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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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중앙장편소설 -트렁커] 는 톡톡 튀는 재미로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설레게 만든다. 약간 까칠스러운면이 없지 않아 있는 불친절한 온두씨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멋지게만 보이던 남자, 름을 상처가 있는 따뜻함 남자로 탈바꿈 시키는 것을 "인간에 대한 이해"로 종결시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정말이지 우리는 아는 만큼 이해하는 동물인가보다. 상대방을 향해 keep out상태인 온두가 과거 까만아이였다는 사실과 가족동반자살을 꽤했던 부모의 살아남은 자식이 되어 "들피집"에서 성장했던 불운한 유년기를 통해 왜 트렁커가 되었는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또 육남매중 넷째로 성장했으나 그 과정에서 군인 아버지의 폭력과 급기야 자식의 손가락을 잘라 변기에 넣고 물내려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와 아들의 뒤늦은 화해를 보면서도 우리는 아들 "름"이 왜 트렁크에서 잠들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수근거리는 것을 멈추기에 딱 좋은 소설인 [트렁커]는 1억원이라는 고료가 아깝지 않을만큼 박수쳐주고 싶은 작품이었고 읽는 내내 그 유쾌한 문장들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눈과 손을 붙드는 이야기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슬트모, 슬리핑 트렁커 모임은 왜 가입자의 추천으로만 가입할 수 있는지, 전국에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그냥 트렁크에서 잠들면 되지 왜 꼭 가입해야한다며 "름"이 "온두"를 붙들고 늘어졌는지 따위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애인도 팔고, 친구도 팔고, 트렁크 속으로 들어간 그들을 따뜻하고 안전하게 보호해줄 공간이라면 트렁크든 관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 물론 주변에서 아침마다 트렁크에서 잠을 깨 나오는 이웃이 있다면 수근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의 트렁커는 꽤나 신기한 장면일테니, 하지만 비틀린 듯 탁탁 말을 뱉어내는 온두는 그냥 그대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아가씨였고 나는 어느새 그녀의 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하며 마지막에 거실에서 눈 뜨는 것을 앞으로의 희망적 발전으로 바라보건 이후 함께 트렁크에서 나오건 간에 그들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까닭은 상처를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아는 그들의 재치와 과거 가장 힘든 순간 트렁크를 함께 나누었던 과거 이야기까지 보태져 훈훈하게 만드는데 있다.

 

처음 자동차 트렁크에서 잠잔다는 설정을 읽으며 "관에서 깨는 느낌"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느새 트렁크는 세상과 단단히 단절되어 나는 지켜주는 나만의 작은 공간이자 보호터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슬슬 트렁크에 중독되어갈 무렵 소설은 고맙게도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제부턴 달리는 자동차 뒷 트렁크를 볼때마다 "저기라면 좀 편하지 않을까"싶어지는 상상에 시달릴 것만 같다.

 

까만 아이는 이제 행복해졌다. 네번째 소년도 이제 행복해졌다. 그들은 함께 있어 치유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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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6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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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마음 속에나 빙점을 가지고 있다"     -요오꼬

 

 

 

30대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늘 [빙점]과 함께였다. 한글판부터 한자가 많이 섞였던 책, 세로줄로 내리적힌 일본판까지....엄마의 서가에 꽂힌 빙점의 여러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책은 번역별/출판사별로 구매할 수도 있구나....라고 어린이 시절 생각했다.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좋아하는 작품은 번역이 다르거나 출판사가 다르면 무조껀 사모으는 습관이 들어 있다. 딱히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엄마의 딸인 내겐.

 

엄마의 나이가 되어 읽게 된 [빙점]은 여러면에서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어린 나이에 읽게 되었다면 줄거리만 따라가거나 캐릭터 하나만을 놓고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굴곡을 알아가는 나이엔 작품의 나이테까지도 헤아려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30~40대가 소설쓰기 적정기라고 말한 어느 소설가의 충고는 적절했다고 보여진다.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여전한 물건을 "명품"이라 부르듯 명작은 시간의 흐름에도 변함이 없다. 1964년 아사히 신문창간 85주년 기념 수상작인 [빙점]은 미우라 아야꼬에 의해 쓰여졌다. 730편 중 당선작으로 뽑혀 1천만엔의 주인공이 되기에 지금 보아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은 말 그대로 명작이다. 폐전 후 국가의 기민적인 교육정책에 실망하고 교사를 사직한 후 폐결핵으로 인해 13년간이나 투병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녹여 쓴 작가는 겉으로는 온화해보이는 한 가정을 파괴하면서 "누구의 마음속에나 가지고 있는 빙점"을 세상에 녹여보인다.

