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총각, 백수 시절 혼자있는 시간에 즐기던 놀이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짝퉁'포스터 만드는 일이다. 이제부터 보게 될 포스터들은 필자가 여기저기서 주어 모은 조각들을 멋대로 이어 붙혀 만든 작품(?)이니 만큼 다소 조잡하더라도 너그럽게 봐 주시기 바란다.  

 

 

 

[벅시 말론, 1976]

 

 

갱스터 장르를 어린이 뮤지컬 코미디로 유쾌하게 패러디한 [벅시 말론]. 어린 조디 포스터의 연기가 일품이다. 알란 파커 감독의 첫번째 장편 영화.

 

 

 

[죠스, 1975]

 

 

말이 필요 없는 영화, 블럭버스터의 할아버지 뻘 쯤 되는 영화다. 처음 우리 나라에 공개되었을 때 [아가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터미네이터, 1984]

 

 

이 시리즈도 벌써 30년이 넘었다니...  1947년 생이니까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벌써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 편에서도 그를 볼 수 있을까?

 

 

 

[더티 해리 4-써든 임팩트, 1983]

 

 

내손을 탄 포스터 중 개인적으로 제일 괜찮은 포스터. 깊게 주름이 패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표정이 냉혹한 형사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

 

 

 

[악마의 씨, 1968]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하고 미아 패로우가 출연한 [악마의 씨]. 최근한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원작을 뛰어 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올 한해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지난 1년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지 돌아본다. 보내는 마음이야 늘 아쉽다지만 올해는 유독 더 그런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모두들 마무리 잘 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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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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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떻게 될까, 응?"

15살의 잔혹한 악동, 알렉스와 그의 무리들인 딤, 피트, 조지 이렇게 넷은 밤의 거리를 지배하는 난폭한 폭군들이다. 약을 탄 우유를 마시고 한창 기분이 '업'되면 그들의 '작업'은 시작된다. 길가는 어른들을 습격해서 돈을 빼앗고 온갖 모욕을 준 후 쫒아 버린다. 알렉스의 비행은 급기야 무리들의 배신과 함께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고 범죄의 잔혹함때문에 소년범 수용소가 아닌 일반 교도소에 수감된다.

 

시대가 불분명한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점이 배경이다. 남다른 과거를 경험한 악동, 알렉스의 거친 입담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원문 텍스트는 알렉스 일당이 사용하는 10대 비속어 '나스다트 어(nasdat)' 때문에 영어권 독자들을 다소 난감하게 했다지만 박시영 교수의 친절한 번역은 그런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의 시작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이제 갓 15살을 넘긴 불량소년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공격은 이유가 없고, 피를 볼 때까지 이른다. 폭행, 모욕, 강간 등 '폭력을 선동하는 감각적인 작품'이라는 세평에 더도 덜도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이 폭력적인 전반부를 꽤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아, 이제 어떻게 될까?"

그러나 눈살이 찌푸려질 무렵 소설은 전환점을 맞는다. 알렉스는 살인을 저지르고 일반 교도소에 수감된다. 나름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하다가 감옥안에서 두번째 살인을 저지른 알렉스. 당국은 구제불능인 그를 상대로 비인간적인 교화 프로그램인 '루도비코 요법'을 시술한다. 이것은 일종의 쇠뇌 기법으로 약물 투입과 함께 잔혹한 영상을 강제적으로 시청케 함으로써 폭력 장면을 보거나 그런 생각만 해도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비인간적 처방이었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깊은 철학적 고민을 던진다.

"착하게 되는 것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6655321번. 착하게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일 수도 있어. 말하고 보니 자기모순이라는 생각이 드는 구나. 이번 일 때문에 며칠 동안 잠 못 들어 할 거야. 신은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넌 지금 기도의 힘이 닿지 않을 곳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란다. 생각만 해도 아주 끔찍한  일이군.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윤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제거당하겠다는 선택을 내릴 때, 넌 진짜로 선을 선택한 것이겠지.

... 114-115쪽

개인의 폭력을 억압하기 위한 당국의 폭력은 '최소침해의 원칙' 하에서는 어느 정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예 '자유 의지'를 빼앗는 정도에 이른다면, 그 사회는 과연 아름다운 모습을 띌 수 있을까? 오래 전에 봤던 [데몰리션맨]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역시 미래사회가 배경. 액션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획일화된 옷차림에 성적 교류도 직접 접촉이 아닌 전자제품 같은 도구를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비인간적 미래 사회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던 영화다. 두 작품 뿐만 아니라 미래사회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획일화, 비인간화를 경고한다.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얻은 질서? 평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교정 프로그램 자체를 포기할 수 있을까? 

 

"자, 이제 어떻게 될까?"

