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물거리면서 조금씩 읽어낸 흔적이 또 잔뜩 쌓였다. 마지막으로 페이퍼에 읽은 것들을 펼친 것이 6/17이니 거의 한 달이 그 사이에 지나가버린 것이다. 사실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있고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탓도 있는데 달리 생각해보면 COVID-19으로 작년 3월부터 금년 최근까지 일년이 넘도록 모든 것을 닫아버린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예전에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에는 종종 서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구경하고 차분하게 오전을 즐기면서 글을 쓰는 맛을 느꼈던 것을 여전히 못 하고 있는데 안 하다 보니 그런가보다 하면서도 생각해보면 꽤 그리운 시간인 것 같다. 


열정이란 것이 무엇인지 종국에는 잊어버릴 것인냥 큰 말썽이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서 만족을 찾고 열심히 준비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삶의 와중에서도 어쨌든 책을 읽는 즐거움을 놓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한다. 많이 사들이고 관심을 갖고 살면서 그렇게 뭔가 뒤져보면 재미를 주는 책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최근에 나온 미야모토 테루의 자전적인 이야기.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긴 호흡의 책을 읽는 것이 어려울 때 특히 이렇게 짧은 글을 모아놓은 책이 잘 들어온다. 지난 번의 페이퍼를 쓸 무렵 읽은 책이라서 전체적인 느낌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즐겁게 읽은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반갑기도 했거니와 단편적인 기억을 모아서 이야기로 엮어낸다는 면에서 작가란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조선의 북쪽에서 해방을 맞은 일본인들이 기억하는 당시의 역사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것이 뭔가 묘하게 거슬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중립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남의 땅을 빼앗은 것에 대한 일말의 생각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일본'의 '외지'에서 살다가 갑자기 세상이 뒤바뀐 것에 대한 기억만 남을 수 있다는 건.



속에 담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 이를 듣는 이의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으로 액땜을 하듯 그 행위를 통해 털어낸 것으로 그 업보가 사라진다는 개념은 생소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현재 일본의 모습이 reflect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후쿠시마'의 오염과 영구적인 파괴는 정부가 회복을 '선언'하는 것으로 없어지고 그곳의 오염된 생산물을 '괜찮다'고 하는 것으로 오염이 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역사의 반대편에서 계속 과거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그 역사가 사라지고, 남의 땅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것으로 그 땅이 자기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어떤 ceremony에 대한 극단적인 맹신이 이토록 문화와 역사 깊이 박혀있다면 일본의 현재 모습이 그다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미신이다 뭐다 말이 많은 일본의 다신교 풍습이 간혹 귀엽고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거대한 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소소한 일상의 작은 신들이 인간과 작용하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일을 나가는 어린 아이를 걱정하면서 주인집 아가씨의 외출길에 그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해주는 오뚜기 신의 에피소드가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나폴레옹이 실각한 유럽. 1814년 무렵의 런던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아직 현대의 경찰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일종의 보안관 같은 사람들이 교구편제와 섞여 치안을 담당하던 시기, 부정하고 부패한 보안관이 살해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Murder mystery면서 전통적인 탐정극보다는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인데 홈즈의 시대에서 약 7-80년 정도 앞선 시기를 무대로 하기에 특히 흥미롭게 소설에서 묻어나는 시대상을 볼 수 있었다. 너무 즐겁게 읽어서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하나씩 구해볼 생각을 하게 됐다. 범죄스릴러로서의 충실한 진행과 함께 시대의 악습과 (구빈원 같은) 비극을 보여주고 곁들인 스토리로는 주인공가족과 장인의 갈등을 통해 귀족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등 복합적으로 구성된 스토리에서 지루할 틈이 없다. 마침 Downton Abbey를 하나씩 보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시대상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Downton Abbey는 이 책보다는 홈즈의 시대에 더 가깝지만).


이어서 읽은 같은 시리즈. 시간순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서 이번의 사건은 위의 사건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다. 방탕하고 변태적인 사생활로 악명이 자자한 귀족집안의 자제가 난도질 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단서를 지녔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하나씩 살해당한 채 나타난다. 언제나처럼 진실을 찾는 세바스찬은 하지만 주요용의자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귀족의 부인이자 쌍둥이 자녀의 엄마인 자신의 조카딸이라는 점에서 갈등이 있다. 게다가 다른 혐의자들 중 하나는 마침 이때 런던을 방문한 러시아황녀의 Lady in Service 또한 주요용의자가 되는데 외교적으로나 국제적인 정세로 보나 여러 가지로 수사가 쉽지 않다. 귀족의 머리와 평민을 생각하는 가슴으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고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모아야 한다. 두 번째 읽는 St. Cyr 미스테리 시리즈인데 결말의 반전이 대단했다. 귀족집안의 heir란 것이 무엇이길래.


특수전단에서도 최고의 정예들만 모인 Navy Seal 출신의 회고.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Seal의 정예들 대부분이 가난하거나 broken family 출신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월급이 높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모병제국가에서 입대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데 환경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자랄 수 없는 18세의 젊은이들에게 대학보다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기는 하다. 문제는 얘네들이 제대한 뒤 정상적으로 사회에 편입하지 못할 경우 군대에서 배운 살인기술이 고스란히 갱단이나 백인우월주의 민병대로 흘러들어간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관공서로 빠지기도 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방향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워낙 거친 아이들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습관이 된 상태에서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인 것이다. 특별히 뭘 배운 건 아니고 이런 것도 있다는 정도의 정보와 내가 경험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본 의미가 남는다. 



