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2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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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그의 3부작 역사서의 20세기 완결편 제목이기도 하다. 이 스케일 웅장한 역사학자는 제국주의와 그 전개에 대한 연구에 천착하였다. 그리하여 17세기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 19세기 제국의 시대를 거쳐 20세기 극단의 시대까지 서술하고 있다.

 

'극단의 시대' 한 귀퉁이에 우리나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우태의 저작 남부군 이후, 한국의 사회적 조건이 크게 달라졌다. 그리하여 '이현상 전기'가 출간될 정도가 되었다. '이현상 평전'의 '묘사'는 '극단의 시대' 한자락에 위치한 한국의 슬픈 역사적 기록이다. 극단의 시대에 '극한의 상황'속에 처한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이현상은 어느 시점에서 총맞아 죽을 운명이 결정되었을까? 나의 관심사가 이것이다. 내가 '전기'를 쓴다면, 시대와 역사적 조건에 대한 '배경'을 심층적으로 이해한 다음,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 사유와 느낌 하나 하나를 그사람의 관점에서 추적체험 하면서 배경의 시대를 여행해 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연기론적 사유와 '업의 이론'에 근거하여, 직면해가는 상황과 사태속에서 그 사람의 선택과 이후 행로 이런 것에 대하여 서술하고 묘사해보고자 한다. 이런 경우, 어느 순간의 '업'이 그로 하여금 총을 맞는 죽음에 이르도록 하였는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언제 그러했을까? 강동정치학원 '입교'가 결정된 순간 그러하지 않았을까?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강동정치학원에 입교하여 군사적 기능을 닦은 이현상은 남으로 내려와서 지리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유격대'를 모아서 조직화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바로, 다음 순간, 이현상이 '극단의 시대' 한 귀퉁에서 총을 맞고 죽을 운명이 결정된다. 나는 그 사건이 여수순천 반란사건이라고 생각한다.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수 주둔 14연대의 반란사건이었다. 바로 여기서, 여러 사람들의 짧은 인생이 결정되는데, '군사 반란'이라서 그러하다는 측면 보다는, 전혀 전략이나 전술 그리고 준비 이런것 고려하지 않고 거의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태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그 핵심에 '지창수 하사'가 있었다. 광주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던 이 지창수  하사관의 엄청난 행동 능력이 '운명'이었다. 왜냐하면 곧바로 병사들을 전투상황으로 돌입하도록 하면서 맨 먼저 장교들을 보이는대로 사살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14연대에는 20명의 남로당 중앙당 비밀당원이 있었다고 한다. 병사 비밀당원들은 도당소속, 장교들은 중앙등 소속. 서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발적 봉기속에서 장교들을 보이는대로 사살하면서, 계획없는 봉기의 '실패'를 그 순간 예비해 버린 셈.  물론 이 와중에 김지회 중위는 살아 남았지만, 결국, 홍순석 중위와 더불어, '주막'에 유인되어 술한잔 걸치고 죽음에 이르는 운명이 이때 준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의 시대'에 '극한적 상황'속으로의 돌입을 '충동적 결정'으로 행한다! 이 시점에서 순천역에 도착한 이현상이 '이럴수가!' 하면서 학살사태에 넋을 빼았겼다는 것이고, 바로 이때, 이들의 운명은 결정된 셈이다. 대한민국 남쪽 끝 순천에서 빚어진 14연대의 반란과 엄청난 대학살 사태는 사실, 오늘날 우리가, 아프리카발 뉴스에서 느끼는 끔찍함을 완전히 넘어서는 사태였다. 한발짝만 역사의 바깥으로 나아가도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범상치 않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여 불교와 도교처럼 '초월적' 종교들까지 어우러져 문화국가를 일구어온 한국인들이 이 당시에 잔혹사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카오스 이론에 따라, 여수 순천에서 벌어진 사태는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되는데 그게 한국전쟁인 셈이었다. 결국 순천역에서 이현상이 넋을 잃고 학살 사태에 한탄하면서 14연대 봉기의 성격을 우발적이고 충동적이며 무계획적인 사태로 인식하는 그 순간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무계획'이라는 것은 앞으로 살아남을 확율이 적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불과 4년여만에 '대성골'에서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비운의 운명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상은 대성골에서는 목숨을 구하지만 유격대 해산가 본인 자신이 하산을 결정한 직후 결국 총을 맞고 죽음을 당하게 된다.

 

