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늘어지는 이곳의 여름, 대부분의 지역에서 거의 3개월 혹은 그 이상의 방학을 지내는 이곳의 여름의 꽃 July 4th 연휴기간을 보내고 있다. 자영업자가 된지도 어언 8년차에 접어든 지금, 이런 휴일은 큰 의미가 없다. 그저 전화가 오지 않고 메일에 답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은 정도로 어느 정도의 협의가 된 시간이라는 것을 빼고는. 잠깐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업무날짜의 메일에서 언급된 몇 가지 일처리를 위해 사무실에 들어와 시간을 보내면서 둘러보니 여전히 정리는 요원한 형편이다. 큰 장식장을 몇 개 다시 배치해야 남은 정리가 이어질 수 있는데 이 장식자들은 내가 옮길 수 있는 무게나 크기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미루고, 창고를 임대하는 것도 여전히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몇 가지 일을 대신해주면 좋겠다만.


책을 읽다가 언급된 것을 기억해서 구한 Charlie Jung을 듣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클래식이나 재즈처럼 가사가 없는 음악이 편할 때가 많다. 대중가요의 가사에 맘을 빼앗겼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을만큼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고 실제로 들었을 때 특별히 감흥을 느끼는 경우도 드물다. 가사나 음악과 목소리로 가끔씩 설레임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략 그러면서 나훈아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어버렸으니 대충 통계상의 반생을 산 지금에 어울리는 것 같다.


'로켓 무용단원'이 되고 싶어하던 인공지능소녀의 이야기, 성극을 연습하던 교회에 시공간의 왜곡으로 길을 잃고 찾아든 마리아와 요셉을 그들의 시간으로 돌려보낸 단편, 그리고 매우 typical한 나쁜 백인독신남처럼 여자는 꼬셔서 잠자리에 끌어들이는 대상이고 다른 건 다 귀찮은 주인공이 장난감세계에 갖혀버리는, 마치 '환상특급'을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앞서 읽은 같은 작가의 소설집에서 겹치는 작품이 있는데 그만큼 다른 의미로 테드 창의 이야기처럼 특이한 외계인의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책 읽는 뇌'의 속편 같은 '다시, 책으로'를 주문한 상태인데, 팟캐스트에서 많이 다뤄진 덕분에 늘 읽기 좋은 책을 넘어 다시 좀더 다양한, 그리고 종종은 더 어렵거나 까다로운 책도 꾸준히 읽을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간 영어책을 너무 멀리한 것 같아서 제목에 끌려 일전에 구입한 Bobby Hall의 'Supermarket'을 시작했는데 간만에 머리에 들어오는 영문의 느낌과 이에 따라 펼쳐지는 머릿속의 세계가 나쁘지 않다. 


주변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자꾸 읽게 되는 '선술집 바가지' 그 네 번째. 여전히 주인공은 츤데레 아저씨와 썸을 타고 있고 이런 저런 요리를 니혼슈와 마리아주하는 것으로 입맛을 다시게 만들고. 그간 변화가 없던 동네에 대형빌딩이 새로 들어서면서 근처의 시장구조를 강제로 재편당할 수도 있는 일이 생기려고 한다. 단골로 드나들던 슈퍼가 문을 닫으려 하고, 약국도, 심지어는 이 선술집도 어쩌면 새롭게 만들어진 상권에 휩쓸려 사라질 수도 있는 형편. 평생 제대로 된 이자카야는 가본 적이 없고 한국에 펴진 대부분은 프렌치아즈로써 흉내만 낸 시끄럽고 넓은 담배연기가 가득한 공간이라서 이런 작은 술집에 가서 정겹게 술을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하다만, 후쿠시마문제를 넘어 너무 치사한 아베놈과 거기에 동조하거나 관심도 없는 대다수의 일인들을 생각하면서 일단 계속 일본여행은 보류하기로 했다.  문화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이런 저런 의미로 역사로도 가장 가까워야 하는 두 나라의 실상이 그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만, 가해자로서의 체면만 중시하는 그들의 사관을 고치려면 아마도 그 나라가 두 번은 더 망해버려야 할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갖게 된 다양한 종류의 '인간 실격'. 여러 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좀 먼 허무주의의 세계인데, 이번에 나온 이토 준지의 세계를 통해 묘사된 만화를 읽으니 그 실체가 어렴풋하게나마 보이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실체를 숨기고 살아온 '나'는 가는 곳마다 속에 품은 달관한 듯한, 혹은 어둠을 퍼뜨리면서 주변세상을 파괴하고, 휩쓸린 인간들 중 '나'에게 마음을 준 사람들은 하나씩 안 좋게 끝을 보고, '나'의 어둠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의미로 망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봐도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소설이자 일종의 예행연습과도 같은 이야기인데 글로 제대로 한번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게 끌려 대략 두 판본으로 컬렉션을 구했으니 책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1948년에 자살했으니까 죽은지 70년이 넘은 이 사람이 지금도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상투적이지만 누구나 한 켠에 어둠이 깃들어있기 때문일까? 









구판으로 갖고 있는 이토 준지 호러컬렉션 외에 구한 그의 작품들이다. 작년부터인가 시공사에서 다시 컬렉션을 재구성해서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서리얼한 세계관이나 그림도 그렇지만 이상한 일이 너무도 노멀하게 일어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이 너무 기괴해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는 작가가 아닌가.  서구에 러브크래프트가 있다면 아시아에는 이토 준지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근처에 끝내주는 아울렛이 있는데 귀찮아서 안 간지 오래됐다. 이번엔 그냥 지나갔으니 오래된 옷을 좀 정리해서 구세군에 갖다 주면 노동절연휴의 세일을 노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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