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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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이나 [바리데기]는 참 쉽게 읽혀졌다.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듯 읽혀졌다. 작가 황석영의 책은 그 무게감과는 달리 언제나 쉽고 아름답게 읽혀진다. 그리고 종국엔 마음 속에 별 하나를 남겨놓는다. 그래서 [강남몽]을 읽게 되면서도 강남의 그 구린 역사위에 서 있는 탐욕스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종국엔 우리에게 희망의 한 자락을 남겨두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마음을 끊지 않은 채 읽을 수 있었다.

 

 

 

강남.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땅일까. 얼마전부터 방영되고 있는 대작 드라마 [자이언트]도 이 강남땅 개발을 둘러싼 암투와 얽힌 사람들의 삶을 굵직하게 그려내고 있어 주목받고 있었다. 비록 그 거뭇거뭇한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어두워 시청하고 있지는 않지만 강남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훌륭한 소재가 되는 모양이었다.

 

같은 소재를 둔 한 드라마는 시청하지 않았지만 소설 한 권은 읽은 내 마음 속 기준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코믹하면서도 제할말을 잊지 않았던 흰머리 작가의 달변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존에 작가의 작품들이 보여준 문학성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고나서야 나는 그 차이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도가 트이듯 누군가의 글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깨달음의 깊이를 선물할 수도 있는 일인가 보다.

 

흔히 수많은 작법서 속에서 "첫문장부터 사로잡아라" 혹은 "매력적인 주인공을 그려내라"라고 말하지만 정작 작품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진실인데, 매력의 정점은 사건 속에서도, 극중 인물들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지만 작가의 달필 속에서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일이다.

 

[손님]을 비롯해서 [오래된 정원],[삼포가는 길],[개밥바라기별],[바리데기] 등등 어느 책을 읽어보아도 우리는 곰탕같이 진하게 우려진 "사람"을 발견해낼 수 있다.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균형이 맞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강남몽 속에서는 삼풍백화점을 모델로 한 대성백화점의 붕괴에 얽힌 사람들의 삶이 우려지고 있었다. 국밥집 딸로 태어나 영감의 후처가 되어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상승된 박선녀와 일제시대엔 밀정으로, 군부 시절엔 흐름을 타고 호의호식하다가 대성백화점의 주인으로 자리잡은 김진,대학교수 심남수, 전설의 주먹인 홍양태,룸사롱 마담 공사장, 사채업자 문회장, 퇴직공무원의 아내 오여사 등의 등장인물들이 강남의 주도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1990녀 중반, 그들의 바벨탑이었던 대성백화점이 무너진다.

 

 

작품을 읽는 내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집고 다녔던 나는 이용당하는 쪽과 이용하는 쪽을 번갈아가며 빠져 있는 그 무언가를 발견해냈다. 그들 사이에 허수로 보이는 그 무엇. 바로 [강남몽] 속에는 "함께"가 빠져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공존하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그들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함께가 빠져 있는 소설. 그래서 그 사이로 거품 빠지듯 바벨탑이 무너졌을때 남겨진 이는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 임정아였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희망의 풀씨.

 

작가는 꿈에서 깨어나면서 현실에 발디딜 인물을 임정아로 택한 것이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났어도 [강남몽]은 묘한 아쉬움과 다행스러움 둘 다를 간직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다시금 물어보게 만든다.

 

우린 정말 꿈에서 깬 것이 맞는 것일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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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미도리의 책장 5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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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한 권의 책이 범죄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책의 제목은 [죽어도 안 고쳐져]. 저자는 전직 경찰이었던 다이도지 케이로 아버지의 순직으로 우연찮게 경찰관이 되었던 남자다. 결혼한지 1년도 안되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그는 17년간의 경찰생활을 접는 마지막 사건에서 만난 출판업계종사자인 친구의 제의로 책을 출간했다. 이후 강연을 다니던 다이도지 앞에 책으로 인한 사건들이 들이닥치게 되고 그의 일상은 다시 범죄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범죄학적 스릴러물이었다거나 프로파일러적 범인들이 속출했더라면 식상했을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은 "범죄자라는 동물은 90퍼센트가 얼빠진 행동을 합니다."라고 외치고 다닌 다이도지의 말처럼 얼빠진 범인들이 등장한다. 협박장에 지문을 덕지덕지 남긴 유괴범, 경찰서 주차장에서 차를 털려던 강도, 감시용카메라 정면에서 두건을 벗은 강도 등등 얼빠진 범죄자를 소재로 한 실화사건들이 담긴 그의 책은 [죽어도 안 고쳐져] 이후 2권인 [죽여도 안 죽여가]출판되는데, 친구의 제의를 뿌리치지 못해 쓰게 된 책 한 권은 블랙홀처럼 범죄와 범인들을 케이 앞으로 끌어들인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읽을 때만 해도 계속 읽게 될줄 몰랐던 와카타케 나나미의 글은 이제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을 기다리면서 끊을 수 없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나 역자가 좋아하는 작가인 온다 리쿠의 책들을 번역한 역자라서 더욱 신뢰가 갔고 사건이라는 단어가 주는 추리식 범인 찾기는 퍼즐마냥 재미들리게 만든다. 