에릭 홈스봄의 '극단의 시대' 규정에 의한다면 20세기는 사람 살만한 시대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럴 밖에 없다. 두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포함하여 전대미문의 전쟁이 벌어진 시대가 20세기였다. 정치의 연장으로서 '전쟁'이 아니라, 과도한 잉여물자 소모의 경제적 행위로서 전쟁이 시행된 시점이 20세기였다. '전쟁물자'도 한두종류가 아니라 거대한 항공기에서부터 전차, 대포, 개인화기 등등 다양해졌다. 여기 잠수함이나 초거대 전함, 항공모함까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합류했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와 기술이 이렇게 효율적 효과적으로 개발되고 발명되며 사용된 적이 없었다. 유럽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그레이트 워'라고 기억한다는데 제2차 세계대전은 그 규모를 훨씬 뛰어넘었다. 당시 소련인들은 2천만명 정도가 사망했으니 말다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인들이 약 1천2백만 정도 죽었다고 한다. 당시 인구가 약 6천만 정도였으니 6분의 1이 죽은셈인가. 독일인들이 이랬다. 그런데 또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에 불붙이는 역할을 독일인이 떠맡게 되었고 그 결과 극단의 시대에 가장 '극악한' 나라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허나, 독일인들은 연극의 대본에 따라, 그저 악역을 맡은 것처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은 사실 독일과 소련의 엄청난 '소모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히틀러를 월가의 금융에서 지원했고, 소련의 군수물자는 전차를 제외하고 대부분 미국의 루즈벨트가 지원했으니, 결국 '엄청난 생산력'을 갖춘 미국에서 모든 것을 대줬다는 얘기다. 동유럽 대평원에서 독일군 3백만이 소련군 5백만하고 맞붙어 두나라가 '체계적으로' 소모된 과정이 노르망디 상륙 직전의 전쟁 모습이었던 것. 이런 이유로 음모론의 학자들은, 월가에서 미국의 돈을 거두어서 독일에 투자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투자 덕분에 미국이 대공황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1930년대에 독일은 경제부흥을 이룩하면서 비밀 군비증강으로 돌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이런 일을 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갔다. 물론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전 '독일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의 '강자'가 되어 영국과 더불어 세계를 '통치'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을 확대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허나, 일단 배역이 정해진 이상, '전쟁 도발'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 음모론가들의 관점이다. 훗날의 북한 김일성이나 이라크 후세인, 이란의 호메이니, 세르비아의 밀로세비치 등등 이 비슷한 배역은 줄줄이 이어져갔다. 

 

정말 심하다! 이런 '기획전쟁설'에 의한다면 또 누군가 전쟁유발의 악역을 맡게 된다는 것인데, 21세기초인 지금은 그런일이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극단의 시대'가 종식되고 좀더 평화롭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공생하는 시대가 되면 안될까? 

 

한국에서는 1940년 말에서 1950년초까지 몇년 안되는 기간동안만 '빨치산'이 존재했다. 한국의 지형과 기후는 빨치산 투쟁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현상의 전기는 그러니까, 어떻게 '극단의 시대'에 역사의 '계기'를 타고 결국 '소멸해 가듯'한 빨치산 투쟁으로 한 인간이 나아가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여기, 그릇된 판단은 여기 저기 끼어들고 있는셈이다. 지창수 하사의 충동적 결단이 특히 그러했고 바로 이와같은 '역량'을 과하게 평가한 박헌영의 판단이 그러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의 성격을 그릇 판단한 김일성의 오류가 가장 결정적일 것이다. 물론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확인하고, 애치슨이 한반도 방위선을 제외한다고 선언한데다 미군까지 철수 했으니 전쟁의 '유혹'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꼭 그 시점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적일까? 문화적일까? 1990년 이라크 후세인이 씨아이에이 장학생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이란-이라크전쟁을 일으키고 마무리한 직후에, 미국인의 '방문'을 받고 들은 얘기가 있다. 미국은 이라크가 중동에서 어떻게 하든 관여할 생각이 없다. '쿠웨이트'라는 먹이를 먹어도 관여 않겠다면서 '흘린' 것이다. 여기 넘어가서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세인. 휴! 포클랜드를 침공한 당시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 '먹을 것'이 눈앞에 나타나고, 먹어봐 먹어봐 모른척 할께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래서 행동으로 나아간다! 행동력이 강력한 '캐릭터'가 이럴때 필요한데, 하필이면 김일성과 후세인, 밀로세비치, 그리고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대통령 전부 왜 그리 캐릭터가 비슷한 것일까? 사상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역시 또 음모론 시각에 의하면, 영국의 빅터 로스차일드는 수천만 달러를 러시아 혁명에 투입했고 성공했다. 미국의 데이비드 록펠러는 트로츠키에게 1만달러를 제공했고 이 돈을 가지고 러시아에 돌아온 트로츠키는 레닌과 함께 혁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이 혁명을 지정학적으로 해석하면, 당대의 강대국 러시아의 퇴장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탈락, 그리고 브레스토-리토브흐크 조약에서 보듯 동유럽 지역의 '독일화' 또는 유럽화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짧은 전간기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서 냉전체제가 성립했다는 것인데, 보다 확실한 '계기'의 폭발이 필요했고 그래서 '한국전쟁'이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이유로는, 스탈린이 한번 정도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군과 전쟁을 벌일 '이유'가 충분히 있긴 했지만 유럽지역에서는 과도한 모험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한다. 베를린 봉쇄를 시험적으로 해 보고 나서, 아시아에서 대리 전쟁을 벌리는 것이 소련체제 안정화에 도움된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래서, 요컨대 대리전쟁을 한반도에서 유발한 셈인데, 문제는 이 '전쟁'으로 나아가는 약 5년간의 '시간대'에 있었다. 특히 남한에서는 전평과 민전과 조선공산당 그리고 나중 남로당이, '전쟁기획'에 걸맞는 배역을 충실히 수행했는데, 당시 미군정은 남로당 창당식에 와서 축사까지 하는 정도였다. 기가막힌(!)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추긴 것일까? 그럼 이현상은 '소멸'과 '죽음'이 예정된 '배역'을 맡아서 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배역치고 정말 험난하다. 지창수나 김지회의 경우도 그렇다. 이들은 그야말로 짧은 인생을 살고 나서도 '반역자' 낙인을 갖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사람들. 이현상은 물론 남에서 반역자이고 북에서는 영웅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기획전쟁의 배역중 하나로 보는 역사인식은 정말 비극적이다.

