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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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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에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유명하다. '형제들'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자기 분열'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미친 자신'이 있고 그 '미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안미친 자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내적 접근법'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다. 그 결과, 도무지 '자아'라는 것을 통합시키기 어려운 사람들의 '분열'된 마음에 근거한 연구 방법론이 '내적 접근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가령, 독일에 살았던 윤이상과 같은 음악가가 있었다. 이 분은 남북한 양쪽을 모두 드나들며 음악활동을 했는데 한국이 민주화 개방화되면서 들어오기는 했다. 요컨대 친북적이었다는 의미인데 바로 이런 분들이 '분열된 자아'를 안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분열적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수천년간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유태인'들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2천년에 걸친 인간의 역사에서 정말 '특이'했다. 구덴베르크가 활판 인쇄술 발명 이후 최초이면서 가장 많이 찍어낸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 지금도 성경은 베스트 셀러이다. 스테디이면서 베스트셀러인 책이다. 그런데 그토록 많이 팔린, 어쩌면 '아카보' 소총만큼이나 지구에 대량으로 보급된 '성경'책에서 유태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로 나온다. '성경'을 배우는 '어린이'들은 언제나 이 대목에서 '유태인'에 대해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되지 않은가? 

'성경'에 의해 유태인들은 결국 분열적 자아를 가진채, 어디서건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울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근대적 의미의 계급해방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은 모두, 유태인들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같은 민족'끼리 살았던 시기는 거의 드물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이 그러했듯, 중국에서 '북방' 유목이 세운 제국은 전부 '혼합민족'으로 구성되었다. 가령 원제국이 그러했고 청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왜 '민족'이 탄생했는가는 매우 흥미있는 주제인데, 도스토에프스키가 속한 '러시아 민족'도 그러한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그러하듯, 러시아인들도 동유럽에서 '대륙'을 가로질러서 캄차카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하여 잘 사유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러시아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성되엇음을 전혀 인지하지 않는 것이다.  

도스토에프스키는 '미친' 소설가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분열증의 경계에 있었고 형제들이 그러했기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썼을지 모른다. '분열적 자아'로 저작된 이 작품은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인류학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내적 접근법이라고 여긴다. 바로 그 사람들이 '되어' 생활을 묘사하지만 허나 '묘사'하는 주체는 '함께 살아가는' 그 주체에서 또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천재가 많았을까? 그들은 언제나 '내적 접근법'의 세상에 생존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 버금가게 도스토에프스키의 생애가 그러했다. 이 책은 그의 그런 생애를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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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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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정말 대단한 무엇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서양이 동양으로 '서세동점'하게 된 이유는 수학 때문인 듯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양'화 때문이다. 사물을 보는데 수학적 사유는 '양'으로 본다. '양화'가 정말 중요하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여럿'이 아니라, '무한히' 수를 헤아릴 수 있게 된 순간, 인간은, 무한대를 향하게 된 것이다. '무한대'의 개념이 중요한게 아니라, 무한대에 이르지는 못해도, 엄청나게 큰 '숫자'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동안 '천문학적 숫자'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사실 아직도 이것은 '숙어'로 쓰인다. 천문학의 숫자들이 엄청나게 커서 그러했다. 헌데 이것이 점점 작이졌다. '경제학적 숫자' 때문이었다. 내 얘기가 아니라, 매우 '유쾌'한 경제학자 갈브레이스 이 사람의 사유였다. '경제학적 숫자'가 '천문학적 숫자'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 미국의 '부채'를 숫자로 표시하면서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수학에서 숫자보다 대칭성이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다. '양화'된 덕분에 가령 수학을 사용한 뉴턴의 물리학에서, '로켓 발사의 원리'가 나오고 정교한 '공학적 계산'까지 파급되어 실제로 로켓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귀가 아프게 설명해 봐야 소용 없다. 요컨대 우리가 친숙하게 보는 사룸들이 '양화'된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어서 나온 산물이기는 하지만, 생각하기는 골치아프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수학도 있는게 놀랍다. 그게 기하학이고, 대칭과 대칭성은 그 한복판에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내용보다 저자에 관심이 더 많다. 마흔살의 생일에 '시나이 반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를 보면서 홍해 바다를 전망하는 저자가 부러울 따름이다. 정말 이렇게 되기 어렵다. '수학자'이면서 '사물'을 수학적으로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사실 '대칭'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울지 모른다. '정리 정돈'이란 사실 대칭성에 대한 강박 아닐까? 그런데 이런 강박적일지도 모르는 사유를 하는 수학자가 시나이 사막에 40세 생일에 머무른다니 이런 것이 놀랍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조선시대의 한 '예화'에서 알 수 있듯, 대칭과 대칭성에 대하여 궂이 따질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양화'로 나아가는 수학이 발전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달리 본다면, 시나이 사막과 같은 장소에 가 있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 '기생' 처녀가 평생을 초막에서 지낼 수 있었던 시대가 '조선'이었다. 놀랍다! 대칭성보다, 초가지붕에 열리는 둥근 박이, 초가지붕 너머로 떠오르는 달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표상이었다. 대칭? 따질 이유가 있었는가? 

