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삶을 사셨습니까? 당신의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라니. 무엇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기를 그토록 고대했던 것일까. 미야베 미유키의 책 표지와 같은 모습의 표지 그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대대로 자살용품만을 판매해왔다는 상점을 소재로 한 독특성 때문이었을까. 십오만 명이 자살 시도를 하는 가운데 무려 십삼만팔천명이 실패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죽지 않는다면 전액 환불~!!!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판매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는 가족은 아주 특이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타인의 자살에 대해 진심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가 하면 아들에게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명복을 빕니다"라고 인사하는 법이 옳다고 가르치는 이상한 부모. 게다가 자장가 대신 자살 이야기를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엄마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블랙 유머는 이런 모습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오고 있었는데, 대대로 이어온 가업인 자살가게에 알랑이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에는 이질적인 느낌이 생겨버렸다. 도대체 자살가게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이 아이는 그림조차도 햇살 가득한 밝은 그림을 그리고 바람과 놀고 구름과 이야기하며 오가는 손님에게 미소와 인사를 잊지 않는다. 열한 살 알랑의 그 점이 부모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자살가게를 대물림하여 이어가며 알랑을 제외한 식구들 또한 염세적이고 죽음에 가까워져 있었는데 알랑은 손님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행복과 미래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차게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생명줄을 놓아 버렸다. 행복한 마음으로. 임무 완수라며. 그래서 [자살가게]는 끝까지 진행되는 반전으로 인해 엽기발랄함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애초에 자살가게라는 장소를 생각해낸 것 자체 부터가 작가의 엉뚱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자살용품 판매의 가업을 잇다니..기요틴의 창시자 기요틴 가문조차 감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이야기가 아닌가. 장 퇼레는 죽음에 대한 기묘한 접근으로 인해 더 역설적인 웃음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읽는 내내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끊이 없이 웃게 만드는 유머의 참신성이 페이지 마다 가득차 있다.
일년 중 6개월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는 부러운 삶의 주인공 미꼬씨. 그녀는 왜 베트남으로 향했던 것일까. 그보다 그녀는 어떻게 베트남 여행에서 살아남았던 것일까. 그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해 여행 작가 김기연의 베트남 여행기에 코를 파묻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지랄 맞고 시건방진 여행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그녀의 여행기. 그 속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풍경도, 사람도, 베트남도 아니었다. 바로 미꼬씨였다. 사진찍고 글을 썼을 미코씨의 여행이 가장 먼저 떠올려지고 웃음이 묻어나게 된다. 환전하면 두둑해진다는 베트남에서 그녀는 죙일 사기를 당하며 다닌다. 숙소에서도 개미가 버글버글하고 버스 요임조차 사기당한다. 그녀는 사기 잘 당하게 생긴 얼굴인 것일까. 성격인 것일까.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언제나 즐겁다. 그래서 그녀의 여행기를 구경하는 내내 즐거운 마음이었다. 지루했다던 워터퍼펫마저도 구경해 보고 싶게 만드는 그녀의 여행기. 브라질에 이어 베트남이 두 번째 커피 생산국이라는 전혀 몰랐던 정보도 흘려주는 여행기. "죽어라 살을 태워도 희멀건 피부의 서양 여자와 햇볕을 피해 온 몸을 휘감고 다녀도 시꺼먼 베트남 여자 중 누가 더 가여운 걸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미꼬의 여행기. 여행이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다고 조우하는 그녀의 여행기 속엔 미꼬 그녀의 소통방식이 존재한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여행을 다니며 풍경과 인물들과 소통하는 그녀. 여행자체가 삶의 소통구처럼 보이기까지 한 그녀의 여행 속에는 분명 일상탈출과는 다른 그 어떤 소명의식이 엿보인다. 어느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떠나니 만나고, 놓으니 얻게 되며 사람에 대한 집착을 놓으니 사람이 다가오고, 사랑을 놓으니 사랑이 찾아온다..... 세상은 그래서 살만하다... 고 멋지게 말하는 그녀. 여행이 그녀를 시인으로 만드는 것일까. 나도 그녀처럼 일년의 6개월은 해외에서 보내고 싶다....아, 운명...!!!운명도 꿈꾸면 이루어질까
토지를 읽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치열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라고 전 21권의 양장본에 대한 소개는 시작되고 있었다. 토지. 어린시절 드라마로 봤던 기억이 얼금얼금...책으로 봤던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봤던 [미망] 이나 [장길산]보다 더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소설이 바로 토지다. 토지는 근현대사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한국 문학과 삶의 뿌리라고 말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그런 작가 박경리를 기리기 위한 응모전이 있었는데 바로 [평사리 문학대상]이다. 토지문학제로 불리기도 하는 그 글축제 7년간의 수상작 모음집이 있다는 말에 두 말없이 달려가 책을 안아들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설/수필/시의 수상작들과 그 당선소감은 투고작가의 마음으로, 심사평은 심사위원의 마음이 되어 읽어나갔다. 어느 해의 작품은 지루함에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고, 또 어느 해의 작품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궁지에 몰린 닭처럼 머리를 콕 쳐박고 읽어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한 권을 완전정복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03년 작 소설인 [끝섬]이었다. 첫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라...는 작법서의 외침이 틀리지 않았던 것을 이 작품을 통해 경험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문제의 첫문장 때문이었다. "죽은 그림이군요. 남자를 옭아맨 말이다"라는 시작은 궁금증과 함께 가슴 밑바닥에 저며 있는 그 무엇을 올라오게 만드는 힘을 가진 문장이었다. 여자의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남자의 고백처럼 읽는 내내 내게도 그 첫문장은 지워지지 않았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장면들 속에서 착붙어 읽게 만드는 속도감은 작가의 문장감에 있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쓴다 를 구경하고 싶어 읽기 시작했으나 어떻게 쓴다 의 답을 구하지 못한 채 책을 덮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던 까닭은 몇몇 작품이 보여준 재미 때문이 아니었을까.
