오래 미뤄둔 것이 2023년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다시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아 하루에 몇 페이지씩이라도 읽고 있다.










한 챕터 정도를 읽었다. 시간이 좋은 주말 아침에 일찍 운동을 끝내고 머리가 맑고 기분이 좋은 그런 짬을 내서 더 읽어나갈 것이다. 위화는 작가라는 것 이상, 요즘 대륙의 중국인들이 국뽕으로 미친지 오래인 시대에 드물게 괜찮은 중국사람이 아닌가 싶다.










한 페이지를 읽은 상태














Motivation을 위해 읽기 시작했다. 뭔가 내가 공감하기엔 어려운 의견이지만 일단 끝까지 읽어볼 생각이다. 













이것도 같은 취지로 읽다 말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펼친 책은 많은데 다 읽은 것은 없으니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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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1-05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벽돌책은 뭔가요?
요즘 저런 책들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미국도 그런가 봅니다.
한국도 좀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동지가 지나면 새벽, 밤으로 1분씩 밤이 짧아진다고 하는데
동지 지난지가 열흘이 넘었으니 그만도 20분은 짧아졌네요. ㅎ
날씨도 지난 달에나 추웠지 지금은 크게 춥지는 않습니다.
이러다 봄이 오겠죠.

책 많이 읽으시네요. 올해도 변함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transient-guest 2023-01-06 02:30   좋아요 1 | URL
Easton Press라는 출판사에서 가죽으로 제본한 책을 팝니다. 무척 예쁘로 종이의 질도 좋아서 책이 오래 가는 대신 값이 무척 비싸서 요즘은 주로 중고로 가끔 구입합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대부분의 책들은 한 권 = 한 시리즈라서 긴 소설은 1000페이지가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왕좌의 게임‘급이 보통 그렇게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예외없이 2-3권으로 나눠서 팔더라구요. 전 미국식이 더 좋습니다. 한 권을 세 권으로 나누면 값이 대충 2.5배는 더 나가니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열심히 읽고 남기겠습니다

바람돌이 2023-01-05 14: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런 가죽장정의 책을 전문으로 만드는곳이 있군요. 저런 책 사면 진짜 지문묻으면 안돼 막 벌벌 떨면서 읽을듯요. ㅎㅎ

transient-guest 2023-01-06 02:31   좋아요 2 | URL
그만큼 소장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서 대충 읽지만 신경이 쓰이기는 합니다. 셜록 홈즈도 제가 갖고 있은지 벌써 28년 정도 됐거든요. 금박이 살짝 닳긴 하더라구요. ㅎㅎ Easton Press, Folio, Franklin Library가 책을 예쁘게 제본해서 냅니다.

얄라알라 2023-01-05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잖아도 캘리포니아 사이클론 뉴스 보고, transient님 안부인사 드리려했는데, 알라딘 서재에 바로 님의 글의 떴어요...
책도 운동도 아무쪼록 안전한 환경에서 즐기시고,
악천후에 주변 분들도 피해 없으시기를..

transient-guest 2023-01-06 02:32   좋아요 2 | URL
물폭탄이네요 정말. 덕분에 가뭄은 좀 해소되겠지만 여긴 비가 많이 오면 대비가 안 되어 있어서 그런지 사고도 많이 납니다. 어제도 퇴근길에 고속도로 한 켠에서 물이 많이 찬 부분에 차가 그냥 서있더라구요. 오늘은 고속도로를 피해서 돌아갈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