내게 어쩌면 대칭은 강박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교실에 가 보면 안다. 모든 사물들이 다 대칭이다. 그만큼 반듯하게 정리 정돈이 된 모습이다. 직사각형의 교실 직사각형의 칠판 직사각형의 태극기! 가만히 보면 단 한개의 사물도 '대칭' 아닌게 없지 앟은가? 

이런 측면에서 대칭은 강박이다. 요즘은 바뀌고 있다. 거리를 걷는 청소년들의 옷차림에서 알 수 있다. 좌우의 대칭을 과감하게 파괴한다! 강박을 벗어난 것 같다. 디자인에서 한국의 '대칭'이라는 강박은 파괴되고 있다. 자연계가 그렇지 않은가? 대칭을 이룬 것처럼 보여도 사실 조금씩 다 다르다. 왼발과 오른발 같은가 다른가? 신발의 크기도 사실 같을 수가 없다. '대칭의 강박'은 가령, 바지의 왼쪽 오른쪽 '가랭이'를 동일한 모양과 색깔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진다. 물론 '강박'이 아니라 '미학'이었을 것이다. 오래되니 달라지는 것이다. 디자인에서부터 알 수 있다.  

원래 동양에 대칭이 없었다. '대칭'을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양화된 수학을 사용하여, 오차를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는 이런, '테크놀로지'에 입각해야 정확한 대칭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서양적 사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보인다.  

동양인이라면 전혀 관심을 갖지도 않을 자연의 사물에서 참 많은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나이 사막 같은데서 꿋꿋이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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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발전사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반자본 발전사전 - 자본주의의 세계화 흐름을 뒤집는 19가지 개념
볼프강 작스 외 지음, 이희재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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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원적지 '케냐'는 19세기 말 부터 '벌써' 유럽인들이 애호하는 지역이었다. 야생동물 때문이었다. 이런 흐름은 지금도 지속된다. 특히 미국 대통령의 원적지가 되면서 이제 '인류의 발생' 지역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헌데 1인당 지디피는 여전히 2천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왜 한국을 상찬하는가? 1960년 케냐는 1천달러, 한국은 3백달러였는데 지금 케냐는 2천달러, 한국은 2만달러이니 칭찬 안할 수 있는가?  

'빈곤'의 문제는 과연 나라도 해결하지 못하는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사람들은 '나라'를 평소에는 무척 싫어 하는 것 같으며 특히나 간섭을 무지 싫어한다. 헌데 무슨 '일만' 생기면 다 '나라'를 찾으니 어찌된 일인가 말이다. 대표적으로 주식시장이다. 폭등 할때는 아무도 나라 따위는 관심도 안갖다가 폭락하면서 자살자가 생기고 이러면 '나라 뭐해'라고 한마디씩 한다. 

좀더 편하게 '국가'라고 해 보자. 또는 더 편하게 '정부'라고 해 보자. 한때 유행했던 개콘의 코너중 운동권 학생이 있었다. 팔뚝질을 해댄 끝에 내리는 결론은 '정부는 000 하라'라는 것이다! 결국 폭락장의 주식시장과 운동권은 동일하게 '정부는 00 하라'라고 요구하게 되는가? 