 

이현상 전기에는 그야말로 '극단의 시대'에 관한 모든 얘기들이 다 나오고 있다. 체게바라? 약과다. 이현상의 짧은 수년간의 체험은 그야말로 '체게바라' 정도는 간단히 돌려 세운다. 짧은 기간동안의 역사적 배역! 특히 청주시내 습격 사건 같은 것은, 국군이나 경찰의 관점에서, 나아가 단정노선의 이승만 정부 관점에서는 '치욕'이었다. 만일 체게바라식 관점을 택하면 낭만이 되겠지만 그러나 체게바라에 비교하여 이현상의 행장은 너무도 짧았고 그중 가장 강렬했던 것이 청주시 기습이었던 것. 이것을 끝으로 더 남으로 내려간 이현상은 '예정된 소멸'의 행로를 밟게 된다. 당시 미국에는 너무도 많은 군수물자가 쌓여 있었고 이것이 국군에게 아낌없이 보급됬다. '배역'에게 맡겨지는 소품들일까? 유격대 또한 보급창고 습격에서 얻은 물자가 많이 비축되어 있었다. 곳곳에 '신형 엠원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정도로 물자가 남아 돌았다는 이야기이며 엠원 소총은 특히 그러하다.

 

'극단의 시대'는 이렇게 과잉생산된 전쟁물자를 소품으로 전개된 시대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엠원소총과 티34탱크로 상징될 것이다. 북한 인민군은 짧은 시간동안에 스탈린이 보내준 물자로 무장했는데 그만큼 소련군에게도 물자과 무기가 남았다는 의미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남는 무기도 처리하고 무엇보다, 유럽지역에서의 긴장을 아시아쪽에서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안성마춤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통일 같은 것은 '기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도올이 한탄한다. 500만이 사상했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다! 있다! 국제정세를 제대로 인식해야 맹동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 하나를 얻는다. '민족'의 개념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절대로 전쟁같은 수단을 회피하는게 옳다는 결론도 있다. 다른 것은 극단의 시대를 장식하는 군사 과학기술의 '극단'과 관련된다. 이현상이 남하할때 모습을 드러낸 비행기들은 당대의 최신 발명품 네이팜탄을 퍼부어댔다. 지상에 '불의 지옥'을 현현하는 이 무서운 발명품! 베트남 전쟁에서 1960년대에 가장 무참하게 사용된 이 폭탄은 바로, 그보다 앞선 한국전쟁에서도 엄청나게 투하된 것이다. 베트남 정글이 불타는 모습은 이미, 1950년 한국전쟁에서 시현된 바 있었던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세균까지 투하하여 이현상 부대는 전염병을 앓으면서 다수의 대원들을 잃었는데 글자그대로 세균무기의 실험장이 된 셈이다. 네이팜탄과 세균무기의 시현장이 한반도였던 것. '극단의 시대' 배경이 이 두가지 무기로 인식된다.

 

그래서 체게바라 얘기를 낭만으로 보는 사람들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이현상과 그의 수하에 관한 이야기는 글자 그대로 어떻게 정해진 죽음을 향해 사람들이 나아가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미군에게서 넘치도록 보급을 받은 국군 3개 사단이 '토끼몰이' 식으로 유격대를 대성골로 몰아서, 박격포등 중화기로 거의 몰살을 시킨 이런 '작전'까지도 그렇다. 이후 베트남에서 시행되는 '토벌' 작전의 원형이 지리산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중요한 사실은, 폭탄이고 탄약이고 실탄이고 전부 남아돌았다는 것. 군복까지 그러했고 엠원 소총은 너무도 흔해 빠져서, 마치 유격대가 가져다 사용하게 창고에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래서 전쟁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 영역에 속하게 된 것이고, 20세기가 극단의 시대가 된 이유이다. 사람조차도 '소모'품이 되어서 전쟁에서 소진되어 갔는데 그 와중에 '경기'은 활황이었고 완전고용이 실현되었으며 몇 나라는 경제가 완전히 살아났다. 당시 독일과 영국 특히 일본이 시혜를 받은 나라였다. 이현상과 그 수하들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 많은 잉여물자를 '소모'해주고,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동원된 국군이나 나아가 한국전쟁에 동원된 미국과 유엔군을 '뒷바라지'하면서 많은 달러를 벌었기 때문일까?

 

다행스럽게 내가 생존하는 시점은, 1960년대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지나서 현재 21세기 초이다. 정말 '운좋은' 시기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전쟁을 거치고 우리나라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세가 꺾여서 지금은 매우 어려운 위기로 다시 진입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1950년대 이현상이 직면했던 상황하고는 전혀 다르다. 이현상과 더불어, 제주도 파병을 거부하면서 '봉기'의 길로 나아가 결국 1년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 지창수나 김지회, 홍순석 같은, '극단의 시대'에 '극한의 배역'중에서도 도화선에 불 붙이는 배역을 맡은 사람들에 비하면 약과 아니겠는가? 허나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옛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다. '산 사람'은 하여튼 살아야 하는 것이 주어진 '소여'라서 그러하다. 극단의 시대에서 가장 '극한적 조건'을 피해서 사는 것을 다행으로 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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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육의 성공 - 경쟁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학력으로
후쿠타 세이지 지음, 나성은.공영태 옮김 / 북스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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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100년 지나도 선진국 못따른다는 "앞으로 10년간한국의 경제예상"이라는 제목의 '비관'적 글이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경제현안 게시판에 있더군요. 특히 교육과 관련하여 그 분은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이유는 '창의력' 교육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의 창출은 사실 창의력 교육이라는 '현재'의 준비와 '미래'의 결과라는 것 외에 다른 조건들이 많이 작용하게 되죠. 가령 미국과 유럽은 19세기 '식민지'를 수탈한 역사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허나 한국은 오히려 식민지였던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2만달러의 소득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핀란드도 오랜 세월 러시아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 체험을 겪은 나라로서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한국, 핀란드, 대만 정도 되겠습니다. 아시아지역의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도 식민지를 겪은 나라이지만 한국이나 핀란드, 대만 수준에는 못미칩니다. 

