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후유증이 크다. 정작 걱정하던 업무처리는 이번 주중으로 모두 정상화가 되었는데 휴가중에도 끊임없이 메일처리와 전화상담은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이다. 이것으로 확실히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준비와 환경이라면 보다 더 긴 휴가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들기는 한다. 그만큼 여러 가지로 여유도 생긴 면도 있고 경력에 따른 노하우와 관록이 나름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독서도 운동도 다시 매우 regular한 내 평소의 routine을 회복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휴가중에도 꾸준히 독서를 했고 운동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내 평소의 스케줄이 꽤 열심했던 것인지 놀다가 돌아오니 생각만큼 바로 원위치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운동은 일단 잠이 안오는 관계로 새벽에 나가서 하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그럭저럭 수행을 하고 있지만 독서는 지난 주 월요일, 금요일, 그리고 일요일 이렇게 띄엄띄엄 겨우 읽어가고 이고 이번 주 들어서는 아예 책을 펼치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에서는 일하기 바쁜 것이 이유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바로 누워서 자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가 되겠다. 하긴 TV를 볼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니까 아직은 시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탓이기는 하다. 


아름다운 아시아의 고전을 SF로 재탄생시킨 짧고 멋진 이야기들의 모음집. 근데 영어판이 없는 걸 보면 한국에서 기획한 책이고 켄 리우 외 몇명의 외국인작가를 넣고 주로는 한국의 작가들의 창작을 위주로 편집한 기획이 아닌가 싶다. 


상당 기간 한국 땅 본토에 편입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매우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고 전승시켜온 신비의 섬 제주도. 아직 한번도 갈 기회가 없어서 더욱 궁금한 이곳 탐라의 설화를 SF로 흥미롭게 펼친 이야기들이 각각의 작가들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그려진다. 


기대하게 되는 한국의 신진 SF작가들이 더 늘어난 것은 이 책의 덕분이다. 김초엽이나 천선란 외에도 좋은 작가들이 참 많은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의 신화와 언어로 우리나라 말과 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SF가 많이 나오는 환경과 시대, 세대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 아닌가.


소소한 이야기는 일본작가들이 참 잘 그려내는 것 같다. 물론 가끔씩은 너무 이런 스타일의 책 일색이라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 스타일의 책만 사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언제나 문제는 나 자신이고 내 안에 있다. 책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일상, 내 삶의 모든 것들이 다. 


문구점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하는 업무는 대필이다. 요즘 세상에도 그런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색창연한 이 업종은 사실 typing이 자동화되기 전까지 한국에서도 꽤 성업한 업종이다. 다만 여기서의 대필은 주로 엽서나 편지를 정중하게 멋진 글씨로 써주는 것이라서 한국처럼 법원이나 공문서를 쓸 때 사법서사가 혹은 그 밑에서 대서를 해주던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굳이 이런 서비스가 필요할까 싶지만 아직도 플로피 디스크를 쓰고 팩스로 서류를 주고 받는 나라라서 그럴 수 있겠지 싶다. 


온갖 사연을 받아서 대신 편지를 써주면서 조금씩 과거와 마주치는 어쩌면 꽤나 진부한 일본스러운 이야기지만 그 잔잔한 맛은 그런대로 괜찮다. 


이렇게 꼴랑 두 권을 읽은 것이 휴가를 다녀온 후 독서의 전부. 생각해보니 한 권을 더 읽었는데 지난 페이퍼에 남겼기에 잠깐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래봐야 세 권. 


21일 21권의 기세는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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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0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열심히 달릴 때가 있으면 조금 쉬면서 천천히 갈 때도 있는거죠. ^^ 그래도 휴가 잘 다녀오셨으니 좋은거죠. 천천히 회복하세요. ^^

transient-guest 2022-10-21 06:10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냥 천천히 하나씩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고 있어요.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