다음 문제는 이거다. 빈곤의 문제는 정말 국가도 해결하지 못하는가? 인류가 만일 '무정부'로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헌데 불가능하다. 이유가 뭘까? '잉여' 때문 아닐까 한다. 그날 벌어 그날 먹는다면, 그해 생산한 것으로 그해 먹고 만다면 요컨대 '달랑거리듯' 산다면 그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생산력이 너무 커서 문제 아닐까.  

나는 그래서 '빈곤' 문제의 해결은 매우 쉽다고 여기는 편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수나라' 때 10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하는 역사가 있지 않았는가. 그정도로 농업 생산력이 뛰어났다는 것인데, 100만명이 '군대'에 동원되지 앟고 농업에 종사하면서 '군량'을 백성들이 나눠 먹을 수 있으면 '빈곤'은 퇴치 가능하다.  

하지만 '나라'는 이미 지구에서 별 의미있는 행위자가 아니라서  

그래서 또 문제다, 왜 생태주의적 발상은 꼭 '최정점'의 발전을 이룩한 사회에서 나오는가 이런 문제이다. 쉽게 말해서, 너무도 잘 먹고 잘 사는 듯 보이는 선진국에서 나오는 배부른 발상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1800년대 말엽에 존 스튜어트밀에 의해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이 제시되었다. 그는 '고원에서의 정상적 상태 지속유지'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던데 오늘날의 '지속가능발전' 개념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사유였다. 

이 발상은 다시금 반복되어, 아마도 1970년대 초반의 '로마 클럽 보고서'가 원천일 것이다. 이로부터 1972년의 '유엔인간환경회의'가 촉발되었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이미 논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산업화'로 나아가고 싶은 개도국은 '오염'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선진 산업화가 되어 있는 스웨덴은 영국의 석탄연소 오염물질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후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은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중이다. 이 '반자본발전' 사전은 이렇듯, 생태주의나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에 바탕한 '사유'를 몽땅 집대성했다.  

문제는 이 책에서 '거론'되는 사유의 바탕에 여전히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어쩌고 저쩌고 담론이 많다. 발본적 사유를 자랑하는 독일인들도 마찬가지처럼 여겨진다. 독일인들이야말로, 전국시대의 제나라 관중처럼, '나라'를 이용하여 '빈곤'을 퇴치한 대표적 사례를 남긴 사람들인데, 지속가능발전과 생태주의 사유에서도 그야말로 발본적으로 '바닥까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국가'가 이제는 월드컵 '국가대표'를 파견하는 어떤 지구의 지역 정치단위처럼 되었다는데 있다.  

과연 새로운 산업국가의 탄생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래서 다음 문제는 새로운 산업국가의 탄생이다. 아니 그냥 '지속가능발전이 확립된' 사회의 생성이라고 해보자. 바로 이런 것이 문제이다.  

문제를 '나열'하기는 정말 쉽고 비판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데, 새로운 길과 전망을 여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는 발전된 선진 산업지역과 '원료 혹은 농산물' 공급 지역으로 나눠서 성립해 있다. 농산물과 광물 공급지역은 여전히 빈곤의 문제를 안고 있으니 어찌된 일일까? 아무리 농업지역이라고 해도 그 생산력은 100년전에 비교하여 거의 100배 수준이다. 오늘날에는 유전자 조작 기술까지 가세하여 농업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올려 놓았다. 사실 농업만으로도 인류는 살만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속가능발전이나 생태주의 사유의 문제는 여기에 내재된다. 나는 그것을 단순히 정리한다. '비관주의'이다. 여기에는 별로 전망이 없다. '생태주의' 사유는 게다가 과거를 늘 낭만주의적으로 왜곡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그리운 고향마을의 정자나무 깊은 그늘이 있던 풍경 이런 것이다.  

헌데 춘궁기에 곡식이 떨어져서, 산과 들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마을이기도 했다. 인간의 관심과 시선은 어찌 이리 다른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인류의 전망은 무엇인가? 

