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아브르>에 대한 짧은 평. 이 영화는 소위 말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착한 일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불가능은 가능해지고, 기적은 (말그대로)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는 그 내용만 동화와 비슷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형식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동화 혹은 아주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 만화와 비슷해진다. 그것은 영화의 첫장면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는데, 무표정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뭔가 코믹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사건은 과장된 효과음으로만 제시되며, 그것은 이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에게도)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위한 만화에서 등장인물이 크게 얻어맞아도 우리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을 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이들을 위한 만화(동화)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톰과 제리>에서 우리는 결국 톰의 모든 악행이 제리에게 위해를 끼치지 못할 것을, 그리고 결국 톰이 제리를 잡아먹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러므로 이것은 따스하고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시에 뭔가 약간은 기괴한 인상을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동화가 결국 아주 기괴한 이야기임을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아주 힘든 이야기가 결합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인들의 유럽으로의 (아마도 불법적인) 밀항(인간 거래), 그리고 그 와중에서 한 소년의 탈출. 많은 이들이 결코 상상하지 않는, 아주 먼, 뉴스에서나 나올, 아니, 뉴스에서도 잘 나오지 않을 그런 이야기. 동화적인 분위기와 이 힘든 서사가 결합하였을 때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 것인가. 그런데 이 영화는 이 힘든 서사가 결국 한계에 부딪혔을 때마다 쉬운 선택을 한다. 이 아주 힘든 서사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이를 때마다 쉬운 동화적 데우스마키나가 출현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몇몇 장면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년이 컨테이너에서 탈출할 때의 동화적인 시퀀스들, 감옥에서 소년의 할아버지를 만나야 할 때 동화적 거짓말이 먹혀드는 것, 혹은 소년의 탈출 비용으로 3000유로가 필요했을 때 남편과 아내의 조금은 우스꽝스러워보이는 동화적 화해.

 

글쎄. 이것이 어떤 영화적 솔직함이라고, 현실을 과장하거나 기만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늘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이야기되는 것과, 그와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들을 분리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한 한편으로 늘 동화라는 것이 그 표면에서 이야기하는 권선징악 외에 다른 층위에서 중요한 진실을 이야기하여 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인물들의 소박한 진심이 서사적인 커다란 벽에 부딪혔을 때, 그 커다란 벽이 그저 간단한 동화적 처치로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면서, 불편함을 조금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찾아오는 몇 개의 작은 (거짓과 같은) 기적들 속에서 마침내 찾아온 진짜 기적, 그 기적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던 것은 아마도 나뿐이었겠지.

 

 

덧.

 

같은 이야기를 다르덴 형제의 <약속>은 소년과 아프리카 여인을 지하철 속의 출구없는 통로에 가둬놓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지하철의 소음은 화면이 사라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아주 아름다워 보이나, 그것을 애써 들여다보기 불편한 세계가 <르아브르>의 세계라면, 처절하고 고통스러워보이나, 기꺼이 들여다봐야할, 그리고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세계가 <약속>의 세계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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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 보고 참 좋았었는데, 그와는 별도로 맥거핀 님 비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의견이군요. 이 글은. (-대부의 조악한 패러디ㅋ)
마지막 문장 좋습니다. <약속>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문장입니다.

맥거핀 2011-12-13 21:42   좋아요 0 | URL
음..그럼 악인은 저군요. 대부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것은 늘 조금 더 나쁜 쪽이니.^^
제가 연말도 되었고 한데 마음이 불량스러워서 그런가봐요. 이런 영화보고 감동도 좀 받고, 마음도 좀 따스해지고 그래야하는데..뭐 못만든 영화도 아니고, 아키 카우리스마키니까..기꺼이..이래야하는데, 그 기꺼이가 안되네요.^^;

꽃도둑 2011-12-14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 저는 듣도보도 못한 영화네요.
하기야 영화 보는 거 연말결산해봐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니...
표면과 또 그 이면에서 드러내고자 한 진실을 보고자 한 리뷰 매력적입니다.

맥거핀 2011-12-14 23:27   좋아요 0 | URL
뭐 꽃도둑님이야 영화 외에 다른 문화생활 많이 하시니..^^(절에도 다녀오시고..책도 열심히 읽으시고..) 저도 올한해 여러 영화를 봤지만, 기억에 아직 남아있는 영화는 몇 편 안되요.

표면과 이면의 진실 같은 거라기 보다는, 위에도 썼지만 제가 마음이 악해서..

아이리시스 2011-12-14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제 하니까 말인데, 다르덴 형제와 코엔 형제와 스콧 형제 중에 저는 단연 스콧이거든요! 영화들도 좋아하고, 미드시리즈 <넘버스>도 좋고! 코엔 형제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보고 나가 떨어졌고, 다르덴은 아예 관심도 없어요. 최근에 나온 게 맥거핀님 메인사진 포스터 저 약속이죠? <약속>이 다르덴 형제 것이고, 이 영화가 같은 이야기라길래 안보고도 "어른들의 동화"를 보기에 저는 때가 많이 묻었다는 생각이, 흙흙. 우리 기꺼이 하지 마요. 마음을 따라야죠. 크리스마스에만 따스해지란 법 있나요? 히히히히.

맥거핀 2011-12-14 23:35   좋아요 0 | URL
아아..스콧형제! 뭐 형이야 이미 거장이 된지 오래고, 동생은 스타일리쉬한 그만의 작품 세계를 이미 가지고 있지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다르덴에 소심하게 한표를..) 영화도 확실히 유전인가봐요. 우리나라에도 정가형제도 있고, 곡사형제도 있고, 조금 다르지만, 류승완, 승범 형제도 있고..그러고보니 이 영화 <르 아브르>의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도 그의 형 미카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있죠. 아..나도 영화 잘 찍는 형이라도 있었음 좋았을 것을...^^

저도 이미 마음이 썩었어요. 동화를 보면 뭔가 이상하고, 기괴한 것부터 눈에 들어오니..기적을 들려줘도 그 기적을 의심하고 앉아있으니, 아마도 기적은 저에게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아이리시스 2011-12-15 18:20   좋아요 0 | URL
형제들이 많네요! 그렇다면 저도 다르덴에 꼭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웬만하면 매니아적으로 좋아하는 것만 보는 취향을 고치려고요. 저는 오래전부터 노력했는데,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노력과도 연관되구요. <르 아브르>도 형제라니 이건 정말로 전혀 모르겠는 거네요. 제가 졌음ㅋㅋㅋ

맥거핀 2011-12-16 12:16   좋아요 0 | URL
형제 배틀에서 승리 Get!!(아..이건 아니고..;;) 저는 개인적으로 사실 영화는 편협하고, 매니아적으로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멜로, 판타지, 액션, 스릴러, 공포, 다큐멘터리 뭐 이렇게 다양하게 보는 것도 좋지만..매니아적으로 한 분야만 또 열심히보다보면, 거기에서 영화를 보는 시각도 좀 길러지는 듯하고, 조금 더 깊이있게 볼 수도 있게 되겠지요. 아무래도 같은 영화라도 장르(장르라고만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마는..)에 따라 문법과 구성이 많이 달라지니까요.
뭐 책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러 분야를 넓게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한 분야를 깊게 보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많지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상에 조금 더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든 사람들이기도 하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