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프트 - L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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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에 대한 상당한 미리니름이 있습니다.)



영화가 이대로 끝나는 건가 싶었다. 레이코(나카타니 미키)와 고고학자 요시오카(토요카와 에츠시)가 소녀의 시체가 물 속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뻐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때, 뭔가 밋밋한, 약간 기이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망스러운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갑자기 기계가 둔중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소녀의 참혹한 시체는 물에서 끌어올려지고, 요시오카 교수는 반대로 물에 빠진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강한 시각적 충격이 생각을 정지시킨다. 그랬다. 이건,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였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하며 끝나는 마무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반복을 통한 영원한 순환. 이 속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마무리 되는 것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다. 관객을 절망을 통한 공포에 빠뜨리는 것이 그의 영화다. 아마, 이 마무리 장면이 없었다면, 뭔가를 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마무리 장면은 그 전의 장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편집장 기지마가 레이코를 습격해, 이상한 형태의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 나무를 통해 양쪽에서 목을 매는 기이한 형태. 반대쪽에서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끌어올려지는(즉, 목이 매달리는) 구조. 이것은 이 마지막 장면과 상당히 유사하다(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은 한편으로는 요시오카와 레이코가 땅을 파고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그 전의 장면의 반복이기도 하다). 죽은 소녀가 끌어올려짐으로써 요시오카는 물에 빠진다. 한 쪽이 끌어올려지면, 다른 쪽은 반대로 하강한다. 이 끌어올려진다는 것, 끌어올려짐의 형태는 어떻게 보면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일단, 미이라를 진흙 속에서 끌어올린 요시오카의 발굴 행위부터가 그렇다. 천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진흙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미이라를 끌어올린 요시오카의 행위. 그리고 사실 이마저도 반복이다. 사실 이 미이라의 발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 1920년대 처음의 발굴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 발굴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선가 이 미이라를 다시 진흙 속에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 미이라를 감시하는 기묘한 기록필름을 남겼다. 즉 이 미이라의 발굴 역시도 일종의 반복인 것,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기록된, 혹은 기록되지 않은 총 4번의 끌어올려짐이 나오는 셈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다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진흙을 토하는 레이코의 모습. 그런 것마저도 왠지 일종의 '끌어올림'을 연상시킨다. 뱃 속에 가득찬 진흙들이 식도를 타고 끌어올려진다...아니, 이것은 끌어올려짐을 너무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부터가 뭔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로프트(loft). 사전을 찾아보면, 다락방, 창고 같은 의미이다. 영화 팜플렛에 소개된 대로, 이는 레이코가 요양을 하기 위해 간 시골의 창고와 같은 집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로프트'라는 말은 '리프트(lift)'를 연상시킨다. 끌어올린다는 의미의 리프트. 이 '로프트'라는 말이 '다락' 혹은 '집의 가장 높은 층'을 의미함도 생각해 볼 때, 어원학적으로도 '리프트'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이 영화의 제목은 로프트 혹은 리프트다. 이 반복되는 끌어올려지는 행위.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가 늘상 그랬듯이 명확하게 제시되는 것은 없다. 단지, 어떤 불확실한 추측만 가능할 뿐이지만, 이는 왠지 어떤 욕구(욕망)와 관계되어 있는 것인 듯 싶다. 일단 욕구라는 것 자체가 가진, 끌어올려지는 어떤 속성. 우리는 흔히 욕구를 발산한다, 혹은 분출한다고 이야기한다. 발산한다, 분출한다는 것은 밑바닥에서 위로 끌어올려진다는 것이다. 내 속의 아주 깊은 진흙과도 같은 늪에 가라앉아 있던 욕망들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인물들의 행위는 어떤 욕구(욕망)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인물들은 파멸의 길에 다다른다. 1000년 전에 아름다움을 유지하고자는 하는 욕구로 진흙을 먹었던 어떤 여인은 영원히 죽지 못하는 미이라가 되었다. 그리고 편집장 기지마는 소녀를 범하려는 욕구를 채우려다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요시오카는 천년된 미이라를 자신의 학문적(그리고 학문을 통한 입신양명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기어이 늪에서 다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역시 소녀에 대해 어떤 욕구를 품고 있다가, 소녀의 죽음에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둘 다 파멸에 이르렀다. 그리고 레이코는...레이코의 파멸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정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소녀의 글을 자신의 이름으로 멋대로 출판했다. 그녀가 그 소설 원고를 봉투에 집어넣는 그 장면은 왠지 그녀의 어떤 파멸을 예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시오카가 물에 빠지고 사라진 후,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멀지 않은 그녀의 파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서 빠져나갈 공간이란 없다. 그녀는 또 어딘가에 가라앉을 것이고, 그 순간 또 누군가가 끌어올려질 것이다. 그리고 이 순환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