이것은 물음으로 남겨둔다. 아무리 생태주의 운돋가의 선의를 인정한다고 해도 결과는 전혀 엉뚱해서 그러하다. 헬레나 호지는 그가 소개한 생태주의 히말라야 산록을 결국 관광지로 바꿔치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래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가차없이' 냉정한 사유가 적절하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당위'로 채색하지 말라는 것인데 생태주의는 거의 '당위'로 채색하여 과거를 미화하는 사유에 이른다. 요순시대를 그리워하는 사유와 뭐가 다를 것인가. 이런 소박한 무정부주의적 사유가 그 귀결인가. 하지만 이 순간에도 인류는 수백만의 '젊은 청년'을 군인으로 보내고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경제를 유지하고 있지 앟은가. 소박함음 미덕일 수 있지만 어떤 조건에서 무지로 바뀌며 결국 '비열'에게 당하고 만다는 교훈을 새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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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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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도 아무나 하지 않음을 실감한다. 인터넷 서점이 '서재'를 앞다퉈 개설하면서, 그야말로 책읽기를 밥먹기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그게, 실제 그런것 같지는 않다. 리영희 선생의 평전도 정말 두툼하여 읽기 쉽지 않다.  

 

인터넷 중독증 벗어나기와 두툼한 책 읽어 보기 

인터넷 중독 증세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정보의 홍수'속에 떠밀려 이곳 저곳에 표류한다. 인터넷 세대는 과연 제대로된 '지성'을 키울 수 있을까 의문이다.  

장점은 있을 것이다. 방대한 분야의 지식을 확보한다는 의미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어떤 분야을 제대로 파고드는 지식인이 될 수 있겠는가이다.  

책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다, 당대의 '금기'를 깨고 금지된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국사에서 '지성인'의 표본과 같은 리영희 선생은 바로 이런 '금기를 넘어서' 광활하게 읽으신 분이셨다.  

 

'대위' 출신의 군인이었지만 한국적 좁은 시야를 깨고 광활한 세상을 엿보다. 

한국인에게 부과된 덫이 두개 있었다. 근대화,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대신 눈과 귀를 멀게하는 것이었다. 당대 이렇듯 '눈과 귀'를 멀게하는 이데올로기를 속칭 '반공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생성한 주인공은 바로 '박정희'라는 이름의 무려 18년을 대통령에 재임한 사람이었다. 리영희라는 이름이 빛나게 되는 것은 장준하라는 이름이 빛났던 것과 비슷했다. 장준하 이 분이 독립지사로서 '일제시대' 저항의 정당성에 터하여 박정희 정부에 저항했다면, 리영희 선생은, 대위에서 전역했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섰던 것이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빨갱이'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리영희 선생의 60년대와 70년대는 반공에 '이의'를 가하는 것이 곧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는 험학한 시대였다.  

결국, 한국인의 시야는 엄청나게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과거 '옆구리'에 두고, '호수'를 건너 다니듯 중국 대륙에 빈번하게 왕래했던 한국인들의 대중국 왕래가 끊겼다. '휴전선'에 의해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조차 막혔다. 한국은 영락없는 섬나라가 된 것이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냉전해체'의 현 시대를 예견하다 

'섬나라 한국'은 '섬나라 일본'처럼 급속한 근대화 산업화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쉽지 않은 기회를 잘 잡아채서, 베트남 전쟁에 젊은이들이 피흘린 댓가까지 '밑바탕' 삼아 오늘의 한국을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산업화의 도약 시기였던 1960년에서 1980년까지 20여년간, 한국은 오직 '비행기'를 타고 '동서남북' 중에, '서쪽으로가는 것이 '금지'된 채, 동남북으로만 다닐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시대,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인위적인 '죽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과거 '한국'에 문물을 전래했던 중심지 중국이 갑자기 한국인들에게 접근 금지의 '중공'이 되었던 것이다. 거대한 붉은 중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그냥, '빨갱이'들이 '지옥'을 만들었거니 했다.  그 지옥의 경계선이 '한반도의 휴전선'처럼 여겨지도록 교육을 받았는데 그것이 반공교육이었다.