3부로 접어들면서 작품은 성장소설의 구조를 보여준다. 치료를 마친 알렉스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무도 반기지 않는 집. 거리로 나선 후 경찰관이 된 옛 동무들에게 두드려맞고 배회하다가 어느 집에 머물게 된 알렉스, 그 집주인이 과거 자신이 저지른 폭행과 강간의 피해자 가족임을 알게된다. 심지어 여주인은 충격으로 자살까지 했다. 집주인도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되고 친절한 조력자에서 분노에 찬 복수의 화신으로 뒤바뀐다. 결국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함으로써 자살을 시도하는 알렉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원래의 알렉스, 즉 루도비코 요법 전의 알렉스로 되돌아온다. 다시 익숙한 무법천지의 세계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고 정착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알렉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에 비유된다고 한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도 있다. 뿐만 이랴. 과거에도 있었고 세상 어디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세상의 모든 젊음의 상징은 좌절과 방황, 상처 그리고 성장인 것을 누구나 안다. 알렉스조차 남다른 경험 끝에 아래와 같이 읊조리지 않았는가. 

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청춘은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 하나와 같은 거야.

...222쪽 

문제는 기성 세대가 자신들의 젊은 시절 모습과는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른 이 불완전체들을 수용할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일 텐데... 우리는 윽박만 질러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본다. 작품 중에 나오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작가(아마 이 작품의 작가 앤서니 버지스 자신이 아닐까?)가 말한 것 처럼 "인간, 즉 성장하고 다정할 수 있는 피조물에게 기계나 만드는 것에 적합한 법과 조건들을 강요하려는 시도"만 한 것이 아니었는지 말이다.

 

한번 더 묻는다.

"자, 그럼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루도비코 요법 시술장면을 담은 [시계태엽 오렌지, 1972]의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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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은, 극장은 내게 무엇일까?

 

1990년대 초면 내가 겨우 고등학교 문턱을 넘었거나 그 언저리에서 서성거릴 때다. 변변치 않은 학교라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던 그곳은 주말이나 일요일이 따로 없었다. 기껏해야 한달에 한 번 정도 일요일을 쉴 수 있었는데, 자율학습이라는 미명 아래 일요일에도 학교에 가두어 두는 이유는 오직 하나, 대입 진학률 향상 말고는 없었다. 때문에 세 번째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등교 없는 날은 그야말로 하나의 숨구멍과도 같았다. 그러나 하느님도 무심하시게 유독 그런 날 비가 내린다.

 

그 날은 세 번째 일요일은 아니었지만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무엇때문이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율적으로' 학습이 안되었으므로 책상서랍에 넣어 두었던 2개의 도시락을 도로 가방에 챙겨넣고  '자율적으로' 교실을 나선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었다. 그리고 30분후 난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홍명상가 최고층에 위치한 홍명극장에 앉아 있었다. 10시 30분 쯤, 내가 상영을 기다리고 있던 영화는 존 G 어드빌센 감독의 [록키 5]. 1회 상영이 끝나고 도시락 먹고, 연속해서 2회, 3회 상영을 보고 다시 도시락 하나 먹고, 나머지 4회 5회 상영까지 본 다음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미친 짓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을 어둡고 칙칙한 극장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니...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지금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오히려 어둡고 칙칙한 청춘에 한 줄기 빛을 쐬러 갔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람이 몇 안되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뒤에서 영사되는 빛이 스크린 위로 숨겨놓은 영상을 펼쳐놓았을 때 우울한 현실이여, 안녕!  영화관은, 당시의 나에게는 안식의 공간이었다. 같은 영화를 하루에 다섯 번을 반복해서 보았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 뒤에 그런 짓은 두번 다시 하지 않았지만(요즘은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지만), 비오던 일요일의 그날은 내 삶에 어느정도 양분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서설이 길었다. 오늘은 시즌 2의 열한번 째다. '극장 스타일(theatre style)'을 소개한다. 이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겠다. 3-D영화임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유형이 그 첫번째이고 '극장'이나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포스터가 두번째다. 우선 첫번째 유형의 포스터를 몇개 보자.

 

 

  

[프랑켄슈타인, 1973]

 

 

[커밍 야차!, 1981]

 

 

이런 유형의 포스터들은, 보는 것 처럼 대부분 스크린에서 영화 장면들이 튀어나오고 관객들이 놀라 자빠지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바타] 이전 소위 3-D를 표방한 영화들의 입체감이라는 것이 지금의 눈높이에서는 어린이 장난 같은 것이었지만 당시로서는 꽤 신선하고 놀라운 모양이었다. 하긴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었다는 역사상 첫번째 영화 [열차 도착, 1895]이 프랑스 파리의 사교장 '그랑까페'에서 상영 됐을 때, 기차가 오는 모습을 본 관람객들이 자기에게 오는 줄 알고 객석에서 넘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하니 이해할 만도 하다. 

 

 

 

[마지막 액션 히어로, 1993]

 

 

이 영화는 3-D영화도 아닌데 마치 그런 영화인 것처럼 극중 캐릭터가 화면을 뚫고 나오고 있고 관객들은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스토리를 보면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다.

