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진모씨의 퍼포먼스를 본 감상을 어떤 팟캐스트에스서는 "프로레슬링에(나) 어울리는 대단한 mic work를 보여줬다"라고 평가하는 걸 들었다.  충분히 이해하고 agree할 수 있는 커맨트가 아닌가. 역시 전직 레퍼이자 잘나가는 팟캐스트 방송을 두 개나 진행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입담이 좋다. 


이걸 다 읽어버리다니. 이다지도 빨리. 읽자마자 아쉽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무협지는 고전에서도 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도 당분간은 더 읽을 무협소설이 없기 때문에. 또 고룡의 작품을 최소한 당분간은 더 만나볼 수 없을 것이라서. 김용의 작품들은 어찌된 일인지 예전에 모두 나왔고 비교적 최근에는 새로운 번역과 패키징으로 다시 나왔는데 양우생, 와롱생, 고룡을 비롯한 다른 유명작가들의 작품은 아주 옛날 옛적, 무협소설의 전성시대가 지나간 후로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구할 방법이 없다. 구하더라도 세로쓰기가 대부분일 정도로 오래된 판본이고 해적판이라서 그 상태가 조악하기 짝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부호의 자식이면서 학문에도 밝아서 과거급제를 한 수제상공에 무림의 최고병기서열 삼위에 오른 작은 비도, 일명 소이비도라 불리는 무기는 한번 날면 무조건 한 명이 죽는다고 할만큼 무술고수,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혼인이 사실상 약속이 된 가인까지 부족할 것이 없고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우연에서 시작된 우정으로 인해 모든 걸 잃고 관외로 떠나버린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후 그가 다시 돌아오면서 묻어두었던 과거와 마침 그때 다시 나타난 무림흉수로 인해 모든 것이 그야말로 open season이 되어버린다. 질투는 사람을 망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가장 소중한 걸 잃게 마련이다.  


다정한 검객에 해당하는 사람은 주인공 외에도 여럿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검은 무정하다고 하나 친구, 의리, 협의,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는 검 또한 정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결국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검을 놓아야 했으면 어떤 이는 모든 걸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누명까지 쓰고 폐병을 달고 산다. 


한 마디의 말이 짤아서 혈겁이 일어나고 좋은 사람들이 죽는다. 사랑이 떠나고 지기와는 원수가 된다.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만 무협소설이나 시대소설에서 극화되는 당시의 기풍이나 세태는 확실히 많은 오해를 불러일스킬 수 밖에 없다.  


고룡은 무협소설계의 기인이사와도 같다. 대단한 작가들이 대만과 홍콩의 문학계를 무대로 백가쟁명하던 시절을 잘 보여주는 '삼검루수필'이나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 같은 책에도 잘 나와 있는 바, 고룡의 작품세계는 무척이나 몽환적이다. 닌자로 치면 기술의 이가류 보다는 환술에 가깝게 묘사되는 고가류 같다.  


이들이 묘사한 신무협의 전성기 백가쟁명의 홍콩과 대만의 문학계의 모습은 무척 낭만적이다. 자신들의 작품세계의 주인공들 마냥 작가들의 모습도 호방한 면모가 보이고 서로 경쟁하면서 절차탁마하면서도 친하게 지내며 바둑이나 체술로 견주기를 하던 멋진 시절을 보게 된다.  지금은 덩치만 커진 아이같은 중국정부의 깡패짓에 동조하는 유치한 모습이 아닌 진정한 대국의 자세를 토로하던 지식인의 모습이 남아있다.



용대운이나 설봉, 좌백, 운중학 같은 이들로 대표되는 한국의 무협소설은 그 소재와 발상의 신선함에서는 중국을 능가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고풍스러운 맛이나 깊이는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더 이상 막소설이 아닌 진정한 무협소설이 나오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한국이나 중국 모두의 세태가 아닌가 싶어 더더욱 좋던 시절 나온 주옥과도 같은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특히 예전에 Hong Kong Classic 시리즈로 재밌게 본 영화의 원작들이 보고 싶은데 '천애, 명월, 도' (이걸 천애명월도라고 쓴 영화커버라니), 그리고 '유성, 호접, 검' (이것도 영화커버엔 유성호접검이라고 써있다)이 무척 궁금하다.


읽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술 한잔 하면서 읽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어제 NFL Playoff Wildcard 게임을 틀어놓고, 한쪽에서는 한국예능이 돌아가는 소란스러움 속에서나마 막걸리를 마시면서 결말을 봤다. 언젠가 갖고 있는 무협소설들을 모두 꺼내놓고 이런 멋진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젊은이의 주량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니 길고 오래 마시면서 오랜 친구들과 그렇게 즐거운 만남을 가질 것이다.


사건모음집의 형식으로 전직 유능한 형사이자 현직 인기 추리소설작가이면서 컨설팅 형사로 활동하는 부스지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은 한결같다. 충분한 사전조사와 탐문수사 후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범행을 자백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물론 고생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래서 소설은 소설인 것이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세계 삼대장이 활약하는 시리즈와는 달리 특별히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 같지는 않다. 딱 소소한 수준의 재미를 주는 정도. 하지만 작가 형사 부스지마라는 사람은 무척 특이한 캐릭터로 흥미가 간다. 






책을 많이 읽는 세상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가끔씩 생각해보는 주제다. 전기문명이 갑자가 몰락하거나 TV나 영화를 비롯한 비쥬얼매개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정말 좋아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비롯한 필요에 의해 책을 읽는 시대이지 다른 재미있는 것이 없어서 책을 읽는 시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장서가 귀한 시절 오히려 책은 정말 다양한 역할을 했던 것 같고 책을 흔하고 싸게 많든 기술이 결국 다른 것들도 흔하고 싸게 만들어버렸으니 아이라니가 아닌가.


2020년부터 5개년 계획을 잡고 하나씩 실행하기로 했다. 언어습득과 하와이주의 면허시험이 그 기간 중 이뤄야 할 목표들 중 비교적 쉬운 것들이다. 나머지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면서 만들어나가야 한다. 


나에게 행운이 있기를. 그래서 늦어도 2025년 어느 즈음엔 하와이의 주민으로서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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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맘 2020-01-06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transient-guest 2020-01-06 09: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렇게혜윰 2020-01-06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존재를 몰랐다가 급 너~~~~~무 읽고 싶어지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

transient-guest 2020-01-07 01:51   좋아요 1 | URL
무협소설의 팬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