연재작이었다는 작품은 그래서 더 재미를 붙이게 만든다. 긍정적인 세상을 찬탄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음울한 사건에 포커스를 맞춘 것도 아니면서 묘한 비틀림으로 범죄를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의 시각이 독자와 일치되는 순간 그 재미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유머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소설은 그래서 검은색이지만 웃게 만드는 묘한 코드가 숨겨져 있다. 기다리고 있는 다음 책인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이 꽤 많은 독자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요즘, 나는 다음 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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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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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생기는 순간 이미 읽고 있을 것이다...

더이상 찬사가 필요없는 책이 [룸]이었다. 엠마 도노휴는 실화를 바탕으로 충격적인 명작을 완성해냈는데 2010년 9월에 발표된 이 책이 11월에 이 머나먼 동양의 나라에 번역되기까지 단 두달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이 책의 파급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 아닐까. 

30여개국에 판권이 팔리면서 그 뜨거운 반응은 책을 읽은 독자로서 따로 언급을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궁금하면 읽어보라! 끌리면 읽어보라~!라고 권할 뿐이다. 더 이상의 권유는 필요없다. 호기심이 생기는 순간 이미 읽게 될테니까. [룸]은 그런 마력을 지닌 소설이다. 


현실의 잔인함이 덮이는 순간, 시작되는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새의 선물 등의 공통점은 어린 아이가 화자라는 점이다. 국어시간에 배워 알겠지만 어린 아이가 화자가 되면 세상은 순수하면서도 재미있어진다. 그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른들처럼 재어보거나 변명으로 가득 채워진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이가 두 배나 많은 남자에게 19의 나이에 납치,감금되어 두 번의 출산까지 경험한 엄마에 대한 시선도 동정이나 공포가 아닌 여느 아이와 다름없는 사랑의 시선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편의상 모자가 올드닉이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분명 범죄자다. 7년의 세월동안 집 마당 창고에 여자를 감금해놓고 폭행하면서 아이까지 낳게 했다. 그리고 가져다주는 음식에 감사하라고 존경심을 바란다. 사회 속에서는 루저지만 작은 방에서는 폭군이 되고 가진 자가 되고 왕이 되려했던 올드닉의 비정상적인 세상 안에서 힘없는 여인과 그의 아들은 애완동물과 다를바 없었다. 

하지만 다섯살 신사 잭의 시선이 현실의 잔인함을 순수함으로 뒤덮어 버렸다. 마치 흰 눈이 세상의 더러운 곳곳을 깨끗이 덮어버리듯이. 하지만 눈이 녹고나면 그 더러움이 다시 보여지듯 태어나 바라본 세상의 전부가 방이었던 잭에겐 탈출이란 쓸데없는 짓처럼 여겨진다. 다섯살인데 아직 젖을 먹고 밤에 들이닥치는 올드닉을 피해 컴컴한 옷장에서 잠들어야 하는 아이. 

정상적인 환경이 아닌 까닭에 엄마는 잭이 여섯살 되던 날 탈출을 감행하고 모자는 구출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탈출기나 모험물이 아닌 까닭에 탈출 후 모자가 받아내야 했던 세상의 모진 시선들과 함부로 내뱉어지는 말들에 이중의 생채기가 생기게 된다. 잭에겐 그리움의 공간인 방이 엄마에겐 끔찍한 세월이 묻힌 공간이었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갈 잭의 세상은 세월이 더해갈수록 어쩌면 더 잔인해질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올드닉의 피가 절반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아이의 순수성이 깨어져버릴까봐 더 걱정하게 만들었던 소설 [룸].