[ 그 여자네 집 ] 은 슬픈 운명이 담긴 소설이다. 어쩌지 못하는 사회적인 상황이 인간의 운명을 얼만큼 비틀어 놓을 수 있는지 통감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 여자의 집이라는 시 한 편이 떠오르게 만든 누군가의 운명은 세월이 지나까지 그 소식이 이어져 듣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지금 나는 사랑하러 갑니다]를 선물받으면서 가장 먼저 찾아본 소설이 바로 [ 그 여자네 집 ]이었다. 그동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읽지 못했던 소설이었기에 무척이나 반가웠고, 작가의 포근한 문체에 묻혀 슬픔이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읽어내려가는 시간 또한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겨졌다. [미망]의 박완서 작가외에도 9인의 작가가 담아낸 진솔한 사랑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는데 [정혜]의 경우는 영화의 원작이라 보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다. 여성 작가들이 들려주는 그녀들의 이야기 속엔 여러 소재 속에서도 아련한 봄 아지랭이 같은 그리움이 녹아나 있는데, 그 대상은 때론 사람이 때론 시간이 때론 또다른 그 무언가로 남아 감동에 여운을 보탠다. 동성의 사랑이든 불륜의 사랑이든 중년의 사랑이든 풋사랑이든 사랑이라는 이름은 그리움과 안타까움 외에 각자의 양념을 더하면서 항상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기는 종류의 병인가보다. 그 상처가 딱지가 되어 떨어져 나가버려도 그 자리에는 그 크기만큼의 멍이 남아 오늘날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다. 소설은 꾸며진 이야기지만 소설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된다. 같은 상황 같은 느낌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그 속의 누군가가 되어 함께 공감하는 마음을 울려대니 말이다...
[도착의 사각]을 읽으면서 오리하라 이치라는 작가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 편의 소설을 묶어 "도착"시리즈를 펴냈다는데, 그 이음성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언젠가는 꼭 도착 시리즈를 다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더랬다. 그리고 그 두번째 이야기 [도착의 론도]의 읽기를 끝냈다. 도착의 사각과 도착의 론도는 얼핏봐서는 번역이 달라 제목이 약간 빗겨간 소설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연결되는 바가 없는 전혀 다른 소설이다. 도착의 사각이 진실이 망상이 되는 순간 반전이 찾아온다면 도착의 론도는 끝까지 읽어야 반전의 내용이 무엇인지 진위를 살필 수 있다.현실과 허구가 뒤섞여 그 어느쪽이 진실인지 모호해져버린다. 추리소설 신인상 응모를 위해 최고의 집중력으로 작품을 완성해 냈던 야마모토 야스오. 그는 어느 순간 원고도 잃고 친구도 잃은 불행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작품을 위해 조금만 참자!조금만 참자!를 다짐하며 살아온 날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위해 워드프로세서화 해주겠다면서 원고를 가져갔다가 잃어버려 미움을 산 친구는 살해당했고 자신은 한동안 그 살해범으로 오인받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정신이 혼미해질만 한데.... 반면 백수 나가시마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주운 원고를 읽다가 자신의 작품인양 신인상에 덜컥 응모해 버렸다. 시라토리 쇼라는 가명으로... 그 원고 [환상의 여인]이 수상작으로 뽑히고 베스트셀러화가 되면서 진실을 되찾으려는 야마모토와 거짓을 이어가려는 나가시마의 반목이 시작된다. 사실 나가시마는 [환상의 여인]의 진가를 알아보고 자신의 작품화 하려는 욕심에 야마모토를 살해할 계획까지 세웠다. 약간의 오해가 보태져 야마모토인줄 알고 친구를 살해해버렸지만 말이다. 도착의 론도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며 읽을 수 없는 까닭은 엎치락뒤치락하며 결말을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읽어야 이 두 사람 외에 또 다른 반전의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환상의 여인]은 야마모토의 것도 시라토리의 것도 아니었다. 또한 결미부분에 원고를 가지러 온 손에 대해서도 그 부분에 대한 어떤 트릭이 존재할까봐 계속 앞뒤 페이지를 연결해가며 되읽어야 할만큼 [도착의 론도]는 헷갈리게 하고 있었다. 결말에 와서도 결코 그 속도감은 느슨해지지 않는다. 결말은 더 스피드 있게 밀어붙여져 사건을 재미속에 던져넣어버린다.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에 주목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