어느 것이 끌어올려지고, 그의 반대편에서 또 어느 것이 가라앉는 것, 그 순환성과 영원한 반복, 그것에서 비롯되는 빠져나올 수 없는 공포로 이 영화를 잠깐 생각해 봤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도식적인 해석일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사실 상당히 모호한 얼개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물론 이야기의 얼개를 전혀 짜맞출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장면들이 현실과 꿈, 혹은 상상의 경계 속에서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영화의 여러 등장인물들은 상당히 자주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잠시 후에 깨어나서 어떤 것을 바라본다. 이것은 꿈인가, 현실인가, 혹은 빙의된 상태인가. 예를 들어 요시오카가 기계를 돌리며 무언가를 물 속에 가라앉히고 있고, 뒤에서 레이코는 그만두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몽환적인 장면. 그 후에 바로 레이코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이어지는 이 장면을, 통상적인 영화 문법에 의해 관객들은 이를 꿈으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장면은 꿈일까. 레이코는 실제로 이 장면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혹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레이코는 혹시 누군가가(미이라가, 혹은 소녀가) 빙의되어 있는 상태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이미 레이코도 죽은 상태가 아닐까. 진흙을 토한다는 장면도 그렇게 보면 심상치 않다. 이미 레이코는 죽어서 몸 속에 진흙이 채워져 있는 상태가 아닐까...아무래도 여기서 상상의 나래를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이렇듯 꿈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리고 그 경계선 속에서 보는 우리는 빠져나갈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악몽의 가장 희망적인 요소는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 언젠가 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깨어난 후에도 여전히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태가 지속된다면,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만한 공포도 없을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어떤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희망과 절망의 경계선을 담아내기를 노린다." 그가 이 영화에서 그런 경계선을 그려내기 위해 활용한 방식은 독특한 카메라의 시점이다. 등장인물을 상당히 이상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장면들은, 마치 어떤 유령의 시점을 연상시킨다. 즉 등장인물들이 공포에 떠는 것을 바라보는 다른 각도, 그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장면 어딘가에 있는 유령, 혹은 환영 밖에는 없다. 그 유령이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순간, 그 바라보는 세계는 도리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음침하게 보인다. 마치 도리어 그 곳이 비현실이라는 것처럼. 그 경계선에 카메라는 서 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 속에는 있다. 요시오카와 레이코가 건물에 난 창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를 지켜보는 장면(포스터에 있는 장면). 레이코가 창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바라보는 건물 안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공간이지만, 요시오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밖에서 바라보는 레이코의 모습이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이상하게 보인다. 그 경계선에 화면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도 거기에 같이 위치하여 그 절망을 바라본다. 창 이쪽인가, 바깥인가. 어디로 나가도 당신은 피할 곳이 없다. 경계선 이쪽이나 바깥쪽이나 다를 것은 없다.

공포감은 거기에서 밀려온다. 그리고 거기에 이 영화의 소리를 활용하는 방식 또한 한 몫을 한다. 음악의 사용을 배제하고, 사물들이 발생하는 소리, 주위의 환경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증폭시켜서, 공포감을 창출하는 방식은 영화 <불신지옥>과 조금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때로 이 소리들은 완전히 사라지고, 고요한 속에 그녀가 서 있다. 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악몽을 꾼다. 아마 오늘 밤에도 악몽을 꿀지도 모르겠다. 꾸는 것은 무섭지 않다. 문제는 깨어난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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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9-0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쪽 저쪽 어느 쪽으로 발을 내딛어도 마찬가지라는 절박감,
그것이 공포감의 실체군요. 공포영화는 공간설정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구로사와 기요시는 여기서 로프트, 제목자체를 그렇게 둔 것 같네요.
볼까말까 너무 공포스러울까싶어 그러고 있는데 맥거핀님 리뷰 보니
보는 쪽으로 마음이 갑니다. 그나저나 악몽을 꾸셨는지요?
깨고나면 다 꿈인 것을요.. 그래도 그 경계의 모호성이 두려워요.