사실 그대로 본다면, '현재' 한국의 경제성장은 '과거' 교육에 대한 '투자'에도 분명히 기인하는데, 박정희 정부 시절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육의 폭발적 확대는 물론, 특성화 공대나 과기원의 설립과 해외 유명 과학자 초빙, 젊은 인재의 발탁과 정부의 전적인 지원에 의한 교육 이런 것들이 맞물렸죠. 당대에는 초등학생들의 1순위 꿈이 과학자였습니다. 바로 그렇게 꿈을 꾸었던 당대의 '어린이'들이 '오늘' 액정판넬 이런 것 개발하면서 한국을 최첨단 디지털 산업경제속에 있게한 사람들이죠. 그리하여 이제 다음 문제는, '오늘날' 어린이들의 꿈이 무엇인가이며, 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서 '미래'의 나라 전망과 맞게 하는지입니다.
 
 
경쟁을 도입한 영국의 교육개혁과 경쟁을 폐지한 핀란드의 교육개혁 
 
정말 되풀이 말해왔지만, 박현주의 '금융꿈나무' 이런 것이죠. 사실 2000년 코스닥 거품의 정점 무렵에 아이들의 꿈은 벤처기업가였습니다. 그러다가 펀드매니지로 점점 바뀌었습니다. 요새는 아마 '펀드매니저'도 아닐 것입니다. 주식지수가 1400대로 내려왔기 때문이죠. 이렇게 '시류'와 아이들의 꿈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위의 글은 미래의 산업에 대한 전망이 적절한 교육체제와 일치할때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핀란드가 어떻게 산업과 교육을 전환했는가의 설명인 것 그리고 여기에 현재 한국교육이 당면한 문제를 헤치고 나갈 단서가 있는 것입니다. 핀란드 교육은 간단히, 영국과 반대였습니다.
 
영국의 교육개혁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경우였습니다. 1979년 대처의 집권 이후부터 시도되었기 때문이죠. 간단히, '경쟁원리'에 따라 교육 전체를 뒤흔들어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대처리즘'의 기조중 하나가 국가의 '해체'였는데 교육부문에도 '경쟁'을 원리삼아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여전히 고등학교까지 무상의무교육 체제가 유지된다는 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자립형 사립고나 국제중학교나 과학고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특성화 고교 같은 것은 많이 생겼었습니다. 미국에서 발달한 헌장학교 같은 것도 영국사례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국교육개혁은 '새로운 학교체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체제에 '경쟁'을 도입한다는 이런 기조였습니다.  
 

먼저, 영국은 학교간 경쟁체제를 도입했습니다. 학교평가를 위한 표준화된 지표를 도입했죠. 여기 교원평가도 포함되는데 학부모와 외부 평가 전문기관을 '표준화된 지표'와 더불어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반면 핀란드는 학교간 개인간 경쟁을 폐지했습니다. 교육철학의 기본을 '협력'에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양적평가에 연결되는 '표준'의 폐지로 나가게 되죠. 영국이 원래 지방분권화되고 특히 단위학교에 맡겨졌던 교육과정 설정권을 중앙집중으로 바꿨습니다. 영국은 관습법의 나라답게, 학교교육과정도 원래 없었습니다. 교사가 알아서 교수요목에 따라 스스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중앙집중 표준화된 지표와 내용을 갖춘 교육과정으로 바뀌었죠. 여기 학교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학교평가'를 도입하고 평가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교육 기준청'이라는 관청을 만들었고 이것은 한국식으로 교육과정 평가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핀란드는 '표준'을 폐지해버렸습니다. 중앙집중 교육과정을 지방분권과 학교단위 자율로 맡기는 방향으로 개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집중의 폐지와 더불어 '표준을 아예 철거'했다는 사실입니다. '표준'이 철거된 핀란드 교육은 따라서 '정답이 없는' 이런 교육을 지향하며, 이때 교수 학습의 기본원리가 '사회적 구성주의'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구성주의 - 창의력 중심 시험인 피사 성적 1위를 올리는 비밀
 
'사회적 구성주의'란 고정된 진리의 '객관적 존재'를 부인하며,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토론 및 대화 과정속에서 진리가 '생성'된다고 보는 철학관이죠. 자칫 '상대주의 함정'에 빠질 우려도 있지만 핀란드와 같이 '정직'한 사람들 분위기속에서 굉장히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핀란드 교육은 영국과 정 반대로 나아갔고 성공했습니다. 중요한 지점! 영국의 교육개혁이 1979년경 시작되어 대처와 그의 후계 메어저 집권이 대처리즘의 실패와 더불어 끝나고 토니 블레어의 '제3의길 노선'이 등장하던 시점까지 지속되었습니다. 토니 블레어기 1998년 집권했죠. 이때 중요한 배경이 '광우병'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교육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토니 블레어 집권 이후 대처리즘 기조가 약간 완화되지만 크게 달라지지는않은 상태에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핀란드 교육개혁은, 영국의 '실패'가 확연히 드러나던 1995년경에 시작됩니다. 그래서 '영국의 교육개혁 실패'는 핀란드의 반면교사였던 것입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 이명박 정부는 사실 '국적불명' 한국의 고유한 교육개혁을 추진중인데 별것이 아니라 과거 19세기 '혁명의 시대'에 폐지되었던 '사교육 기관'으로서 '별도의 귀족학교' 체제를 부활시키는 방향이죠. 영국에 '이튼'이 있다지만 한국과 전혀 다른점 아실 것입니다. 국제중학교는 이런 복선혁 학제 부활의 신호같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국 교육에 '반짝' 나타났던 핀란드식의 '사회적 구성주의' 가까웠던 이해찬 장관 초기 교육개혁에 대하여 핀란드의 교육에 비추어 다시한번 짚어보도록 합ㄴ다. 이 반짝 이해찬 세대는 사실 부자신문의 '학력저하' 선동에 2년여만에 철회되고 다시금 '양적 학력주의'로 회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양적 학력주의'로의 회귀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2000년에 있었던 '과외금지 위헌' 판결이었습니다. 바로, 1980년 전두환 정부에 의해 제정되었던 이 '과외금지가 합헌' 판결을 받고 더불어 이해찬 1세대의 반짝 창의력 교육 시도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피사가 2000년에 '정답없는 교육을 받은' 핀란드 학생들이 잘 맞출 수 있는 요컨대 창의력 중심 문제를 출제했고 이때 한국이 핀란드 다음의 2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피사 순위는 조금씩 내려가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과학의 경우 지난해의 시험에서 12위를 기록했다 합니다. 바로, '창의력' 교육을 철폐하고 다시금 '양적 학력주의'로 돌아선 통렬한 결과입니다 
  
