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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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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학은 정말 대단한 무엇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서양이 동양으로 '서세동점'하게 된 이유는 수학 때문인 듯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양'화 때문이다. 사물을 보는데 수학적 사유는 '양'으로 본다. '양화'가 정말 중요하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여럿'이 아니라, '무한히' 수를 헤아릴 수 있게 된 순간, 인간은, 무한대를 향하게 된 것이다. '무한대'의 개념이 중요한게 아니라, 무한대에 이르지는 못해도, 엄청나게 큰 '숫자'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동안 '천문학적 숫자'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사실 아직도 이것은 '숙어'로 쓰인다. 천문학의 숫자들이 엄청나게 커서 그러했다. 헌데 이것이 점점 작이졌다. '경제학적 숫자' 때문이었다. 내 얘기가 아니라, 매우 '유쾌'한 경제학자 갈브레이스 이 사람의 사유였다. '경제학적 숫자'가 '천문학적 숫자'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 미국의 '부채'를 숫자로 표시하면서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수학에서 숫자보다 대칭성이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다. '양화'된 덕분에 가령 수학을 사용한 뉴턴의 물리학에서, '로켓 발사의 원리'가 나오고 정교한 '공학적 계산'까지 파급되어 실제로 로켓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귀가 아프게 설명해 봐야 소용 없다. 요컨대 우리가 친숙하게 보는 사룸들이 '양화'된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어서 나온 산물이기는 하지만, 생각하기는 골치아프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수학도 있는게 놀랍다. 그게 기하학이고, 대칭과 대칭성은 그 한복판에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내용보다 저자에 관심이 더 많다. 마흔살의 생일에 '시나이 반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를 보면서 홍해 바다를 전망하는 저자가 부러울 따름이다. 정말 이렇게 되기 어렵다. '수학자'이면서 '사물'을 수학적으로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사실 '대칭'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울지 모른다. '정리 정돈'이란 사실 대칭성에 대한 강박 아닐까? 그런데 이런 강박적일지도 모르는 사유를 하는 수학자가 시나이 사막에 40세 생일에 머무른다니 이런 것이 놀랍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조선시대의 한 '예화'에서 알 수 있듯, 대칭과 대칭성에 대하여 궂이 따질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양화'로 나아가는 수학이 발전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달리 본다면, 시나이 사막과 같은 장소에 가 있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 '기생' 처녀가 평생을 초막에서 지낼 수 있었던 시대가 '조선'이었다. 놀랍다! 대칭성보다, 초가지붕에 열리는 둥근 박이, 초가지붕 너머로 떠오르는 달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표상이었다. 대칭? 따질 이유가 있었는가? 

내게 어쩌면 대칭은 강박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교실에 가 보면 안다. 모든 사물들이 다 대칭이다. 그만큼 반듯하게 정리 정돈이 된 모습이다. 직사각형의 교실 직사각형의 칠판 직사각형의 태극기! 가만히 보면 단 한개의 사물도 '대칭' 아닌게 없지 앟은가? 

이런 측면에서 대칭은 강박이다. 요즘은 바뀌고 있다. 거리를 걷는 청소년들의 옷차림에서 알 수 있다. 좌우의 대칭을 과감하게 파괴한다! 강박을 벗어난 것 같다. 디자인에서 한국의 '대칭'이라는 강박은 파괴되고 있다. 자연계가 그렇지 않은가? 대칭을 이룬 것처럼 보여도 사실 조금씩 다 다르다. 왼발과 오른발 같은가 다른가? 신발의 크기도 사실 같을 수가 없다. '대칭의 강박'은 가령, 바지의 왼쪽 오른쪽 '가랭이'를 동일한 모양과 색깔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진다. 물론 '강박'이 아니라 '미학'이었을 것이다. 오래되니 달라지는 것이다. 디자인에서부터 알 수 있다.  

원래 동양에 대칭이 없었다. '대칭'을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양화된 수학을 사용하여, 오차를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는 이런, '테크놀로지'에 입각해야 정확한 대칭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서양적 사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보인다.  

동양인이라면 전혀 관심을 갖지도 않을 자연의 사물에서 참 많은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나이 사막 같은데서 꿋꿋이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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