이런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 시점에 리영희 선생은, 두가지 방향으로 한국인의 좁은 시야를 깨는 일을 했다. 특히 반공방첩으로 가리워진 눈과 귀를 열어주는 '이성의 빛'이 되었던 것이다. 외국어에 능통했고 '합동통신'사에 입사하여 외신부 기자를 한 덕분이었다. 그에게 지구는 비밀스런 모습을 가끔씩 드러냈고 그는 '미국'과 '중국'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비국과 중국이라는 두방향으로 한국인의 우물안 시야를 열어 젖히는 일을 했던 것이다. 이런 작업은 '전환 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이라는 두 저작에 담겼다. 모두 창작과 비평사 간행이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미국의 실체에 대한 접근의 성과물이었다. 오늘날 냉전이 해소되고 한국 자본이 중국에 투자하는 시대에 이르러, 이 저작을 다시 살펴 보면, 정말 냉정하고 폭넓은 시야로 국제정치적 '사실'을 냉정하게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대 이 서적은 불온이었다. 오늘날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보다도 더 심각하게 '금기'를 건드린 불온이었던 것이다. 당대 산업화 체제의 '역린'을 건드렸던 것인데 어떤 형태의 반미도 용납할 수 없었던 박정희 발전국가의 포지션 때문이었다. 물론 '반미' 못지 않ㄱ '친중'도 불가능했는데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1988년 올림엑 즈음해서야, 한국인은 당시의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깃발이 내걸린 경기장에서 '소련'을 응원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다 빨갱이 몰리는 거 아니야 걱정하면서. 당연히 '중공'을 응원하는 것 조차 어렵지 않았는가!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한 이 두 '공산주의' 국가는 한국인에게 금기였던 것이다.  

 

'8억인과의 대화'를 하면서 죽의 장막을 펼쳐 올리다  

'미국'은 무조건 '선이어야 했고 소련과 중곡은 무조건 악이었다. 진리는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사실'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미국은 조선시대 영조대왕이 승하하고 정조대왕이 '즉위'하던 1776년 무렵 건국된 나라였다. 한국의 정조 즉위시점 건국하여 지금에 이른 나라인 것이다. '정조' 이전의 조선시대 존속기간인 400년에도 못미치는, 역사라고 변변히 있지도 않은 나라였다.  

헌데 이 미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 발을 딛으면서, 임진왜란 시기의 '명나라 군대'하고 동일하게, '작전 지휘권'을 인계 받아서, 한국 전쟁을 지휘했다. 그리고 나서 한반도에 '군영'을 설치했고 머무르게 되었다. 이후는, '미국'이 곧 과거 '중화주의' 시대의 중국을 대신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 대한 비판적 사유 따위는 완전히 금기사항이었다. 오늘에 비춰서 정말 말도 안되는 통제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외신은 언제나 '사실'을 전하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리영희 선생은, '국제정치적 사실'을 엿본 것이고 특히 베트남 전쟁의 원인과 경과, 결과를 냉정하게 꿰뚫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중국'의 가리워진 진실을 살펴보고자 했다. 그래서 '8억인과의 대화'를 툴간했다. 이 책은 '민주화가 전진'되면서 출간된 덕에 '금서' 목록에 오르지 않았다. '죽의 장막'을 열어 봤더니, 글쎄, 과잉인구의 중국이 나타났던 것이다. 공산주의보다 인구과잉이 더 문제 아니었던가! 사람 사는것은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차이가 별반 없는데다가, 오히려 중국이 과거 '중화'의 모습이 아니라, 초라하고 빈곤한 전근대 사회로 떠올랐던 것이다.  

 

당산 대지진 시기의 중국인과 뉴욕 정전 시점의 미국인 

오늘의 시점에서는 한번 더 사유해 봐야 한다. 미국인들이라고 과연, '따뜻한 한조각'의 마음씨 없을까! 허나 리영희 선생은 중국의 '인간적'인 모습에 기울어져, 1976년 당산 대지진 시점에서 중국인들에 대하여 감동적 묘사를 했다. 8억인과의 대화에 나온 이야기 한토막 요약이다. 

