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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신간소설 추천. 그러니까 이번 기수 신간평가단으로서 책을 골라내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얘기다. 지금 내 손에 들린 4권의 책은, 책을 골라내는 일을 조금 더 신중히 했어야만 했다는 충고의 다른 형태이다(잘못된 선택은 늘 실물로서 돌아온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의 축처진 심리상태를 감안해 볼 때) 이번 마감 기한 안에 리뷰를 제대로 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지 책들 스스로가 이야기의 가속도를 붙여 내 속에서 다그닥다그닥 달려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간평가단으로서 책을 읽어나가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 또한 거짓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마스크를 쓴 불안한 눈빛의 누군가를 멍하니 보거나, 지난밤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그다지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짜내는 일보다는 손에 들린 소설을 보는 것이 훨씬 낫다. 소설은 불안하고 말초적인 세계가 아닌 더 넓은 세계로 잠시나마 나를 안내해주고, 과거로 안내하거나 또한 그를 통해 때로 미래를 예언하니까. 예를 들어 지난 번에 읽었던 구병모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예를 들어 이번의 메르스 사태에서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을 몰래 되뇌이고 있는 사람은 나뿐일까. "내 밖에 있는 나 아닌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침입자 그러니 만인은 만인의 일에 신경 끌 것"이라는 책 뒤편의 문구가 여러모로 섬뜩해 고개를 드니, 마스크를 쓰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이 왠지 더 섬뜩하다. 역시 책이 더 낫다.
(약간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읆는다고, 소설평가단 6개월을 하니 이번달에 출간된 소설들만 슬쩍 훑어 보아도, 왠지 어떤 소설이 선정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번에 골라내는 책들은 이와는 거리가 조금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니 대세를 따르기보다는 정말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야겠지.
맘브루, R. H. 모레노 두란, 문학동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콜롬비아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먼나라에 와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군인들의 목소리를 번갈아 담는 형식이다. 그들 개인 각자의 내밀한 역사를 읽는다는 측면에서도, 또 한국전쟁이라는 우리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를 읽는다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한국전쟁에 콜롬비아도 참전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느 포수 이야기, 구마가이 다쓰야, 북스피어
일본 산간지방 어느 곰 사냥꾼의 이야기. 전혀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알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늘 끌린다. 꾸밈이 없는 날 것의 강렬한 이야기일 것 같다.
길, 저쪽, 정찬, 창비
정찬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이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단편집에서였던가. 정찬 작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역사와 개인, 그 속에서 어떤 윤리의 문제를 꾸준히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역사가 만들어낸 골은 여전히 깊고, 소설가는 그 깊은 골짜기 한구석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끌어올리는 존재임을 작가는 몸소 보여준다.
러시아의 밤, 블라지미르 오도예프스키, 을유문화사
소설 속에 있는 또다른 소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천일야화와 같은 소설. 빠져나올 수 없는 이야기의 미로 속으로 이 소설은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이야기의 미로가 아름답다면, 굳이 그 미로 밖으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겠지.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나도 가고 싶다. 한국이 싫어서.
덧.
이 소설 추천은 안되겠지요? 4월 30일에 출간된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 신간평가단의 알고리즘(?)상 이렇게 구멍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