영화 관람을 하던 대니(오스틴 오브라이언 분)는 극장 영상기사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마법 카드의 힘으로 영화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가장 좋아하는 액션 영웅 잭 슬레이터(아놀드 슈왈츠네거 분)가 나오는 [잭 슬레이터] 시리즈 제4탄. 슬레이터는 [더티 해리]의 해리 켈러핸 형사 같은 인물로, 폭력범들에게 폭력으로 응징하는 그런 영화 속의 인물이다. 대니는 잭의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해결하러 다니게 되는데, 범인의 얼굴과 사건의 발단을 이미 스크린을 통해 보아서 알고 있다. 그래서 대니는 슬레이터가 범인을 추적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하지만 슬레이터는 자기가 영화 속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대니를 실성한 소년으로 여긴다. 그러던 와중에 대니의 신비한 극장표가 적의 수중으로 넘어간다. 그 표를 이용해 현실 세계로 넘어간 악당들을 쫓아 슬레이터와 대니도 현실로 넘어온다. 그들은 "The Last Action Hero"의 시사회에 참석하기로 되어있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찾아가고, 마침내 악당들을 처치한다. 슬레이터는 자기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고 대니는 상처를 당해 죽어가는 슬레이터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영화 속으로 들여보내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는데...

다음 영화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한 녀석이 '재미없다'고 푸념하면서 영화를 선택했던 나를 비난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재미없는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 왈, 배우들이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를 하는 바람에 몰입이 잘 안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일정 부분은 친구 말이 맞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가 등장하는 구조로서 러닝 타임의 상당부분이 영화 속 영화인 점을 감안하면 친구의 지적은 옳으면서도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것이 기록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아무리 사실주의에 입각했다 하더라도 현실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고, 하물며 영웅이 등장하는 액션영화라면 말할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보는 [마지막 액션 히어로]가 현실을 다소 과장했을 테고, 그 영화 속에서 제작된 [잭 슬레이터]라는 영화는 또 한번 튀겨졌을 것이니 현실의 내가 보는 [잭 슬레이터] 속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최근엔 왠만한 대작 영화는 대부분 3-D, 4-D영화지만 지금까지 위에서 살펴본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유형의 포스터는 요즘에 와서는 드물다. 오히려 두번째 유형인 '극장'이나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경우 객석을 중심으로 한 포스터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우선 70년대 고전영화 한 편 보고, 비교적 최근 영화 몇 편을 살펴보자.

 

 

 

[피의 극장, 1973]

 

 

1973년 작 [피의 극장]은 '셰익스피어극 전문 배우 에드워드가 셰익스피어 작품 속의 살인 방법을 동원해 자기 연기를 혹평한 비평가들을 모두 황천으로 보낸다'는 내용의 공포영화이다. 공포영화 전문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의 연기가 눈부신 작품으로 영국의 연기파들인 다이애나 릭, 잭 호킨스 등이 출연하고 있다.  스토리만 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배경과 인물만 다를 뿐 거의 유사하다.

어느 날, 7명의 연극 비평가가 영국의 한 버려진 극장에 모인다. 그들은 익명으로부터의 편지를 받고 오게 되었는데, 이상한 점은 각자 초대장의 내용이 모두 다르다는 것. 이들은 초대의 진짜 내용과 목적을 궁금해하며 뿔뿔이 흩어져 극장의 곳곳을 살펴보게 된다. 한편, 라이언하트는 자신의 거지 코러스의 도움을 받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따온,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한 명 씩 살해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바로 이 "피의 연극" 에 초대되었다는 것을 안 것은 이미 너무 늦은 때. 극장은 서서히 피로 물들어가는데...

 

- 인터넷에서 퍼온 글-

포스터는 무대가 아닌 객석을 비추고 있다. 가운데 좌석은 비워둔채 양 옆으로 여섯명이 끔찍하게 살해당했거나 살해당하는 중이다. 의자 밑으로 흥건한 피가 잔혹함을 더하고 있다.

 

 

 

 

[무서운 영화, 2000]

 

 

 

[무서운 영화]는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첫편이 제작된 것을 필두로 2013년까지 총 다섯 편이 제작되었을 정도로 꽤 성공한 패러디 시리즈이다. 각 편마다 다양한 버전의 포스터가 있지만 '극장 스타일'도 빠지지 않았다.

 

 

 

    

 

    

[무서운 영화] 시리즈

 

 

그리고 또 한 편의 패러디 영화.

 

 

 

[수퍼히어로 무비, 2008]

 

 

 

 

 

화려한 영상과 감동적인 스토리, 웅장한 사운드에 감성을 촉촉히 적시는 멜로디... 극장은 영화라는 매개체를 활용하여 두 시간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처럼 가뜩이나 주머니가 저렴한 대중들이 팍팍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빗겨서서 편안하고 온전하게 문화적 혜택이라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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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 '아침편지' 고도원의
고도원 지음, 대한항공 사진공모전 수상작 사진 / 홍익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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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폴리북스에서 선정한 12월의 책은 후배 김태일 군이 추천한 고도원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이다. 시원하고 아름다운 사진이 곁들여진 것이 책 자체가 예쁘다. [더 로드], [미움받을 용기]에 이어 세번째 책이다. 독서모임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는 것 같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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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구스타브 도레 그림, 강미경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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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기독교 문학 중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지옥, 연옥, 천국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것 같다. 구스타프 도레의 생생한 삽화도 좋았다. 원전 완역본이 아닌 것이 흠이었다면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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