무시무시한 이야기. 영화보다는 훨씬 더 초자연스러운 것들의 작용으로 문제가 생기는데 이미지라는 것이 강해서 잭 니콜슨이 부서진 문틈으로 기괴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들이미는 장면을 읽는 내내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귀신이나 악령 같은 것이 어떤 영혼의 작용이라기 보다는 장소에 얽매인 원념이나 사건의 자기장 같은 흔적으로 보는 이론이 있는데 여기서도 그런 방식으로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호텔 전체에 남았을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흉가체험 같은 건 가지 않도록 합시다. 귀신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걸 보고 경험하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처럼 나쁜 장소나 음침한 곳을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쩌다 한꺼번에 구해 읽은 책. 여행을 가고 싶을 때, 지친 일상의 사유를 달래고 싶을 때 가끔 이런 책을 찾아서 대리만족을 찾곤 한다. 전체적으로는 그다시 공감을 많이 하지는 못한 세 권의 이야기들. 아무리 근사한 곳이라도 남을 통해서 가는 것보다는 동네 뒷산이라도 직접 발을 놀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둘 다 크게 남은 건 없이 그저 소소한 재미를 준 것들. 전체적으로 술을 마신 다음 날의 상태를 기준으로 볼 때 가장 harmless한 술이라서 다른 것보다는 더 자주 마시는 것이 와인이라서 꾸준히 읽고는 있지만 빨리 매듭을 지어주었으면 하는 시리즈 '마리아주'. '카구야 프로젝트'는 평행우주를 다룬 건데 특이한 건 주인공이 넘어간 다른 세계의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달리 강렬하게 남은 건 없기에 이 정도면 적당하다.



다음 번의 정리도 한 달을 넘기게 될지 모르겠으나 자주 읽고 남기는 노력은 비록 머릿속에서 뿐이지만 계속 하고 있다. 어렵다고 안 하면 진짜 못 하게 된다고 생각하므로 힘들수록 더욱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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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7-13 1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얼마만에 보는 님의 간단 리뷰 페이퍼인지.
물론 이따금씩 초간단으로 글을 올리시는 거 알고는 있습니다만.
저는 님의 요런 페이퍼가 좋습니다.ㅋ

올리신 시리즈는 아직 번역본은 없는가 봅니다.
제가 영어는 울렁증이 있어서...
번역본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군요. 혹시 나오면 기웃거려 보겠습니다.
미아모토 테루에 관해 쓰신 글 동감입니다.
이 작가에 대해선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올림픽을 연기해도 꺾이지 않는 코로나 그로인해 무관중으로 치뤄진다니
짠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만 가질 수 없는 저로선
한쪽으론 ‘늬그들이 벌 받는 거다‘란 생각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ㅋ

transient-guest 2021-07-14 04:03   좋아요 1 | URL
한 3-5권 정도까지 쌓였을 땐 정리를 해줘야 좀더 의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고 책의 내용도 기억이 날텐데 그리 못하고 있네요.ㅎㅎ 늘 감사합니다.

저도 찾아보니 C.S. Harris는 번역된 작품이 없네요. 스토리가 섬세하고 치밀하고 그러면서도 너무 미시적으로 여러 가지를 꼬아내지 않기에 재미와 flow까지 좋습니다.

올림픽은 해도 안 해도 이미 손해라서 그냥 해버리는 것 같은데 내부의 반대도 심하고 무엇보다 코로나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더 심각해지는 면도 있어서 세계적으로 관심도 떨어질 것 같네요. 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혼 나봐라 하는 마음도 드네요. ㅎ

얄라알라북사랑 2021-07-13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0617-0713
겸손하시기에 말씀으로는 열정이, 의욕이 예전만하지 못하다 하시지만 이렇게 읽으신 책들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또 알라딘 서재에 정리하시니 진정 서재의 달인이시네요.

소개해주신 책 중에, 아마 직접 읽을 기회는 없을 것 같지만 <The Right Kind of Crazy> 가장 흥미롭네요. 네이비 씰은 영화로 밖에 접해볼 기회가 없으니 구성원의 특징이 어떤지 상상도 못해봤어요. 사회 특수 목적을 위해 극사회화 받았다가 이후, 사회로의 자연스러운 녹아듦이 어려룬가봅니다. 부적응 문제 언급하셔서 깜짝 놀랐을 정도로 의외였어요. 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transient-guest 2021-07-14 04:06   좋아요 1 | URL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점점 예전 같지 않아서 늘 실망하고 만족하지 못하는데도 좋게 봐주시니 용기를 내게 됩니다.

군대에 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특종부대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선천적으로 그리고 후천적으로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이겨내기 힘든 훈련과 임무수행 때문에 더욱 그렇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원재 큰 전쟁이 끝나면 돌아온 젊은이들이 그 전투능력을 갖고 사회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곳 모두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1차대전, 2차대전, 월남전도 그랬고 한국도 한국전쟁이 끝난 후를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7-14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5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