 

 

 

 

"엄마를 귀찮게 하면 아빠에게 이를거야."       -루리꼬

 

 

아사히가와시의 교외 가꾸라읍, 쓰지구찌 병원장 저택에는 쓰지구찌 게이조오와 부인 나쓰에, 아들 도오루, 딸 루리코가 살고 있다. "내과의 귀신"쓰가와 교수의 귀한 딸로 태어나 아이같은 면이 있는 나쓰에에게 반해 있던 안과의사 무라이 야쓰오는 1946년 7월 21일 가미가와 신사제 날 그녀를 찾아와 마음을 전한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뛰쳐나간 루리꼬가 교살된 채 발견되자 행복했던 집은 삽시간에 불행한 집으로 변해 버리고....

 

 

딸 루리꼬의 죽음이 아내와 무라이의 불륜으로 인해 생겼다 생각한 게이조오는 친구 다까기를 통해 범인의 딸을 입양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애지중지 요오꼬를 기르던 나쓰에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남모를 학대가 시작되는데, 요오꼬는 그럴수록 더 바르게 자라나간다. 이상한 일이지만 요오꼬는 떼쟁이도 아니었고 여느 아이처럼 아이스럽기 보다는 어른스러움을 넘어서 성인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해버린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은 저버린 인물처럼...원죄가 있다한들 그녀의 것이 아닐진데 요오꼬는 너무나 타인에 맞추어가며 성장하고 이런 그녀를 곁에서 바라보던 오빠 도오루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리는데....

 

 

 

"자신이 못되는 건 다 자기탓이야. 물론 환경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말하면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거야."             -요오꼬

 

 

비열하고 질투심이 강한 아버지와 부정한 엄마 그리고 살인범의 딸인 여동생에 대한 비밀을 알아버린 도오루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모를 괴롭게 만드는 동안 자신이 업둥이라는 소문을 들어버린 요오꼬는 자립심 강한 아이로 커나간다. 완전해보이지만 부식하고 있는 가정의 시간도 흘러 어느새 도오루와 요오꼬의 결혼 이야기가 나올 시점에 이르러 도오루의 친구 기다하라 구니오의 등장은 삼각관계를 야기시키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제3자의 역할을 기대하게 만든다.

 

 

부부간의 불신과 아내의 불륜에 대한 가장의 복수, 남편에 대한 증오와 어린 마음으로 자라 성인이 된 여자의 우울증 등 두 사람이 시작한 서로에 대한 미움은 네 사람이 다 상처받는 일로 번져나가고 바르게 살고자 했던 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버리게 된다.

 

 

 

"울기를 바라는 사람 앞에서 울면 지게 됩니다."        -요오꼬

 

 

자기 딸을 죽인 범인의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일까? 를 오랜시간 생각하게 만들고, 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역시 장시간 고민하게 만든 소설 [빙점].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음이 비뚤어지지는 않을거야. 그만한 일로 사람을 원망하여 내 마음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아."라고 생각하던 요오꼬의 자살시도를 계기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모든 갈등은 눈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살인범 사이시 쓰지오의 딸이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

 

인간의 마음이란 이토록 어리석은 것일까. 웃는 얼굴을 하면 마음이 진정되고 곧 마음까지도 따라 웃게 된다고 생각해서 울고 싶어지면 얼른 방긋 웃어보이는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갈만큼 이 아이가 잘못했던 것은 없었는데........

