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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도스토에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유명하다. '형제들'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자기 분열'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미친 자신'이 있고 그 '미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안미친 자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내적 접근법'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다. 그 결과, 도무지 '자아'라는 것을 통합시키기 어려운 사람들의 '분열'된 마음에 근거한 연구 방법론이 '내적 접근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가령, 독일에 살았던 윤이상과 같은 음악가가 있었다. 이 분은 남북한 양쪽을 모두 드나들며 음악활동을 했는데 한국이 민주화 개방화되면서 들어오기는 했다. 요컨대 친북적이었다는 의미인데 바로 이런 분들이 '분열된 자아'를 안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분열적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수천년간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유태인'들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2천년에 걸친 인간의 역사에서 정말 '특이'했다. 구덴베르크가 활판 인쇄술 발명 이후 최초이면서 가장 많이 찍어낸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 지금도 성경은 베스트 셀러이다. 스테디이면서 베스트셀러인 책이다. 그런데 그토록 많이 팔린, 어쩌면 '아카보' 소총만큼이나 지구에 대량으로 보급된 '성경'책에서 유태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로 나온다. '성경'을 배우는 '어린이'들은 언제나 이 대목에서 '유태인'에 대해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되지 않은가? 

'성경'에 의해 유태인들은 결국 분열적 자아를 가진채, 어디서건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울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근대적 의미의 계급해방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은 모두, 유태인들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같은 민족'끼리 살았던 시기는 거의 드물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이 그러했듯, 중국에서 '북방' 유목이 세운 제국은 전부 '혼합민족'으로 구성되었다. 가령 원제국이 그러했고 청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왜 '민족'이 탄생했는가는 매우 흥미있는 주제인데, 도스토에프스키가 속한 '러시아 민족'도 그러한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그러하듯, 러시아인들도 동유럽에서 '대륙'을 가로질러서 캄차카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하여 잘 사유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러시아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성되엇음을 전혀 인지하지 않는 것이다.  

도스토에프스키는 '미친' 소설가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분열증의 경계에 있었고 형제들이 그러했기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썼을지 모른다. '분열적 자아'로 저작된 이 작품은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인류학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내적 접근법이라고 여긴다. 바로 그 사람들이 '되어' 생활을 묘사하지만 허나 '묘사'하는 주체는 '함께 살아가는' 그 주체에서 또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천재가 많았을까? 그들은 언제나 '내적 접근법'의 세상에 생존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 버금가게 도스토에프스키의 생애가 그러했다. 이 책은 그의 그런 생애를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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