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는 느낌은 매년 같은 이야기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저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다음 해로 넘어와버렸다. 새해 첫 날은 운동으로 시작하고 싶었으나 8시에 미사를 다녀와서 친척집에 가는 일정이라서 어쩔 수 없이 skip해버렸으나 왠걸...시간약속이 미루어져버려서 대충 따져봐도 두 시간은 충분히 gym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운동은 둘째 날부터 하는 걸로.  근육운동을 좀 세게 해주었기 때문에 이틀의 휴식이 나쁘지는 않다만 그래도 뭔가 상징적인 의미를 위해 어젯밤엔 술도 안 마시고 잤는데 운동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뉴스를 보고 YouTube으로 잠깐 진씨와 유시민선생의 토론을 봤다. 예전부터 진씨는 독설가일뿐 논리적인 토론엔 젬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니 여전히 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우격다짐에 상대방의 인신공격 외엔 별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보인다. 논리에 대한 사실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묻는 상대방에게 '내가 다 안다고요'를 시전하는 꼴이라니.  사람이 곱게 늙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을 못 봐서 일단 책으로 읽었다. 역시 애니메이션을 소설로 옮긴 작품답게 비주얼 묘사가 좋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는 그런 느낌은 책을 읽다보면 종종 받지만 이런 경우 특히 그렇다. 예전에 Eragon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Icewind Dale Trilogy를 읽을 때에도 그랬었다. 책을 오래 꾸준히 읽으면 생기는 능력(?)인가 싶다. 가끔 남들한테 물어보면 전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날씨의 무녀. 그 대가는 그녀가 사라지는 것. 가출한 소년이 만난 날씨의 아이와 그 능력을 이용한 아르바이트.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소년은 학업을 마치고 다시 도쿄로 돌아와서 아이와 아이의 동생을 찾아 함께 삶을 꾸려가기로 한다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좋은 비주얼 묘사로 꽤나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언어의 정원'도 그렇고 '너의 이름은'도 그렇고 '우리의 계절은' (다른 감독)도 그렇고 일본애들은 한국이나 미국과는 다른 의미로 가벼운 이야기를 세밀한 디테일로 잘 그려내는 것 같다.  좀더 조용하게 음미하면서 읽었어야 하는데 그리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남편을 그리면서 남편이 보여준 무지개를 기다리면서 조용한 구석에서 찻집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주인. 챕터마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을 갖고 들려 힐링을 얻고 세상과 다시 맞붙을 용기를 찾아서 떠나고 그것이 인연이 되고 거기서의 만남을 이어가는 이야기. 작가가 좋은 이야기를 참 예쁘게 엮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전에 즐겁에 읽은 '쓰가루 백년 식당'의 작가였고 꽤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절판되지 않고 계속 서점에 남아 있다. 또 그렇게 한번 다 구해서 읽어보고 싶은 작가가 생겼으니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은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여 새끼를 치게 되었음이다. 이 얼마나 멋진 책의 인연인가.  커피나 간단한 차를 팔고 하루종일 책을 읽고 경치를 감상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공간을 많이 알고 있다. 그저 갈 시간이 많이 없을 뿐이지만. 그래서 주로는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지만.  읽는 내내 따뜻하고 즐거웠다.


작가가 왜 그랬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공자를 굳이 공구로 낮춰 부르는 자주성을 가장한 천박함이라니. 전공분야나 전문적인 공부는 차치하고 이런 저런 개론서를 쓴 작가라고 하는데. 


흥미가 가는 주제였으나 중구난방으로 두서 없이 다뤄진 탓에 읽는 것이 그저 그랬다. 환관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부분과 그들을 소개하는 부분이 여럿 겹쳤고 궁녀들을 이야기할 때는 뭔 그리도 디테일하게 복식과 품계에 대한 소개를 하는건지. 책이란 건 일정한 수준의 구성과 정리, 순서와 전개를 위한 배열, 내용의 정리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면에서 많이 미흡햇다고 생각한다. 재야사학도 좋고 역사에 흥미를 갖고 나중에 공부해서 작가가 되는 것도 좋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제도권 공부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런 때 하게 된다.


2020년에는 아직 한 권도 읽은 책이 없다. 오후에 돌아와서 넷플릭스에 뜬 응답하라 1988을 켜놓고 그냥 옛날 생각을 하면서 (사실 이때 국민학교 6학년이라서...1988년에 고등학생이면 대충 지금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딴짓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이웃끼리 뭔가 나누고 오가던 시절의 끝자락은 조금 경험해본 것이 이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짧게 사는데 평화롭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잘 꾸려서 꼭 하와이에서 남은 삶을 시작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문을 열어주고 그렇게 손님이 끊이지 않고 술독에 술이 마를 날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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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1-02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 모씨 참 놀랍지요. 사람이 저렇게 될 수도 있구나 싶다가 아니 원래 그랬는데 좋게만 봐왔나보다 싶고. 하와이 여생은 술독에 술이 마를 날 없이 ㅎㅎ 생각만 해도 아주 좋습니다.

transient-guest 2020-01-02 11:24   좋아요 2 | URL
원래 그럤던 사람이겠죠. 진씨 독설은 워낙 유명하고 확증편향도 그렇고 예전에 변희재하고 맞짱 뜨다가 답이 막히고 성질은 나니까 주체를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적이 있죠 아마? 하와이는 꿈입니다. 좋은 사람들하고 함꼐 천천히 늙어가고 싶네요.ㅎ

cyrus 2020-01-0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에 저는 ‘온라인 탑골 공원(SBS 인기가요)’, ‘가요톱텐’ 유튜브 스트리밍 보느라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ㅎㅎㅎ 옛날 노래를 감상하면서 옛날 90년대 스타일로 진행된 방송을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어제는 유튜브에 ‘2020 우주 소년 원더키디’ 전체 에피소드를 스트리밍한 걸 봤어요. 그 만화를 어렸을 때 많이 봤었는데, 만화 속 제목에 있는 2020이 정말로 현실이 되었어요... ^^;;

transient-guest 2020-01-03 09:10   좋아요 0 | URL
TV가 재밌으면 화이트노이즈 이상이 되어서 책이 눈에 안 들어오죠 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짜 2020이라니 믿어지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