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버티다가 오늘 결국 또 책을 질러버렸다. 보관함에 쌓아두다 못해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예정된 구매대상들 중 겨우 열네 권, 그것도 가장 최근에 넣어둔 것들을 겨우 추렸을 뿐이다. 읽는 속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깊은 읽기는 늘 제자리에서 맴돌 뿐인데. 이것도 집착이고 욕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는 생각으로 정당화를 해본다. 


세상을 넓고 좋은 책은 많고, 사라지는 책은 더 많을 것이니까 어쩌면 archiving 하는 나의 행위가 후세로 전달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면 다시 돌아오려는 듯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반지성이 조롱과 왜곡된 mass information의 탈을 쓰고 화려한 컴백을 외치는 지금 미래를 위한 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 심지어 공부를 좀 했다는 사람들까지도 책과 독서는 낡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면서 비주얼한 매체에 지적 생활을 모두 의지하는 21세기. 기술문명의 발전에 기반한 20세기의 화려한 개막과 미래의 희망은 양차대전으로 박살이 났었는데 21세기라고 멀쩡히 지나갈 것이란 보장이 있을까? 이미 지난 80년의 평화가 만들어낸 계급공고화와 풍요와 가난의 양극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지성을 표방하는 전체주의의 대두는 단지 러시아나 PROC만의 문제가 아닌 소위 자유진영, 아니 세계의 문제가 된지 오래가 아닌가. 


이런 시대에 지성의 빛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마제국멸망 후 중세의 르네상스 사이 수백 년의 암흑기에 묵묵히 숨어서 고전을 연구하고 필사하면서 면면히 지성의 불씨를 지켜온 봉쇄수도원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할까? 순전히 망상스럽지만 뭔가 그렇게 세상의 중심에서 다소 빗겨난 조용하고 은밀한 장소에 archive를 하나 만들어 살면서 지적 문화의 시작이자 끝과도 같은, 설사 전기문명이 사라진 후라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책을 보관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미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잠이 오지 않던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계속 이런 저런 망상에 시달리는데 탄수화물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르겠다만, 늘 하는 생각이라서.


자신을 '글쓰는 김영하' 라고 소개하는 작가가 9년 만에 낸 소설. 단편으로 시작되어 2년의 시간을 거쳐 다듬어진 '장편'소설. 메트릭스와 i-Robot이 떠올리는 플롯과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는데 과거 그의 작품들에 비해 어떤 '파격적'이라거나 '선정적'인 면은 없다. 사실 그건 '살인자의 기억법'때도 이미 많이 벗어난, 더 젊은 시절, 그가 글을 쓰던 시기의 사회적 금기에 대한 대항이자 push였을 것이니 이젠 작가도 정서적으로는 어느 정도 완숙기에 들어왔다고 봐야할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우리에게 소중한 모든 것들에게 그 '소중함'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끝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보다 더 사람답게 만들어진 누군가는 몸을 버린채 collective conscious로 들어가는 대신 최후의 사람으로 남기로 한 것 같다. 생명의 의미와 가치는 끝이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이야기는 사실 많은 곳에서 다뤄지는데 (심지어 Vampire Hunter D에서도 종종!!) 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대의 수많은 콤비물의 원형과도 같은 홈즈와 왓슨의 이야기는 시대별로 작가, 장르에 따라 그 모습과 플롯이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심지어 남녀관계로 만들어진 것도 (Elementary) 있을 정도. 거기에 크툴루 전설과 섞어낸 것도 있고 옴니버스단편들 중에서는 왓슨이 평행세계로 가서 악당이 된 홈즈와 왓슨에 대적하는 모리아티와 모랜 대령을 만나고 오는 것도 있고, 내가 나중에 읽으려고 아마존에 담아 놓은 것들만 해도 열 몇 권을 될 것이다. 최근에 나온 걸 보면 심지어 홈즈와 왓슨이 드라큘라 백작과 함께 모험을 하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너무도 많은 오마주가 생성되었기에 원형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은, 도일 재단의 인증을 받은 이런 작품이 반갑다. 