 

 

소설 속에서 게이조오는 아들 도오루가 5세때 "적이란 가장 사이좋게 지내야 할 사람" 이라고 말해주지만 그 역시 나약한 인간일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게이조오도 나쓰에,도오루, 다까기, 무라이까지 흔들리는 인간이며 갈등하는 인간일 수 밖에 없음을 작품은 극명히 증명해내고 있었다. 읽는내내 답답하리만치 안쓰러웠던 요오꼬. 그냥 떠나버렸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깨어나게 되는 세상은 이전과 다를 수 있을까.

 

진실을 알게 된 모두가 상냥해졌다해도 상처받은 그녀의 세월이 보상될 수 있을까. 마지막에 그녀가 죽어버림으로써 모두의 마음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남기는 쪽이 더 원죄스럽진 않았을까....결말에 대한 다양한 상상들을 해보며 가장 추악한 것이 인간의 마음 속에 얼마만큼이나 자리잡아야 나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싫다고 생각하는 쪽이 잘못일 수 있어. 사람이란 그다지 영리하지 못해서 친절한 사람이 조금만 잘못해도 곧 싫어지지"      -다쓰꼬

 

 

오래된 소설이지만 [빙점] 속에서 숨겨지지 않는 가장 인간다운 추억함을 발견해냈다. 욕망과 질투, 불륜이 아닌 불신과 의심, 해하려는 마음이 합쳐진 또 다른 모습의 추악함. 헐리우드 노감독의 한탄처럼 역시 우리는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만 같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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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들이 떴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0
양호문 지음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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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픽션상 수상작의 공통점은 발랄하다는 점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는 반대로 독자의 눈엔 그들을 이해하는 시선을 갖게 만든다. 문제아인 그들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꼴찌들이 떴다]는 [파랑치타가 달려간다],[하이킹 걸즈],[번데기 프로젝트]등을 읽고 맨 마지막으로 읽게 된 작품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 어른이 되어도 뭐 별 볼일 있겠냐!"는 그들 앞에 딱히 뭐라 더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짓말은 해주고 싶지 않은 어른이기에 그저 그들의 좌충우돌 충동기를 한쪽 눈 감듯 모른 척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 심성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이맘때의 나도 이랬을까. 최강 꼴지라하지만 이들은 결코 인생에서의 꼴찌들은 아니었다. 언제나 무언가를 찾고 움직이는 그들의 역동성은 그들을 결코 꼴찌라는 자리에 그저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비주류로 몰린 남학생들이 보낸 여름 한철 이야기...라는 어느 소설가의 작품설명이 줄거리를 가장 잘 축약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시작도 하기 전에 비주류로 몰린다는 그 문장이 참 가슴 따갑게 만든다.

 

어느 개그맨의 외침처럼 세상은 어쩌면 "일등만 좋아하는 더러운 세상"일지도 모르지만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 대다수의 1등 외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 시기이의 아이들이 미리 알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꼭 1등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세상은 살만하더라...라고 이제는 이야기해주고 싶어지지만 소설은 어느새 유쾌하게 끝나버렸다.

 

유난히 문학이 자신에게 냉정했노라 며 회고하는 저자의 수상을 뒤늦게나마 축하하면서 블루픽션상의 유쾌함이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 다른 수상작에서는 없는 이름 그대로 색다름이 묻어나는 작품들이기에 매년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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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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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처럼

어려운 데가 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자살이 되물림 된다는 것. 그 시초는 할머니였다. 아버지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복엇국을 먹고 자살했다. 아홉살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고 그녀의 딸인 고모 역시 어느날 죽어버렸다. 아버지까지...게다가 그녀는 이제 죽음 앞에 있다.

 

여자에 이어 남자도 그런 이상한 대물림을 봐야했다.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려 온 아버지, "어서와"라고 전화해놓고 십오분을 못기다리고 창밖으로 뛰어내려버린 형. 이 환경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지도 않을 집을 매일 보러 마실 나가는 어머니. 남자의 집은 그런 상태다.

 

사로잡힌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죽음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두려움은 후차적인 문제이며 놓여지지 않는 당면과제 같은 것일까.

 

모든 이야기는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의 이야기여서 그녀는 친구 "사임"의 몸으로 [숨]을 완성해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남아 전시회를 열고 남자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소설은 끝났지만 나는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는 좀 더 달콤했으면 좋겠다 싶어졌다. 살아가기 위해서.