1976년 당산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 났지만 '초라하고 가난한' 중공의 당산 사람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당국의 조치에 따라 침착하게 대처했다. 단 한건의 절도 사건도 없었고 단 한건의 방화와 강도, 살인 등의 사태가 없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의 뉴욕 정전에서는 엄청난 약탈과 방화 사태가 있었다. 리영희 선생은 이런 '대조'를 통해 '가난하고 초라해도'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열망했던 셈이다. 그에게 미국의 문명적 사람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1970년대의 뉴욕 정전사태는 물룬 1994년의 '엘에이 폭동' 사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당대에 역시 박정희 정부의 탄압으로 미국으로 망명 비슷하게 피해갔던 '이장희' 이분이, 자신이 운영하던 엘에이 교포방송을 중심으로 침착하게 대처하여 약탈과 난동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널리 알려져, 당시 부시 대통령의 방문까지 얻었다는 스토리를 낳은 사태였다. 이 사태에서 엘에이 일부 사람들은 가로를 휩쓸고 다니면서 온갖 약탈을 자행했던 것이다.   

모두 흘러간 역사가 되었다. 오늘 한국의 신세대는 이런 역사에 대하여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밀'을 엿보고 한국인의 시야를 확짤 열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한 리영희 선생도 세상을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리영희 선생 등. 한국인은 최근 수년새에 '스승'에 해당하는 분들을 떠나 보냈기에 허전하다. 2005년 세상을 떠난 숭산스님까지 떠올려 보면 그러하다. 한국인의 동시대 스승에 해당하는 분들 아닌가. 어떤 분이 있어 다시 '시대의 양심'으로 한국인의 앞길을 밝혀 줄 수 있을까? 

리영희 선생에 버금가는 지성의 탄생을 기대하며 

인터넷 지식을 흡수하는 것만으로 미흡함을 말하고자 한다. 선생은 외국어 습득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다했고 영어에 능통했으며 이런 이유로 폭넓은 시야를 갖췄던 것이다. 오늘날 후학들이 그를 귀감 삼아 정말 폭넓은 시야를 갖추는 지성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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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아브람 노엄 촘스키.미셸 푸코 지음, 이종인 옮김 / 시대의창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마이클 샐던의 '강의'가 교육방송에서 방영되면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다가 엉뚱한 질문을 한 여학생에게 '자상이 지나치도록' 설명을 반복하는 모습에서 놀랐다. 

과연, '존 듀이'의 나라 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글을 쓴 바 있듯, 나는, 대체 왜 이 시점에서 미국의 윤리학자가 제시한 '정의'가 화두로 떠오르는지 모른다. 

차라리 나는 '사실'이란 무엇인가부터 규명해야 하지 않나 싶다. 장하준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있다. 그는 '사실'을 역사적 관점에서 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왜 이 시점에서 장하준이 '갑자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지 이것도 의아스럽다. 장하준이 유효했던 것은 지금부터 5-6년전인, 참여정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우익' 개발독재론자처럼 보였다. 헌데 지금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국가'를 방패로 사용하는 반신자유주의 전사처럼 보인다!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래서, 오연호와 조국의 대담집에 대하여 글쓰는 것이 내키지 않은 것 만큼 이 책도 그러하다. 미셀 푸코에 대하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촘스키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아닌것 같기도 하다. 그의 '변형생성문법론'과 '미국 지성의 대표자'처럼 되었다는 것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오랫동안 '백락청' 이분이 누리는 지위 같은 것일까? 허나, 마이클 샐던과 비슷하게 이성과 정의를 내세우는 칸트주의처럼 보여서 좀 그러하다. '칸트주의'는 한국인에게 별로 낯설지 않기 때문에. 절에가서 열심히 염불수행 해 보면 안다. '칸트주의'가 뭔지 전혀 몰라도, '일체유심조'가 뭔지는 안다는 것. 그저 모든게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고. 칸트는 그것을 좀더 멋지게, 복잡하게 그리고 '난해한' 독일어로 풀었을 뿐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선험적 형식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촘스키 이론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언어를 사용하는 선험적 형식을 타고 난다"   

