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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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하라. 고 적혀 있는 작법서를 발견할때마다 누군가의 충고가 떠오르곤 했었다. 글쓰기는 너의 일기장이 아니라고.........

비록 나를 향한 충고는 아니었지만 곁에서 들으면서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겠냐고 속으로 생각했었기에 작법서에서 그 반대되는 이야기를 발견했을때 창작의 영역에 어느만큼 경험의 영역을 교차하여야 하는 것일까 라는 범위론적 생각이 들고 말았다. 

소설 [압구정 소년들]의 저자가 압구정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약력을 읽으면서 그때의 그 생각들이 떠올랐다. 과연 얼만큼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것일까 라고. 압구정 소년들은 제목만으로는 럭셔리한 문화를 보여줄 것만 같은 기대를 갖게 만드는 소설이다. 작가 정수현식의 블링블링하면서도 트렌드 적인 요소가 가득한 소설일까 기대했으나 의외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넉넉하게 자라온 환경이나 힘들이지 않고 얻어낸 학벌, 걱정 없이 열었던 지갑은 틀렸을지 몰라도 살면서 하게 되는 고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온 고민의 흔적들은 우리와 그닥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묘하게 정감이 가 열심히 읽게 된 소설은 책장을 한꺼번에 후루룩 넘길만큼 재미있었다. 추리소설 읽듯이 범인을 색출하고 이유를 탐문하는 과정에서의 스릴과 까발려지는 비리를 확인하는 쾌감, 잘난 것들의 평범한 일상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칙칙함을 벗어난 것이었다. 해피엔딩이 주는 안도감.  소설은 예전의 단편들에 비해 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 점이 가장 반가운 점이었다. 

예전엔 구정고등학교였던 압구정고의 대웅,우주,원석,윤우는 압구정 소년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그 중 병원장집 아들인 대웅은 일대에서 유명한 녀석이었는데 결국 변호사 출신 연예기획사 대표가 되었고 화자는 천문학과 교수의 아들이었던 현우주다. 우주는 현재 패션잡지 에디터인데 어느날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자 만인의 연인이며 대웅의 아내로 살았던 연희의 자살소식을 듣게 된다. 

연희. 세화여고 3총사 중 하나로 20살에 이미 연예계의 샛별이었으며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죽음으로 국회의원딸인 미진과 전국 10등이자 현재는 성형외과 의사인 소원도 다시 만나게 되지만 반가운 만남들은 아니었다. 친구의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서른 다섯의 나이에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된 그들. 한때엔 타임캡슐도 모여 묻었던 친구들이 불과 십몇년 사이엔 자신들의 부모같이 누리는 어른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넉넉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그들의 오늘을 뒤로 하고 그런 그들을 불러 모은 연희의 자살 사건 이면에서 들리는 대웅에 대한 추악한 소문들의 진실을 쫓아 우주는 사건을 파고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연희와 지상민의 가정사는 물론 대웅을 둘러싼 연예계의 무성했던 소문들의 진실 및 자신을 짝사랑했던 소녀가 누구였는지도 뒤늦게 알게 된다. 

알게 된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가. 에 대해서는 언제나 중립의 입장이었지만 소설 속에서 알게 된다는 것은 시원해짐을 의미함과 동시에 더 발전할 수 있는 해피엔딩을 예고하고 있다. 

어쩌면 가벼워 보이는 소설의 이야기들 속엔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할 현재의 모습들도 담겨 있는데,  한참 이슈화 되었던 모 기획사 남녀 아이돌 멤버의 탈퇴에 대한 스캔들, 해외 및 국내 스타들의 자살 등등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함께 떠올려지는 몇몇 얼굴들이 있다.  또한 갑작스런 죽음 후 영구동결되어버린 스타들의 모습과  너무 늦지 않게, 너무 늙기 전에 사라진 한 여배우에 대한 안타까움등등이 소설의 연희의 모습과 겹쳐져, 읽으면서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얼마전 [페이스 쇼퍼]를 읽었을때 스타들의 남모를 고뇌와 그들의 컴플렉스를 알게 되었던 것처럼 [압구정 소년들]을 읽으면서도 누구에게나 있는 컴플렉스가 부족함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도 있다는 사실과 환경적 결핍은 없었지만 사회 속에서 크고 작게 겪게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들도 겪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나니 더 이상 밀어내기를 하고 싶지 않아졌다.


싫든 좋든 그렇게 태어났다는 그들을 향한 질타와 경계심, 그리고 무관심을 옅어지게 만드는 묘한 구석을 가진 소설이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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