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시작할 때는 따뜻한 봄날이었는데, 끝날 때에는 어느덧 가장 추운 날이 되었다. 뭐든지 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아쉬움만 남는 것 같다.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나는데, 일단 아쉬운 것은 예술 분야의 책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처음 서평단을 하려고 했을 때도 원래는 예술 파트를 하려 했었고, 예술 파트가 인문 파트에 통합되어 이 인문 파트 쪽에 지원할 때도 예술 관련한 책들, 특히 영화와 관련한 책들을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한 권도 보지 못했다. 물론 이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야 가능한 것이겠으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책도 추천하고, 좋은 책들을 찾아봤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같이 서평단을 하는 다른 분들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이 서평단 활동은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는다라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그 좋은 조건을 별로 활용하지 못한 듯 하다. 단순한 감상의 교환도 좋고, 비판적인 의견의 제시도 좋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물어도 좋은데, 결국 시간은 다 지나가고, 이제는 그저 몇 편의 글 밖에 남지가 않았다.
물론 가장 아쉬운 것은 성실히 읽고, 성실히 쓰겠다,라는 초반의 다짐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서평단 활동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책을 읽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글을 쓰는 일은 다른 일들 뒤로 하염없이 미뤄졌고, 결국 거의 매번 마감시간을 넘겨 글을, 그것도 별로 좋지도 못한 글을 올려야만 했다. 서평단 활동이라는 것도 결국 하나의 약속인 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인데, 이 자리를 빌어 알라딘 서평단 담당님과 우리 인문/사회/과학/예술 서평단을 위해 수고해주신 가연님에게 인사를 동시에 전하는 바이다. (고맙고, 죄송합니다. 꾸벅.)
이번 11기 서평단을 통해 읽었던 책을 뒤돌아보면 개인적으로 책의 편차가 조금 느껴졌다. 좋은 책은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그렇지 못한 책은 읽는 것 자체가 고문에 가까웠달까. 좋았던 책 5권을 뽑아달라고 하신 것 같은데, 고심 끝에 골라본다. 나머지 책들은 공동 6등으로 해두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사사키 아타루 / 자음과모음
저자의 글쓰기라고 할까, 말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 그러면서도 적절한 깊이가 있는 내용과 메시지를 담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저자는 그 어려운 일을 성취해내고 있다.
노동의 배신 / 바바라 에런라이크 / 부키
결국 글의 힘이란 체험에서 나온다. 물론 어떤 일들은 체험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과 연대의 문제에 있어서라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결국 '그들'을 상정하여 그들과 자신을 갈라놓겠다는 것일게다. 그녀의 <희망의 배신>이나 <긍정의 배신>도 기꺼이 찾아보겠다.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 하비 리벤스테인 / 지식트리(조선북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재미있게 읽었고, 새로운 관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음식을 먹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홍상수의 말을 빌리자면 네가 그렇다니까, 그런 것.) 출판사 외에는 다 마음에 든다.
광기 / 대리언 리더 / 까치글방
그간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여러 개념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고, 여러 풍성한 예를 통해 별로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분야의 책임에도 '앎의 즐거움'을 느끼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정신병자를 사회에서 걸러내기 위해, 은연중에 정신병적인 구조를 사용한다. 이는 물론 정신병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얽힘의 시대 / 루이자 길더 / 부키
책의 마지막 저자 인사글을 보면 저자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랄까, 세상을 대하는 자세같은 것이 느껴졌다. 양자물리학을 다루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만들어낸 물리학자들에게 기꺼이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들을 한명한명의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대하는 애정같은 것이 느껴져 더 매력적이다.
* 가장 좋았던 책
서평단 활동을 통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