한국 속담을 좀 응용하면 이렇다. "모든 얘들이 제먹을 것 타고 나듯이, 제가 말할 것 타고 난다.(말 못할까봐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이게 대체 뭔가? 이 순간, 미셀 푸코의 '광기'에 부닥친다. 나는 이것이 적절하다고 보는 편이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철저'하기 시작하면 못말리게 철저하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2등'인 신세속에 있는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반영한다고 할까? 아마도 1815년에 '빛나든 지성'이었던 라플라스가 '잠시동안 1등'을 했던 프랑스 황금시대 정점의 대표적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그때 이후, 프랑스는 언제나 '영국'의 '절친'으로서, 영국군 가는 곳에 함게 갔다. 북경에도 갔는데, 제2차 아편전쟁이라고 한다. 그 댓가로 베트남의 '영유권'을 '불하' 받았다. '불하' 받아서 오랫동안 베트남을 '경영'했는데, 그런 이유로, '베트남 전쟁'은 프랑스와 관련된다.  

'광기'라는 푸코의 개념은 '감옥'과도 관련되지만, 그야말로 열광적인 프랑스인의 특징과도 관련되는 것 같다. 우리는 가미가제가 일본인들이 원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원조는 미드웨이 섬 주둔 공군의 핸더슨 소령이었다. 이 소령의 비행대가, 일본군 함대에 그냥 달려든 바 있었다. 그러니까, 광기는 결국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어느 시기'에 나타나는 양상인 셈이다. 특히 전쟁시기에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다. '좋은 민족' 혹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은 애초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이클 샐던만큼이나, 촘스키가 내내 주장하는 '이성'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한다. '이성' 즉 '리즌'을 샐던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촘스키하고 똑같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그토록 비판했다. 같은 전쟁을 보고 푸코는 '광기'를 떠올렸다. 1971년 대담했으니, 베트남 전쟁이 '새로' 시작된지 무려 20년 가까이 된 시점이었다. 사실, 프랑스의 식민지 영유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베트남 전쟁은 거의 100년이나 지속된 것이다.  

일본군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점령'하자 갑자기, 식민지 경영의 주인이 바뀌었다. 베트남인들은 또 저항했다. 1945년 전쟁이 갑자기 종료하자, 이번에는 서에서 영국군, 북에서 중국군이 들어왔다. 이 두 군데는 곧 나갔지만, 아니, 1954년, 프랑스군이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베트남인들은 디인 비엔 푸에서 프랑스 공정대를 물리쳤다. 그야말로 결사항전이면서 총력전이었다. '독립'을 하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미군이 들어온거다! 이런! 대체 무슨 운명이기에 당대 '제국주의'라고 칭해지는 나라의 군대들이 '러시아' 빼고 다 들어오는거야? 

그 미군들이, 프랑스군을 인계하여, 베트남의 남쪽을 장악하면서 다시금 기나긴 전쟁이 지속된 것이다. 무려 20년간 지속된 이 전쟁은 고엽제 같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 사용될 정도로 인류의 극단을 보여준 전쟁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셀 푸코는 '광기'를 말한 것이다. 물론 그 '광기'는, 베트남에서 비록 철수 했지만, 프랑스인에게서도, 1950년대까지 가령 지중해 건너편 알제리 같은데서 나타났지만.  

나는 그래서 서양에서 유래한, 칸트가 그토록 강조한 '이성'이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게 있는가? 미셀 푸코가 아니더라도, 붓다께서 간결히 정리하셨다. '탐 진 치' 삼독이라고 말이다. '삼독'은 실체이면서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탐 진 치' 말고 '이성'이란 있는가? 아마도 정신 바짝 차려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선명하여, '속지' 않게 되면 그 마음상태를 '이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 '속아' 넘어가는게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맹자가 아니라 순자이듯, 촘스키가 아니라 푸코이다.  

이 글은 여기서 종결된다. 한국인들은 이제 다시금, 사마천의 사기나 한서의 반고,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읽어야할 시점에 도래했다. 이성보다 광기가 더 인간을 파악하는데 맞어 떨어진다고 여긴다면, 그 광기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정시켜왔는지 사례를 연구해야 한다. 하다못해 십팔사략을 읽는게 이런 대담집을 읽는 것 보다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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