 이런 이유로 2000년 과외금지 위헌판결은 한국교육의 분수령이 된 셈입니다. 바로 이 시점부터, 구 운동권 그룹들이 강남에서 과외를 하면서 '사교육'이 점점 번성하게 되는데, 그 '정점'이 현재 코스피 지수에 밀접히 연동되면서, '애널리스트'로 하여금 '교육정세 분석'을 하게끔 만든 것이 '메가 스타디'같은 회사의 주식가격이 되겠습니다. 아마 '작전세력'도 있을 듯 합니다. 현 정부에서 '테솔' 같은 것 강화방안을 '몇월 며칠 낸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메가스터디 주식을 매집하겠죠. 발표와 동시에 주식가격이 폭등합니다. '정부'의 '교육정책 발표'가 사교육 기업의 주식을 폭등시키는 '유력한 재료'인 것입니다.  
  

한국교육의 고질적 병폐 - 기업화 사교육 - 정답 확정 수험경쟁교육 -창의력 저해 
 

주식시장 애널리스트 중에는 이것만 전문으로 분석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상반기에 사교육비가 17% 증가했다는 통계는 어쩌면 '실제보다 축소'된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물가폭등 추세속에서 사교육비 또한 폭등했습니다. 따라서 사교육비는 더 늘었을 것입니다. 현 정부, 사교육비 3분의 1로 감소를 공약했지만 그야말로 반대방향으로 갑니다. 사교육비 3배로 확대될 것입니다. 이는 사교육이 아예 기업으로 성립하도록 하고 결국 국외 금융투기세력들이 교육에 대하여 군침을 흘리도록 만든 정부 교육정책의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경쟁'을 기본으로 설정하는 것도 좋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경쟁'의 내용과 '질이죠. 
 
점점 심각해져 갑니다. 차라리 교육 콘텐츠 경쟁이면 낫겠지만. 간단히, 수험경쟁입니다. 심지어 대학도 그렇다는 것 다 아실 것입니다. 가령 교원 임용고시는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수험경쟁'으로 전락했습니다. 대학마다 최고의 교육학 강사를 불러다가 대학생들에게 '과외'를 시키죠. 학원 다니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영국과 비슷하게 '표준'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면, 각종 수험에서 출제되는 시험문제입니다. 이것이 '표준'이 되고 이 '표준'은 특벌히 집중된 훈련을 받으면 소화할 수 있습니다. 문제풀이이기 때문이죠. 이런 것이 '국제중학교'가 생기므로서 초등에서 중고교를 거쳐서 대학교까지 다 '만연'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경쟁을 유도하는 '표준'은 그러니까 '정답이 확정된' 각종 '고사와 고시'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교육은 가장 값싸고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교육 구매력이 높은 상류층에 유리하죠. 물론 '출제자'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바로 이래서 아이들이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아무리 공부 해 보아야 창의력은 길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길러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험문제 풀이' 능력이죠!
 
핵심중 하나는, 같은 경쟁이라고 해도, '정답없는 문제'를 얼마나 출제하고 근거있게 채점하여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하는가이죠. 요새 한국에 도입되는 논술식 시험이 이런 평가를 할 수 있지만 한국적 조건에서 거의 어렵습니다. 첫째는 학부모가 납득 어렵고 둘째는 학급당 인원이 과다합니다. 핀란드는 학급당 인원 16명에서 25명이라는 여건을 갖추고 이런것을 교사들이 전문으로 하도록 합니다. '정답없는 문제'를 출제하고 여기에 '정답'을 쓰고 무엇이 정답인지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갖춰야할 기본 능력이 됩니다. 허나 한국은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바로 이래서 '사교육 구매력'이 결국 사회계층을 갈라놓게 되죠. 물론 교육이 창의력과 전혀 무관한 문제풀이와 '정답찾기'가 되버리는 것이고. 문제풀이와 정답찾기는 사교육 구매력으로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시중의 소문, 보통 아이들을 국제중 입학시키는데 3천만원이면 되고 과학고 입학시키는데 1억이면 된다고!
 
독과점 세대의 계층 재생산에 기여할 뿐인 현 정부의 경쟁중심 교육개혁
 
이런 교육은 간단히, 독과점 세대의 '독과점' 유지에 유리하죠. 자신들의 독과점 유지에 필요한 지식만을 '수험'의 대상으로 하고, 자신들이 하는 일 중심으로 '정답'을 만들어서 출제하면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세대가 사교육 구매력도 높으므로 요컨대 독과점 세대가 '계층 재생산'에 유리한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임직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한 목적의 '하나은행 자사고' 같은 형태는 글자 그대로 더욱 독과점 세대에게 유리한 것입니다. 이렇게 '두방향'으로 문제가 되죠. 첫째, 특권계층의 재생산, 둘째, 미래의 희망 창의력 인재 육성과 무관한 교육.
 
