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호기심이 생기는 순간 이미 읽고 있을 것이다...

더이상 찬사가 필요없는 책이 [룸]이었다. 엠마 도노휴는 실화를 바탕으로 충격적인 명작을 완성해냈는데 2010년 9월에 발표된 이 책이 11월에 이 머나먼 동양의 나라에 번역되기까지 단 두달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이 책의 파급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 아닐까. 

30여개국에 판권이 팔리면서 그 뜨거운 반응은 책을 읽은 독자로서 따로 언급을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궁금하면 읽어보라! 끌리면 읽어보라~!라고 권할 뿐이다. 더 이상의 권유는 필요없다. 호기심이 생기는 순간 이미 읽게 될테니까. [룸]은 그런 마력을 지닌 소설이다. 


현실의 잔인함이 덮이는 순간, 시작되는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새의 선물 등의 공통점은 어린 아이가 화자라는 점이다. 국어시간에 배워 알겠지만 어린 아이가 화자가 되면 세상은 순수하면서도 재미있어진다. 그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른들처럼 재어보거나 변명으로 가득 채워진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이가 두 배나 많은 남자에게 19의 나이에 납치,감금되어 두 번의 출산까지 경험한 엄마에 대한 시선도 동정이나 공포가 아닌 여느 아이와 다름없는 사랑의 시선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편의상 모자가 올드닉이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분명 범죄자다. 7년의 세월동안 집 마당 창고에 여자를 감금해놓고 폭행하면서 아이까지 낳게 했다. 그리고 가져다주는 음식에 감사하라고 존경심을 바란다. 사회 속에서는 루저지만 작은 방에서는 폭군이 되고 가진 자가 되고 왕이 되려했던 올드닉의 비정상적인 세상 안에서 힘없는 여인과 그의 아들은 애완동물과 다를바 없었다. 

하지만 다섯살 신사 잭의 시선이 현실의 잔인함을 순수함으로 뒤덮어 버렸다. 마치 흰 눈이 세상의 더러운 곳곳을 깨끗이 덮어버리듯이. 하지만 눈이 녹고나면 그 더러움이 다시 보여지듯 태어나 바라본 세상의 전부가 방이었던 잭에겐 탈출이란 쓸데없는 짓처럼 여겨진다. 다섯살인데 아직 젖을 먹고 밤에 들이닥치는 올드닉을 피해 컴컴한 옷장에서 잠들어야 하는 아이. 

정상적인 환경이 아닌 까닭에 엄마는 잭이 여섯살 되던 날 탈출을 감행하고 모자는 구출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탈출기나 모험물이 아닌 까닭에 탈출 후 모자가 받아내야 했던 세상의 모진 시선들과 함부로 내뱉어지는 말들에 이중의 생채기가 생기게 된다. 잭에겐 그리움의 공간인 방이 엄마에겐 끔찍한 세월이 묻힌 공간이었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갈 잭의 세상은 세월이 더해갈수록 어쩌면 더 잔인해질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올드닉의 피가 절반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아이의 순수성이 깨어져버릴까봐 더 걱정하게 만들었던 소설 [룸].


뱉어놓은 침처럼 닮은 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봄볕쬐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뱉어놓은 침처럼 닮은 모자의 대화때문이었고 일상 때문이었다. 

잭 : 하늘나라에 있을때 말이야. 마이너스 한 살, 마이너스 두살.
엄마 : 아니. 땅에 내려오기 전에는 나이를 세지 않아.

이처럼 천사같은 모자의 대화를 읽으면서 나조차 잠시 그들이 갇힌 공간을 잊고 올드닉을 잊었다. 그러나 [룸]은 동화가 아니라 소설이었다. 그래서 탈출 후에 잭이 겪는 괴리감과 잭의 엄마를 덮친 정신적인 상처도 리얼리티적이다. 가족이 감싸안는 과정에서의 출혈과 타인의 시선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야하는 일 또한 피해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 모든 불합리한 일들이 잭의 시선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이해불가한 것은 있는 그대로,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은 또한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뱉어놓은 침처럼 닮은 모자는 방안에서도 딱 절반의 행복과 절반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세상밖에서도 절반의 편리함과 절반의 불행 사이에 서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잭이 자라 어른이 되어 엄마의 과거와 피의 비밀을 알게 되어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도록 한 구절을 발췌해 놓고 싶어졌다. "세포는 엄마 세포에서 나왔으니 나는 엄마의 것인 셈이다"라는 다섯살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구절이 바로 자신이 만든 말이었음을. 올드닉의 절반의 피 반대편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했으며 지키고자 했던 어린 엄마의 피와 세포가 물려졌음을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결국 소설은 그들을 알게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성숙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게 만들고 있다. 제목은 짧지만 그 감동의 길이는 지구 일곱바퀴 반의 길이로도 모자란 소설이 바로 [룸]이다. 2010년 읽은 최고의 명작 [룸]. 읽고나서도 가슴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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