 

물론 자살이 되물림 되는 집안의 두 남녀의 만남에 빛나는 밝음을 기대하는 것이 유치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남겨진 그들에겐 이유가 충분하게 보였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소설의 사건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부여된 것처럼 그 길을 따라 갔더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멀미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아닌 그들의 마음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엔 작가의 멋진 글이 남겨져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이 이미 소명이 되어버렸다고 느꼈다면 더 큰 것을 바라서는 안된다고 여긴다....라는.단 한번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너무 일찍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의 맺음말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녀의 이야기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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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 Good-bye Yonder,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김장환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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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란 언제나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죽어서 만날 수 없는 쪽도 이별이고 만날 수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상태인 헤어짐도 이별이다. 상태가 살아있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만날 수 없는 이별은 언제나 애잔하다. 그 밑바닥에 그리움이 앙금처럼 부유물처럼 가라앉아 있을 때는 더욱더 그랬다.

 

 

영화제작을 하면서 "문제감독"이라 불린다는 제임스 카메론의 대작 [아바타]이후 많은 소설들이 그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여왔다. 이정도까지면 되겠지라고 한계를 정하고 상상하던 한계점이 사라지고 나니 글들은 더 많은 것들을 탐하기 시작했다.

 

[굿바이 욘더]를 처음 접했을때 막연히 떠올려보던 욘더의 의미가 실은 꿈의 세계, 이상향,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곳임을 알게 되면서 나는 도리어 혼돈에 빠져버렸다.

 

소설 속 욘더는 준비 없이 떠나 보낸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면서 슬픔도 헤어짐도 잊힘도 없는 불멸의 천국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천사가 날아다니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작가가 말하는 천국이었던 것이다.

 

세상 모든 기억을 간직한 도시 "욘더"행의 시작은 한 남자였다. 2017년생 김홀이 아내 이후와 사별한 얼마뒤 그녀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죽기전 추억을 메모리한 아내였기에 그저 기계적인 장치의 산물로만 치부했던 홀은 피치윤희를 만나면서 욘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피치는 엄마없이 아빠와 함께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하반신 마비로 누워있던 아빠의 성적인 요구는 어느새 폭력으로 다가와 견딜 수 없게 만들었고 급기야 아빠를 제 손으로 죽이는 범죄를 낳았다. 하지만 아빠가 사라지고 나자 그녀는 자신이 꿈꾸던 부모를 갖고 싶은 마음으로 바이앤바이의 도움을 받게 되고 어느날부터 아바타일뿐인 아빠로부터 "나와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는다. 삶을 담보삼아 죽음으로 얻게 되는 천국. 욘더는 정말 천국인 것일까.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저널리스트로서의 호기심으로 진위에 접근하던 홀은 욘더가 아내를 잃은 어느 부유한 노인의 손에서 탄생되었음을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욘더는 초월적인 네트워크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욘더로 가는 길은 욘더가 허락할 시에만 열리며 최근 일어나고 있는 연쇄 자살 사건이 욘더로 인한 일임을 알아내기에 이른다.

 

그저 이미지로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아내를 만나기 위해 생명을 담보삼아 욘더로 건너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홀은 어느새 욘더에서 아내와 이전에는 없었던 아이까지 덤으로 얻어 생활하게 된다. 몸은 없지만 행복한 천국,욘더. 다시 사랑하기 위해 건너왔던 요단강 끝에서 그는 가장 아름답게 이별하고 되돌아왔다.

 

"희망"이나 "기적"은 논리적인 성질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기술의 힘에 기댄다. 모두가 no라고 말할때 내게 일어나는 일이 기적이며 그 기적을 위해 노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 희망일진데,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의 힘을 빌리고 도구나 기술의 힘을 빌리기 위해 전전긍긍하곤 했다.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그 순간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떠올려보게 된다. 몸이 없는 가운데 기억으로만 흘러가는 시간을 존재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는 것일까.

 

고민을 뒤로 하고 집중하게 만들었던 소설 [굿바이, 욘더]는 이전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인 [진시황 프로젝트]나 [천년의 침묵]과는 또 다른 느낌의 소설이었다. 기묘하면서도 그립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 나는 소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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