맥거핀 2009-09-06 22:44   좋아요 0 | URL
네..^^ 악몽 비슷한 꿈을 꾸기는 했습니다만, 뭐 그렇게 무서운 꿈은 아니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물은 반응이 극단적으로 약간 갈리는 것 같아요.
전혀 무섭지 않다는 쪽과 어느 공포물보다도 무섭다는 쪽.
저는 아마도 후자쪽에 들어간다고 봐야하겠지요.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물은 볼 때는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을 잘 못하는데,
이상하게 계속 어떤 이미지들을 떠올리며, 잠시 섬뜩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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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그것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을 알았을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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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제이건 간에, 영화제에 참여하는 것은 즐겁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하나는, 영화제에 가면 영화제 특유의 웅성웅성하고 기대감에 찬, 관객들의 어떤 공유하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고, 어떤 영화라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즐겁게 느끼고 가겠다는 그런 분위기.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영화제에서는 영화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외부의 풍경들,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근처의 색다른 먹을거리 등등. 물론, 이번 충무로국제영화제 같은 경우에는 그런 재미는 조금 반감된다. 가끔 한 두 번 씩은 가던 극장들이기 때문에, 극장 내 외부의 풍경들이란 빤하다. 그래도 빨간 옷의 자원봉사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관객들을 대하는 것을 보는 것은 여전히 마음이 좋아진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영화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제목만 보고, 한 두가지 사소한 이유로(예를 들어, 시간이 맞아서..)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를 색다르게 즐길 수가 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영화 내용을 좀 자세히 살펴보고 영화관에 가는 편이다. 영화의 내용이 어떠한 내용인지, 평은 어떠한지,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부분인지 읽어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이런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너무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 영화의 재미가 약간 반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뭔가를 많이 알고 영화관에 가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많이 알고 가면 갈수록 영화를 여러 겹의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로, 이번에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들도 거의 우연적으로 선택되었다. 시간이 맞고, 약간은 나에게 흥미를 주는 요소가 있으며, 표가 남아 있던 영화들 위주로. 그리고 영화제에서 본 3편의 영화에 대한 약간의 코멘트.




레인 폴, 맥스 매닉스 감독

'씨네 아시아 액션' 섹션에 있던 영화다. 이번 영화제는 아시아 액션물에 대한 라인업이 괜찮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 섹션에 있던 영화를 많이 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2편 밖에 보지 못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는 그리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일본에서 비밀 공작 활동을 벌이는 CIA가 추적하는, 국제적 킬러 존 레인(시이나 깃페이)의 활약을 그린 영화인데, 주인공 존 레인 캐릭터의 구축이 모호하여, 영화의 전체적인 매력도 반감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명색이 액션 영화인데, 사실 그럴듯한 액션 장면도 별로 없다. 아무래도 액션 영화의 매력이란 주인공이 악당들과 맞서서, 혹은 냉혹한 운명에 맞서서 정면충돌을 벌이며,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이 매력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존 레인은 맨날 도망만 다닌다. 그리고는 같이 도망치는 여주인공에게 '경찰을 만났을 때 들키지 않는 법' 이런 강의나 하고 앉아있다. 그나마 건진 것이라곤, CIA 도쿄 지부장(?)으로 나오는 게리 올드먼의 많이 녹슬었으나 아직은 봐줄만한 연기다. 수십개의 CCTV 화면 속에서 도망치는 존 레인을 참 어지간히도 못 잡는 CIA 요원들의 활약을 보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연기는 꽤나 즐길만 하다. (메가박스 동대문)



 

 

야수형경, 진가상 & 임초현 감독

예전부터 매니아 층의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여러 들었던 터라, 이번 영화제의 나름 기대작이었다. 위의 <레인폴>과 같이 '씨네 아시아 액션'에 있던 영화로, 기대한 만큼의 만족감을 준 영화다. 홍콩의 한 구역을 담당하는 형사들에게 새로운 리더가 오면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을 다룬 영화로, 전체적으로 유머가 아주 잘 살아있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여러 눈여겨 볼 만한 부분들을 던져주는 영화다. 하나는, 이 영화의 독특하고, 특이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저 코믹스럽기만 한 그저그런 유머물인듯한 인상을 주는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갈 수록 점점 다른 면모를 드러내 보인다. 영화 시작부에는 조금 산만하게 여러 에피소드들이 툭툭 던져지는 듯 한데,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하나로 수렴되어 강렬한 액션으로 마무리 된다. 확실히 이렇게 이야기를 아우르는 능력은 그리 가볍게 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영화에 내리깔린 특유의 정서다. 처음에 주인공 동 형사(황추생)을 중심으로 한 이 경찰조직은 '뭐 이런 경찰조직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무질서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그런 동 형사에게 어느덧 동화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그를 지지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것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 과연 어떤 것이 이곳에 더 필요한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황추생의 인상적인 연기가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세 번째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다. (롯데시네마 명동)






