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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똥개 뽀삐
박정윤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직업이 '수의사'인 사람들이 있다. 반면 살려 보겠다고 마음부터 아둥바둥하는 수의사도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해온 6년의 시간. 나는
이런저런 수의사들을 만나왔다. 친절하지는 않아도 그 무뚝뚝한 이면에 최선을 다해주는 모습이 전제되어 있는 '신의 손'이라 불리는 아저씨도 있고,
말은 약간 어눌하지만 진중한 자세로 동물을 대해주는 사람도 있었으며 말이 번지르르하고 최신의 기계설비를 갖추었지만 그 표정에서부터 내가 얼마짜리
보호자인지 계산하고 있는 것이 뻔해 보이는 작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달콤한 말보다는 따뜻한 손으로 내 가족을 대해주는 수의사를 찾게 되었다.
동물농장에서 봐 와서 익숙했던 그녀, 박정윤 수의사처럼.
서울에 살지 않기에 그녀를 직접 만나볼 기회는 없었다. 동네에 저런 수의사가 있으면 좋겠다 바래봤을 뿐. 요즘엔 통 그 모습을
'동물농장'에서 볼 수 없어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아마 다른 일들로 한 없이 바쁘리라 짐작하며 그녀가 털어놓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살펴
보기로 했다.
내가 만난 동물들은 한결같이 바보처럼 사람을 사랑했다
'올리브동물병원'의 원장은 오늘도 바쁘다. 수의사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스쳐갔던 수 많은
동물 환자 중에서도 그녀의 뇌리 속에 박힌 녀석들은 대체 어떤 아이들일까. 한강시민공원에서 가족에 의해 구조된 거지 강아지 '한강이'는 일고
여덟살이나 된 성견이었다. 네 다리로 서지 못해 결국 항문이 좁아져 매일 관장을 해야 했던 성질 성질 나쁜 미모의 강아지는 '개똥'이었고, 한쪽
눈이 없지만 병원 이모의 무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는 유기견은 '청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어느 아이 하나, 사연이 없는 아이가 없었다.
강아지들 뿐만이 아니었다.
박정윤 원장의 막둥이 고양이인 '소롱이'는 보호자가 병원에 버린 고양이였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완전 애교쟁이인 '요미'는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어느 빌어먹을 인간이 이 착한 고양이의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던 것. 이쯤되면 정말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흉악하고 나쁘다 싶지만 그런 인간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구하고 사랑해주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그래도 절반의 희망에 매달려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도. 우리 곁의 동물들도.
p184 내가 사는 공간에 다른 존재가 함께 거주한다고 해서 그 생명을 함부로 죽이거나 해칠 수 있는
권리는 사람에게 없다
다른 학문을 전공하다가 수의사가 되었노라고 한다. 할인을 너무 많이 해주다보니 직원들에게 꾸중듣고 있지만 '원장'보다는 '수의사'일때가 더
편하다고 살짝 고백하고 있다. 강아지 다섯마리와 고양이 열마리를 병원식구로 둔 것으로도 모자라 집에 가도 반려하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또 있단다.
TV동물 농장의 수의사 박정윤은. 가족들이 그녀를 말려볼 법도 한데, 얘기를 듣다 보니,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보다 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눈시울을 붉히는 대신 가슴 한 켠을 보일러 켜듯 따땃히 데울 수 있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동네 놀이터에서 아기 고양이를 집어와서 며칠 키우다가 귀찮다고 도로 그 자리에 놔두고 왔다고 자랑하는 걸 옆에서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멀쩡한 아이를 집어 왔으니 고양이 엄마는 새끼를 잃고 가슴 앓이를 했을 테고 단 며칠이라지만 사람 손을 탄 제
새끼를 알아보지 못해 케어를 포기했을 거였다. 그 어린 고양이는 아마 살아남을 수 없을 확률이 컸다. 소위 동물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제 멋대로
구는 행동을 옆에서 보면 잘 참지 못하는데, 무관심한 이들보다 어쩌면 자신이 동물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행동이 더 위험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편의에 의한 살생'그들의 행동이 안락사와 맞먹는 행위라는 것을 언제쯤이면 자각하게 될까. 동물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작년 여름 즈음 해서 구조해야지 맘 먹을 만큼 어리고 약하고 예쁜 고양이를 누군가가 돌 던져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가슴앓이를
심하게 했더랬다. 이틀만 지나면 구조해 올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건만 아이는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울러 그 예쁜 아이를 돌로 찍어 죽였다는 나이 50의 아저씨 맘 속에 도사리고 있었을 잔혹성에 치를 떨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정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상'인가? 에 대한 회의 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면 심정이 어땠을까. 이렇게
담담하게 읽어내지 못한 채 오열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사람을 한결같이 믿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래도 이런 우리들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생명을 우리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집안에 있는 아이이건 길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아이이건간에-.
언제나 동물동장에서 먼저 눈물 흘려주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구조에 임해주었던 수의사의 책 한 권이 밤잠 이루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생각들을 머릿 속에 심어주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책의 내용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좀 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질 그녀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치유'의 손길을 건네받고 나 역시 그런 손길로 세상의 생명들을 대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면서. 내일도 오늘처럼 동네
길냥이들 밥을 챙기러 나갈때 좀 더 많은 아이들과 마주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