한국교육이 핀란드하고 똑같이 나아갈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맞는 지점을 찾아야겠죠. 허나 위의 글은 반면교사를 통렬히 짚어냅니다. 1999년 무렵의 세대는 반짝 열심히 책읽고 수험경쟁은 덜하면서 보냈습니다. 요컨대 '놀면서' 지냈던 것입니다. 당시 전교조 교사들도 합법화 시점이어서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간단히, 기존 암기식 수험경쟁을 지양하기 위해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들이 학교에 정착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이해찬 장관의 여러줄 세우기 교육과 맞물려 반짝 '열심이 책읽으며' 수험경쟁에서 약간 벗어난 세대들이 탄생했던 것이고, 그 다음해의 '피사' 시험에서 핀란드 다음으로 최상위권을 차지했다는 것에서, 위 서평은 핀란드 교육과 한국 교육의 유사점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한 '시도'라도 풍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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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1-0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핀란드 교육과 한국 교육의 유사점은... 안타깝게도 전혀 없네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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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김현구 옮김 / 현실문화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벨라미 포스터. 그의 짧은 책이 나를 깨우쳤다. 바로, '엄청나게 요란스러운' 문제제기와 엄청나게 미흡하고 콩알만한 '실천'제안이 환경담론 또는 환경교육이라서 그러하다. 벨라미 포스터에게 환경담론은 일종의 요란떨기에 불과하다. 물론 환경교육도 그렇다.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환경담론'의 맹점이 환경교육에도 고스란히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경제적 쟁점을 회피하는 '교양주의'와 환경담론 - 사회과학적 사유로부터의 탈출 

그 '맹점'중의 하나는 '쟁점'으로부터의 도피라는 것이다. '쟁점'을 다루는 것은 교육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관점 말이다. 이는 교육을 일종의 '교양' 증진으로 여긴다. 아주 틀리지 않지만 문제는 이들이 '점잖음'과 '교양주의'에 빠져서 쟁점을 '회피'하는 경향이 중증이라는데 있다. 이홍우나 조동일의 교육론이나 학문론이 그런 것 같다. 이들에게 물론 앵글로 색슨의 경향을 찾을 수는 없다. 오히려 전자는 '불교'에 후자는 '유교'에 뿌리를 내린 것 처럼 보인다. 전자는 불교에 근거를 내리고 있어서 과도한 교양주의는 벗어난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깨달음'이나 '세상을 보는 눈'처럼 사실상 '학문'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운 주장에 머무른다. 그냥 수행불교로 '이전'하여 그런 주장을 하면 아주 알아듣기 쉬워진다. 그런 것도 아니고, 객관적 지식을 배우는 '목적'이 '깨달음' 또는 '세상을 깊게 보는 안목열기' 이런 것이라서 불교를 빙자한 '본질주의'라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서 나오는 주장은 '고유의 가치'론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재적 가치'이런 이야기는 생태주의나 낭만주의에서 흔하게 했던 담론이기도 하다. 