험프데이, 린 쉘튼 감독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단지'2009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이라는 문구에 끌려 보았던, 사실은 시간이 맞아서 본 영화다. 보고 나니, 충분히 상을 받을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벤과 앤드류라는 두 친구가 우연히 파티에서 아마추어 포르노 경연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의 결심이란, 이성애자인 이들 두 남성이 섹스를 시도하는 과정을 포르노로 찍어보는 것.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이들의 이 일들은 점점 커진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어떤 아이러니한 질문을 자꾸 관객들에게 하도록 만든다. 그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이런 시도에 어떤 마초적인 경쟁 심리라는 것이 자꾸 개입된다는 것. 그리고 종국에는 관객들에게 어떤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제공한다. 그것은 나도 혹시 동성애자가 아닐까(혹은 동성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질문들에서부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이 사회는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성애라는 것만이 우리사회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거기에는 어떤 것들이 개입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까지.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어떤 동성애만을 무조건 옹호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영화는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한 가지 잣대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상황에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발군이다. <덤 앤 더머>의 업그레이드 판. 이번 영화제의 개인적 발견작. (메가박스 동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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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9-0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제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여러가지 좋은 점들이 있군요. 생각지 않았던 덤도 있을 것 같구요.^^

맥거핀 2009-09-04 01:21   좋아요 0 | URL
아..영화제에 한번도 가보시질 못했다니 의외네요.
요즘에 사실 우리나라에는 너무 필요이상으로 영화제가 많아서요.
마음만 먹으면 365일 영화제만 다닐수도 있을 듯 싶어요.
네..한 번 가보시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실 듯 해요.^^
제 생각으로는 영화제에 가는 것은 딱 하나만 갖추면 된답니다.
어떤 영화라도 일단 도전(?)해 보겠다는 마음가짐..그러면 의외로 보석을 발견할 수도..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4주

 

 

 

 

 

 

 

 

영화에 붙은 별점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의외로 그런 것을 신봉한다. 그런데 난감할 때가 있다. 이 영화에 붙은 별 2개 반 같은 것을 보게 될 때 말이다. 4개나 1개라면 대체로 이 영화가 어떤지 대략은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2개 반의 어정쩡한 별이 붙은 영화들은 보러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난감해진다. 더구나 '상징이 너무 많고, 애매하기까지...'라는 평까지 붙은 영화라면 말이다. 대략 영화의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이 간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어리둥절해지는, 뭔가 찜찜한 뒷맛이 남는 영화일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뭐 어쨌든 간에, 보러가기는 해야 될 것 같다. 감독이 구로사와 기요시고, 주연이 나카타니 미키라면 말이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나름) 걸작 <절규> 전에 나온 영화로 우리나라에는 지각개봉하는 영화다. 그리고 혹자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실패작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괜히 난해한 상징들과 이미지들로 영화를 구성한 일종의 실험작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뭐 어쨌든 간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들에 일종의 실험이 없었던 적이 있었나, 언제는 잘 짜여진 이야기와 정교한 플롯이 나왔던 적이 있었나.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의 영화들의 공포의 시작은 이런 어떤 불가해성, 막다른 공간, 설명되지 않은 어떤 것들로 비롯된 것이 아니었는가. 우리는 그저 그것을 즐기면 될 일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로프트>의 담긴 퍼즐 조각들. 진흙을 토하는 여인, 소설가 하루나 레이코, 시골의 새집, 뒤편의 수상한 대학시설, 타인의 미발표 원고, 가위눌림, 고고학자 요시오카 마코토, 천 년 전의 미이라, 미모를 위해 진흙을 마시는 여인, 영원히 젊은 육체, 자살, 살인, 유령, 작가의 자존심, 표절, 강박적인 편집장, 영혼의 구원, 환생, 망상, 저주. 나카다니 미키와 토요가와 에츠시의 앙상블. 
<도플 갱어>로 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을 열었던 구로사와 키요시의 새 영화는 창고 같은 시골의 집에 이사한 여류소설가의 신비하고 불안한 경험을 그린다. 설명할 수 없는 신체적 이상과 의심스러운 남자를 목격하면서 그녀의 심리는 점차 헝클어지는데... (네이버 펌) 

- 예습이 필요해 - 

다른 영화들도 많겠지만, <절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하나는, 이 영화 <로프트> 이후에 구로사와 기요시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라는 것. 물론 그 사이에 다른 옴니버스로 구성된 작품 중의 하나를 감독하기는 했지만, <로프트>의 어떤 실험성을 이 영화 역시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위의 줄거리의 '진흙을 토하는 여인'이라는 것은 <절규>의 어떤 부분을 자꾸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세 번째 진짜 이유. 이 영화는 꽤나 무섭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이 영화의 어떤 이미지들은 자꾸 내 안의 어떤 것들을 건드린다. 그래서 이 짧은 글을 쓰는 순간도 자꾸 무엇인가 연상되어 괴롭다. 아, 그리고 참고로, 오다기리 조나 카세 료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연쇄살인사건을 쫓는 형사(야쿠쇼 코지)의 마음 속 어둠을 그린 서스펜스물 (씨네21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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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지옥 - Poss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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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지옥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있다면, 맹신지옥은 그 훨씬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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