뱉어놓은 침처럼 닮은 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봄볕쬐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뱉어놓은 침처럼 닮은 모자의 대화때문이었고 일상 때문이었다. 

잭 : 하늘나라에 있을때 말이야. 마이너스 한 살, 마이너스 두살.
엄마 : 아니. 땅에 내려오기 전에는 나이를 세지 않아.

이처럼 천사같은 모자의 대화를 읽으면서 나조차 잠시 그들이 갇힌 공간을 잊고 올드닉을 잊었다. 그러나 [룸]은 동화가 아니라 소설이었다. 그래서 탈출 후에 잭이 겪는 괴리감과 잭의 엄마를 덮친 정신적인 상처도 리얼리티적이다. 가족이 감싸안는 과정에서의 출혈과 타인의 시선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야하는 일 또한 피해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 모든 불합리한 일들이 잭의 시선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이해불가한 것은 있는 그대로,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은 또한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뱉어놓은 침처럼 닮은 모자는 방안에서도 딱 절반의 행복과 절반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세상밖에서도 절반의 편리함과 절반의 불행 사이에 서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잭이 자라 어른이 되어 엄마의 과거와 피의 비밀을 알게 되어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도록 한 구절을 발췌해 놓고 싶어졌다. "세포는 엄마 세포에서 나왔으니 나는 엄마의 것인 셈이다"라는 다섯살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구절이 바로 자신이 만든 말이었음을. 올드닉의 절반의 피 반대편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했으며 지키고자 했던 어린 엄마의 피와 세포가 물려졌음을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결국 소설은 그들을 알게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성숙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게 만들고 있다. 제목은 짧지만 그 감동의 길이는 지구 일곱바퀴 반의 길이로도 모자란 소설이 바로 [룸]이다. 2010년 읽은 최고의 명작 [룸]. 읽고나서도 가슴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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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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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위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작품 [인생]을 통해서였다. 문학성과 깊이. 이 둘에 감명받았던터라 그의 이름이 머릿속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래서 다음 작품 읽기에 고심하고 있었다. 

감동받은 작가의 다음 작품 읽기에 따라 그 작가에 대한 믿음이 굳혀지기도 사라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4월 3일 사건]은 단편모음으로 그 절반정도의 성공과 실패를 가져다 주었다고 보여진다. 

기대작이었던 4월3일 사건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정작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불안감만 가중 시킨 채 드디어 공포의 내일이 다가왔다는 시간적 상황 속에서 끝나버린다. 불안함만 가득한 채 정작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소년이 두려워했던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음모자체가 모호해서 그저 두려움만 느끼다 읽기를 끝내야했던 4월 3일사건과 자연재해를 담은 여름태풍, 아이의 시선으로 꾸며진 조상 등등은 그다지 코드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작품이 이 세 작품의 실망을 만족으로 끌어올렸는데 바로 [어느 지주의 죽음]이었다. 

기대했던 위화스러운 작품이면서도 인간의 치졸한 밑바닥까지 긁어낸 소설이기에 칙칙함에도 불구하고 분노 속에서 작품을 향해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분노했던 까닭은 중국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별로 다르지 않은 교착점을 지닌 중일전쟁 시기의 어느 시골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늙으면 변도 함께 늙는다는 재미난 문장을 뒷받침하듯 늘 밖에서 볼일을 보던 늙은 지주는 부쩍 볼일보기가 힘겹다. 그런 그에게 대를 이을 유일한 아들인 작은 지주는 자발적으로 일본군의 압잡이가 되어 그들을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끌고 죽음을 맞이한다. 거국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었으나 아들의 죽음뒤 자신도 벌판의 똥통 옆에서 죽어간 늙은 지주. 전쟁중 서서히 져가는 중국을 의미한 것은 아닌지 눈여겨 보게 되었다.  게다가 65세 할머니도 마다치 않고 겁탈하는 일본군의 인면수심적 행동에 대한 묘사부분에서는 우리네 여인들의 치욕이 떠올라 함께 분노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했다. 

밝고 재미난 작품들이 읽고난 다음 즐겁기는 하지만 문학적 깊이가 있고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파헤치고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들 역시 책읽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소중하다. 단편이지만 [어느 지주의 죽음]이 실린 4월 3일의 사건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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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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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하라. 고 적혀 있는 작법서를 발견할때마다 누군가의 충고가 떠오르곤 했었다. 글쓰기는 너의 일기장이 아니라고.........