벨라미 포스터가 뛰어나다는 점은 이런 '담론'을 아주 쉽게 당대의 사회경제적 조건들과 결합하여 설명한다는데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영국 산업화'의 절정에서 이미 '지속가능발전'에 와 닿는 '조화로운 발전'의 개념을 제창했듯이, 현대의 환경론과 생태주의 담론은 사실 '이미' 인간의 역사속에 내재되었던 담론이라는 것이다. 이는 '총 균 쇠'의 제레드 다이아몬드에 의한 문명사적 역사에서 잘 나타난다. '인구압력 가설'은 사실 맬더스에 대한 '논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특정 환경조건과 여기 근거한 생산양식이란 특정의 사회적 관계와 법적 제도적 문화적 '상부구조'에 의해 짜여지며 단순히 '절대적 사람의 개체수'로 과잉 과소를 판단할 수 없음을 다이아몬드가 말한다. 이미 10세기 이전 바이킹의 '이주'가 인구압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요컨대 적절한 산업과 사회관계 법제도 상부구조를 '구성'하지 못했기에 아주 간단히, 외연확장이란 방향으로 가버린 것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환경론적 '순진함'과 더불어 '역사'에 대한 해석의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요컨대 '지속가능발전'이라는 것도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무슨 이야긴가. 정화함대를 해체하고 바다건너 외연적 확장을 중단한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이야기다. 다른 측면에서 석탄산업화를 이룩했다고 하더라도 궂이 영국인들처럼 전함을 건조해서 '이주'할 필요가 있었겠는가의 이야기다. 외연적 확장이란 사실 '인구압'보다는 특정 사회에서의 '사회적 경제적' 갈등을 '해소'하는 아주 손쉬우면서도 '모순'을 외부로 전가해버리는 방책이다. 이는 인간의 역사 곳곳에서 발견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가령 바이킹의 사례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고찰이 있다. 아이슬란드가 지속가능한 산업을 발전시키게 된 까닭은 이제 더 이상의 '외연적 확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인종이나 민족 또는 국가에 의한 '외부적 강제'가 이들을 주저 앉히고 '지속가능성'을 확립하도록 했다면 틀린 것인가? 이 지점에서 환경문제 해결의 선행문제가 바로 '사회적 관계'와 '경제적 빈부'의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있게 고찰해 본다면 이러하다. 리스트의 보호무역론을 일종의 '외연적 확장'이 억제되는 경제의 성장 방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독일이 빌헬름 시절에 비스마르크에 의해 세계최초 사회복지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더 그렇다. 당시 세계최초의 화석연료 산업화를 이룩한 '영국'은 아주 손쉬운 '외연적 확장'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사회 내부적 갈등을 외부화시키는 방식으로 '식민지 개척'은 최적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국가의 산업화는 억제하였다. 첫번째 화석연료 산업국가로서 영국에 의한 다른 국가의 '산업화' 억제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리스트의 보호무역론과 국민경제론은 일종의 '내재적 발전 전략' 비슷한 것이었다. 이 모델을 일본이 따라했고 미국도 그 범주에 있었다. 이 경로를 따라서 한국까지도 산업화를 이룩했다. 자유무역론과 비교우위론은 일종의 산업화 억지에 대한 학문적 합리화에 불과했다. 물론 생태적 관점에서 달리 들여다볼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리스트의 국민경제론과 보호무역론은 영국의 '억제'를 딛고 독일이 일어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불충분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비약적 산업화가 가능했던 것은 영토내에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와 철광석과 같은 자원이 풍부했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독일 사람들의 근면 성실함과 프로이센적 '병영'조직력까지 가세했다. 리스트의 국민경제론과 보호무역론은 당대에 이미 '자유무역론'의 함의를 꿰뚫고 나간 셈이다. 이 끝자락에 장하준이 있다. 사실 '정유공장'이 한국에 있고 말레이지아에서 보크사이트가 생산되기에 '보크사이트'를 팔고 석유를 '사가면' 된다는 이런 식의 '비교우위론'을 따르다가는 말레이지아 같은 나라의 산업이 발전할 길이 전혀 없다. 영국적 자유무역론에 의하면 말레이지아는 영영 정유공장을 가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볼때 우리나라가 정유공장이나 제철소를 보유하게 된 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거나 지정학적 유리함 때문이라고 해석 가능하다. 이탈리아의 마테이가 '독자적' 정유와 제철업을 일으켜 2차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이탈리아 경제를 부흥시켰지만 결국 의문사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박정희를 아무리 '독재자'라고 욕한다 해도 그가 있어서 정유공장이나 제철소 건립한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런 이유로 '살해'된 것이라 한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환경담론에 절실한 사회과학적 사유, 사회과학에 절실한 환경담론적 사유  

벨라미 포스터의 논의는 매우 의미있다. 환경교육이 얼마나 '목사님 설교'처럼 들리는지 잘 일깨운다. 환경문제는 사실 그리스 로마시절부터 있었다. '과잉인구'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인구압력 가설'을 이야기하나 자연사적 경험주의에 빠져 있기에 '사회관계'의 문제는 빼먹는 경향이 있다. 맑스의 후계자들은 사회관계에 과도히 집착하여 '자연사'적 관점 또는 환경결정론적 한계에 대한 사유를 빼먹는 경향이 있다. 맑스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후학들 문제이기도 하다. 너무도 쉽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이런 과도한 단순함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벨라미 포스터의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는 많은 가르침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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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석기용 옮김 / 이마고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인간이 무엇을 해 왔고 할 수 있는가? 아마 '하지 말아야' 했을 일들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무엇이건 다 할 수 있다.

종으로서 인간은 지구에서 크게 성공했다. 허나 어떤 개체도 '유한'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까? 인간은 개체로서 무한 생존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 만큼 '류' 또는 '종'으로서 무한 번식하려는 '경향'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

이런 인간에게 과학기술은 그냥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이른 바 아카데믹 내적 과학사에서는 사회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난 과학사를 추구한다.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에 배어 있는 '피'의 기록 때문일 것이다.

프로젝트로서 과학기술의 출발점 - 포르투갈 엔리케 왕자의 해양 개척 프로젝트

과학이 스스로를 아무리 '고상'하게 치장하고 싶어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과학자라 불리우는 일군의 사람들이 하는 덧칠에 불과할 뿐이다. 요컨대 과학 또는 기술도 인간활동의 영역에 속한다. 문명사의 여명기에서부터 그러했다.

가령 중국의 역사에 나오는 '우왕'이 왕이 된 까닭은 '치수'를 잘해서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여럿 출현한다. 그중에 가령 온갖 식물과 열매 씨앗등을 '맛'보고 그 용도를 분류한 사람들도 출현한다. 이 사람들이 과학기술자의 원형에 해당된다. 서양 과학사에도 광물질까지도 무엇이건 맛보는 것으로 평생 '약제'를 연구했던 과학자가 나오는데 그런 왕성한 탐구심 덕분에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20세기의 과학자인 마리퀼도 자신의 발명이며 발견이었던 라듐의 방사능에서 얻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아이러니 참 많다. 

단지 그런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스의 '별보고' 걷다가 거름덩이에 빠진 이런 유형의 과학자도 있다. 내적 과학사는 가급적 '거름덩이'에 빠진 이런 과학을 언급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제국주의 탄생이 과학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어서다.

출발부터 과학기술은 '프로젝트'였다. 놀라운 일이다. 1400년대 중후반이면 뉴튼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점이었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고전 그리스 로마 문헌이 재발견되고 있었다. 특히 그리스 로마의 과학은 유럽이 중세의 어두운 하늘 아래서 쟁투를 벌이던 시점에서 이슬람세계에서 잘 보존되고 발전되었다. 이런 이슬람 과학이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던 시점이 르네상스였던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 '출발'은 엔리케 왕자의 프로젝트였다. 그는 무어인에게서 빼앗은 재산을 투입하여 유럽 각지의 과학기술자를 모아 새로운 '배' 건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구시대의 갤리선을 50톤급의 '대양 항해용' 배를 건조하여 혁신하고자 했다. 