여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정보국의 수장이자 홈즈의 친형 마이크로프트의 call에 따라 에딘버러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 지적유희와도 같은 소설의 플롯을 통해 간만에 내가 좋아하는 시대의 모습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결말로 이르는 부분부터는 조금 진부한 감이 없진 않고 아무래도 작가의 최고 히트작인 The Alienist 시리즈 두 권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괜찮은 작품.


아직 다 길들여지지 못한 말 (혹은 동물?)을 뜻하는 (Half Broke) 표현. 망가진 가정, 커뮤니티는 사람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선악과 옳고 그름의 구분을 배우지 못한채 자연스럽게 범죄와 마약으로 인도한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약을 팔거나 만들거나 나르거나, 몸을 팔거나, 남의 것을 빼앗는 것. 학교도 가지 않고 배운 것도 없으니 시작부터 개판이고 남은 삶은 다 글러먹어 감방과 halfway house를 전전하다가 병에 걸려 죽고, 약에 쩔어 죽고, 총에 맞아 죽는 것이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슬럼 출신의 운명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극소수의 선택된 재소자들이 힐링과 사회적응에 필요한 것을 배우기 위해 마련된 목장에서 일을 하지만 상처 가득한 그들이 애초에 동물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리 없다. 


화자는 목장에서 평생을 보낸, 그 자신도 정체성의 문제로 방황한 상처 가득한 카우걸. 그가 재소자들을 가르치면서 보고 겪고 느낀 이야기. 단순히 동물을 돌보다가 힐링이 된다는 그저 그런 동화가 아닌 냉혹한 현실을 여과하지 않고 보여주면서 그 와중에도 희망을 빛을 볼 수 있는 변화가 꾸준히 이어지는 걸 보여준다. 엔딩은 그다지 해피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간신히 제자리를 찾았던 재소자들도 나중에는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조금 찜찜한 여운이 남기는 하지만,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이야기.


작가들의 유희와도 같은 책.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형식과 길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쏟아져나온 듯, 별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한국에서 SF나 기발한 발상으로 유명한 작가들은 거의 다 들어있는 듯. 가볍게 하나씩 읽어서 사실 내용은 크게 떠오르는 것이 없지만 (이건 진짜 나이를 먹어가면서 계속 고민하게 되는 문제) 읽을 당시의 내 느낌은 무척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편이나 장편으로 다듬어갈 충분한 아이디어들이 많은데 이걸 제대로 끄집어내서 플롯으로 발전시키는 건 오롯히 작가의 몫이다. 한국소설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제대로 된 장편의 부재는 여전히 아쉽다. 영문소설은 3-400페이지는 쉽게 넘어가고, 제대로 나온 것들은 대부분 800-1000페이지 가까운 양을 치밀하게 짜내는데 폰트도 커지고 글 간격도 넓어진 한국에서는 아예 그런 환경에 적응을 해버린 듯, 장편이라고 해도 사실 중편에 가까운 책이 대부분이다. 이건 문단과 작가들, 출판계가 함께 고민을 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꾸역꾸역 그냥저냥한 것을 정리랍시고 어쨌든 써냈다.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도 정도가 있을텐데 내가 요즘 딱 이 정도 밖에 안되니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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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5-26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아- 저도 참아야하는데, 하면서 좀 전에 책을 질렀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네요. 하핫 ;;

transient-guest 2022-05-26 10:02   좋아요 1 | URL
삶이 다하거나 돈이 떨어지거나 하는 그날까지 아마도 영원반복될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ㅎ

얄라알라 2022-05-26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ransient님 서재에 왜 황금 엠블렘이 9개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transient-guest 2022-05-27 01:2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뭔가 생각의 힘도 떨어지는 것 같고 예전의 것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예전에도 잘 쓴 건 아니지만) 합니다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