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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문장들 - 뜯어 쓰는 아트북
허윤선 지음 / 루비박스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매달 뭐든 읽고 쓴다는 10년차 피처 에디터는 책으로 보는 세상이 아이들과 함께 노는 시간보다 소중했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녀가 고른
그림들은 명화라기보다는 듣기좋은 이야기체로 다가와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첫장부터.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조각을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지만 이를 단 한번도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으므로 그림과 글의 이어짐은 오묘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p12) 라는 문장은 그래서 그림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또 너무 유명한 책이지만 실제로 끝까지 읽은 사람 찾기가 참 힘들다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나 역시
시작은 했으나 유일하게 그 읽기를 끝맺지 못했던 책이므로 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했구나...라는 읊조림과 함께.
이후의 장부터는 그림 따로 글 따로 눈에 담게 되었지만 결코 그 분리가 독서를 방해하거나 그림감상을 방해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괴리감이나
불쾌감을 초래하지 않았는데 문장은 문장대로 머릿 속에, 그림은 그림대로 가슴 속에 묻어두기 적당해서였을것이다. 그 이유는.
p52 사람이 속을 털면 털수록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 나는 왜 <생의 한가운데>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좋은 문장을 담아내지 못했던 것일까. 너무 어린 나이에 읽었던 탓일까.
한 권의 책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반복해서 읽으면 그 느낌이 생의 경험에 반추되어 다른 느낌을 전할 때가 있는데 이 구절이 그러했다. 어린
시절에는 미처 공감하지 못했던 저 문장이 시간이 지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많이 부대껴 실망도 해보고 눈물도 삼켜본 지금에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의미를 공감할만큼 경험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삶의 온도가 늘 차가울 수는 없다. 반대로 늘 뜨겁기만해도 곤란하다. 식혀가며 데워가며 살다보면 그 어느 순간엔 저런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
끓어오를 때도 있는 법. 마음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이 책은 한 페이지씩 뜯어서 엽서처럼 들고다니다가 즐겨도 좋게 만들어졌다. 뜯어쓰는
아트북이라고 이름 붙여져서. 편한대로 활용하기 좋은 책이라 더 소중했다. 내게 이 책은.
다만 음악이 빠져 있어 아쉬웠던 것을 고요한 음악 몇 곡을 틀면서 해결했는데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이나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면서 그림을
감상하니 미술관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고 빛나는 문장들은 성우의 목소리를 타고 귓가를 맴도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동시에
떠올리고 그 뒤로 음악을 감상하는 여유. 집에서 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는데...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을 내어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나갈 수 없다면 이렇듯 집에서 고요히 홀로 즐기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참신한 아이디어같이 느껴졌다. 100점의 그림과 100가지
문장들은 즐기는 독자의 마음에 따라 그 즐거움의 강도나 높낮이가 달라질 듯 하다. 내게 그들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귀를 기울여봐야 알 수
있는 일들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