에스빠냐에서 프랑스 그리고 마침내 영국으로 옮겨간 제국주의

대략 1420년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5세기 후반의 역사를 잔혹사로 믈들여갔다. 포르투갈인들의 '프로제트' 자체를 나무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배를 타고 도달한 아프리카 해안에서 '흑인'을 강제로 납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물론 '부불노동'을 위해서다. 결국 식민지 개척과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렇게 강제 납치한 흑인 노예노동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굉장히 수지맞는 장사였다. 흑인을 끌어와서 '판매'할 수 있었고 이들을 부불노동에 투입하여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이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그리고 '시장'의 추악한 결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모든일들이 '프로젝트'로서 행해졌다는 것이다. 포르투갈 다음 차례는 이웃의 스페인이었다. 더 크고 재정이 풍부했던 스페인은 결국 컬럼버스의 북미대륙 항해와 바스코 다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나아가 마젤란의 세계일주까지 이룩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들에 의해 흑인 노예무역은 더 확장되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가담하면서 점점더 강화되어 갔다. 이것이 '제국주의' 경쟁의 출발점이었다. 15세기에서 16세기까지 과학혁명이 진행되었다. 고전 그리스 사상중에서 '어떤 것'들이 취사선택되어 되살아 났다. 새로운 세계관과 우주관이 형성됬다. 지구는 둥글고 유한한 표면으로 되어 있음이 확인된 반면 우주는 무한하게 확장되었다. 그 결과는 '신'의 자리를 인간의 '이성'이 대체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 - 석탄과 증기의 시대 그리고 자본주의 만개와 제국주의

그리하여 최종주자는 영국의 몫이었다. 일찌기 해군을 강화한 것도 있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이제 최종 승자로서 영국이 등장할 차례였다. 여기 산업혁명까지 거들었다. 그리하여 역사는 이제, '흑인'의 '부불노동'이 영국과 유럽 산업혁명 및 잉여의 축적에 의한 자본주의 탄생의 '밑거름'이었음을 보여준다.

강철구 역사학자는 '대서양 무역'이 자본주의 탄생의 잉여축적이 이루어지는 결정적 계기였음을 밝혔다. 인류사의 비극이다. 흑인들이 노예노동을 했고 그것을 누군가 공짜로 전취했다. 인도인은 거의 200여년간 그러했고 중국인은 100여년간 일부 지역에서 그랬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거의 500여년간을 그랬으니.

이런 모든 것의 배경에는 점점 발전해가는 과학기술이 자리잡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갈릴레이 전기작가들은 그가 '탄도학'에서 운동학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언급하기 꺼려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언급하는 '무기' 연구로 떼돈을 벌었다는 사실 같은 것은 전기에 올리지 않는다.

이런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엔리케의 프로젝트가 그후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확대, 반복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그 절정은 제1차 세계대전시의 영국과 제 2차 세계대전시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대편의 독일도 그 못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에 독일은 전기와 화학에서 크게 영미를 앞서고 있었다. 가령 농업생산력을 100배 향상시킨 위대한 발명 공중질소를 고정법은 독일인 과학자 하아버가 발명했다. 문제는 이렇게 인류를 살린 바로 그 사람이 인류를 죽이는 독가스를 개발한 과학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화학에서 디졌지만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레이다나 암호해독기를 독일보다 빠르게 개발하여 전쟁에서 이겼다. 사실 그렇게 말하기는 매우 쉽다. 이런 것을 '전략적 선택'으로 할 줄 알았던 정치 지도자를 상찬하기도 쉬운일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에 그런 '경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사실이 드러나기를 특히나 꺼려하는 것 같다. 하아버 같은 사람의 있는 그대로 모습이 드러나길 꺼려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로서 과학기술 - 불균형 양날의 칼

역사는 과학기술이 불균형 양날의 칼 임을 보여준다. 특히 그것이 시장원리, 자본주의와 결합하였을때의 문제를 남김없이 드러낸다.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바로 지금' 그렇다. 가장 최근의 '과학기술'은 아마 유전자 지도와 응용으로서 유전자 조작일 것이다. 거의 무한한 생산이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이 심어진다.

허나 하아버가 질소 비료를 발명했던 시점에도 그러했다. 인간은 언제나 '비약적' 생산력의 증대를 이룩했다. 허나 그 '잉여'를 가지고 같은 종간에 '절멸' 전쟁을 또 반복하여 벌렸다. 인간의 역사는 어찌보면 '절멸 전쟁'으로 점점 확대되어 가는 역사처럼 여겨질 정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행스럽게 국가간의 대규모 전쟁이 없는 60여년을 보냈다. 허나 가령 우리 한국인에게는 국토 전체가 황폐화되는 '아마겟돈' 전쟁이었던 6.25사변이 있었다. 사실 대량살상의 전쟁은 한국전쟁에 이어서 베트남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그래서 현대 과학기술에 의한 대량살상의 전쟁이 벌어진 곳은 바로 베트남에서 였고 이곳에서 저질러진 인류사의 죄악은 아무리해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과학기술은 '양날의 칼'이지만 불균형이다. 생산하고 번영하는 것보다 더 낭비하고 파괴하며 죽이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1945년 일본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은 어떤 이유를 들이 밀건 '불균형 양날의 칼'이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 입증한 경우이다. 그냥 동경만 앞바다에 떨어 뜨려 위협하는 것으로 긑냈으면 안되었을까? 궂이 도시의 한복판에 떨어뜨릴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실험' 치고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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