비록 나를 향한 충고는 아니었지만 곁에서 들으면서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겠냐고 속으로 생각했었기에 작법서에서 그 반대되는 이야기를 발견했을때 창작의 영역에 어느만큼 경험의 영역을 교차하여야 하는 것일까 라는 범위론적 생각이 들고 말았다. 

소설 [압구정 소년들]의 저자가 압구정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약력을 읽으면서 그때의 그 생각들이 떠올랐다. 과연 얼만큼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것일까 라고. 압구정 소년들은 제목만으로는 럭셔리한 문화를 보여줄 것만 같은 기대를 갖게 만드는 소설이다. 작가 정수현식의 블링블링하면서도 트렌드 적인 요소가 가득한 소설일까 기대했으나 의외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넉넉하게 자라온 환경이나 힘들이지 않고 얻어낸 학벌, 걱정 없이 열었던 지갑은 틀렸을지 몰라도 살면서 하게 되는 고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온 고민의 흔적들은 우리와 그닥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묘하게 정감이 가 열심히 읽게 된 소설은 책장을 한꺼번에 후루룩 넘길만큼 재미있었다. 추리소설 읽듯이 범인을 색출하고 이유를 탐문하는 과정에서의 스릴과 까발려지는 비리를 확인하는 쾌감, 잘난 것들의 평범한 일상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칙칙함을 벗어난 것이었다. 해피엔딩이 주는 안도감.  소설은 예전의 단편들에 비해 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 점이 가장 반가운 점이었다. 

예전엔 구정고등학교였던 압구정고의 대웅,우주,원석,윤우는 압구정 소년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그 중 병원장집 아들인 대웅은 일대에서 유명한 녀석이었는데 결국 변호사 출신 연예기획사 대표가 되었고 화자는 천문학과 교수의 아들이었던 현우주다. 우주는 현재 패션잡지 에디터인데 어느날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자 만인의 연인이며 대웅의 아내로 살았던 연희의 자살소식을 듣게 된다. 

연희. 세화여고 3총사 중 하나로 20살에 이미 연예계의 샛별이었으며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죽음으로 국회의원딸인 미진과 전국 10등이자 현재는 성형외과 의사인 소원도 다시 만나게 되지만 반가운 만남들은 아니었다. 친구의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서른 다섯의 나이에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된 그들. 한때엔 타임캡슐도 모여 묻었던 친구들이 불과 십몇년 사이엔 자신들의 부모같이 누리는 어른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넉넉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그들의 오늘을 뒤로 하고 그런 그들을 불러 모은 연희의 자살 사건 이면에서 들리는 대웅에 대한 추악한 소문들의 진실을 쫓아 우주는 사건을 파고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연희와 지상민의 가정사는 물론 대웅을 둘러싼 연예계의 무성했던 소문들의 진실 및 자신을 짝사랑했던 소녀가 누구였는지도 뒤늦게 알게 된다. 

알게 된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가. 에 대해서는 언제나 중립의 입장이었지만 소설 속에서 알게 된다는 것은 시원해짐을 의미함과 동시에 더 발전할 수 있는 해피엔딩을 예고하고 있다. 

어쩌면 가벼워 보이는 소설의 이야기들 속엔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할 현재의 모습들도 담겨 있는데,  한참 이슈화 되었던 모 기획사 남녀 아이돌 멤버의 탈퇴에 대한 스캔들, 해외 및 국내 스타들의 자살 등등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함께 떠올려지는 몇몇 얼굴들이 있다.  또한 갑작스런 죽음 후 영구동결되어버린 스타들의 모습과  너무 늦지 않게, 너무 늙기 전에 사라진 한 여배우에 대한 안타까움등등이 소설의 연희의 모습과 겹쳐져, 읽으면서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얼마전 [페이스 쇼퍼]를 읽었을때 스타들의 남모를 고뇌와 그들의 컴플렉스를 알게 되었던 것처럼 [압구정 소년들]을 읽으면서도 누구에게나 있는 컴플렉스가 부족함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도 있다는 사실과 환경적 결핍은 없었지만 사회 속에서 크고 작게 겪게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들도 겪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나니 더 이상 밀어내기를 하고 싶지 않아졌다.


싫든 좋든 그렇게 태어났다는 그들을 향한 질타와 경계심, 그리고 무관심을 옅어지게 만드는 묘한 구석을 가진 소설이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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