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는 항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놓여 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법정 스님의 "어느 길을 갈 것인가"는 언제나 마음의 길을 열어놓게 만드는 시다. 우연찮게 발견해서 꾸준히 읽으며 어느새 숙지가 되어 나도 모르게 혼자 되뇌이게 만드는 문장들. 그런 문장들을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알레프]를 읽으며 중얼거리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는 [연금술사]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악마와 미스프랭]이나 [11분] 혹은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더 선호하는 편이라서 [알레프]가 출판되기 전까지 별기대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대다수가 좋다고 말하는 것과 나의 선호는 언제나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 출간 첫날부터 베스트셀러 1위로 올랐다는 보도자료들이 약간은 식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대보다는 정말? 이라는 기우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 [알레프]. 알레프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 왠지 외계인이 등장할 것 같은 외계어처럼 들리는 책제목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 읽어나간 내용들은 의외로 이른 새벽 어슴프레한 안개에 매료된 것처럼 신비스럽기 그지 없었다.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가슴에 파고드는 몇몇 문장들까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새벽에 머무를 수 있었다. 생이란 누군가를 위해 성스러운 불을 피우는 것 그리고 그에게 자기 영혼을 나눠 주는 것 인생에 있어서 정오 즈음을 지나고 있는 내게 새벽을 경험하는 일은 아주 멋진 일이 되고야 말았다. 동양에서조차 "환생"이라 "카르마"라는 소재는 흥미로운 소재이며 신비스럽게 빠져들게 만드는데 서양인이 이야기하는 환생과 업보라는 것의 순환은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자기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듯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남자는 2006년 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미리 준비한 프로포즈인양 타인들이 내리는 한 여인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을 건네고 그 장미꽃이 열 두 송이가 되는 순간 남자가 나타났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건가요?"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나는 강물처럼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멋진 답변이었지만 현세에서 그들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남자에겐 아내가 있었고 여자는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디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이렇게만 보면 애절한 사랑이야기같지만 이야기를 처음부터 읽어나간다면 달콤한 고백이 완성되기까지 그들이 깨달아야했던 전생의 이야기가 밑바탕에 전재되어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레드 바이올린]이라는 영화가 무생명체인 바이올린이 동서양, 세대를 지나면서 자신을 거쳐간 사람들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봐주고 우리에게 알게끔 만들듯이 시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이 둘의 관계를 묵묵히 지켜보게 만들고 그들의 전생과 현생에 이르기까지의 인연의 줄을 곁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인 남자나 여자 주인공인 힐랄이 아니라 언제나 등장하지만 인식하기 힘든 "그들의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당신은 나를 저버렸어요. 나는 당신 때문에 죽었고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돌아온 거에요 시간이 멈춘 페이지가 있다. 과거 페스트로 부모를 읽은 그를 도로바준 가족의 딸을 종교재판에서 구해주지 못한 채 처형식에 참여하게 된 도미니크 수사였던 그가 살았던 시간이 그랬다. 여덟 명의 소녀를 처형하는 현장에서 역할이 주어졌던 그가 다시 태어나 다섯을 만났으니 이제 남은 사람은 셋. 떠올려보면, 김만중의 소설에도 이와 같은 줄거리의 작품이 있었다. 노모를 즐겁게 하기 위해 지었다는 [구운몽]이라는 소설인데 팔선녀와 함께 지상에서 환생해 그녀들을 만나는 양소유라는 인물이 꼭 [알레프]의 소설 속 남자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이 독자의 마음 속에 남기는 "마음의 양식"은 참 판이하게 다르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소재와 줄거리가 다르게 보여질 수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알레프] 한 권을 읽고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에 빠져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영혼을 두드리고 있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다음에는 과연 어느 지역을 여행하고 어떤 글과 함께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혹시 동양을 여행하고, 그 중 한국의 문화지역들을 여행하면서 그가 멋진 소설 하나를 남겨준다면 좋겠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끝으로 소설 읽기를 마쳔다. 인생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과거뿐이며 인생이 향하는 방향은 미래여야 한다 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지만 오늘 나는 그와 다른 생각으로 읽혀진 소설 한 권으로 인해 참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면 장르불문하고 열정적으로 찾아보던 시기가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랬고, 온다 리쿠도 그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진한 작품에 물이 스며들듯 색이 옅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어김없이 그들을 떠나 다른 작가의 매니아가 되곤 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역량을 보이던 작가라 참 오랫동안 그의 작품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 일년간 둘러본 몇몇 작품들의 색이 옅어지기 시작하며 나는 이전 작품들 속에서 그가 쏟아부었던 열정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작품인 [새벽거리에서]는 근래 드물고 보고싶어진 작품이었는데 내용이 15년 전 한 가정에서 일어난 비극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 형사가 용의자를 뒤쫓지만 포커스는 당시 학생이었던 용의자인 그 집 딸의 현재 유부남 애인인 "나"에게 맞춰져 있다. 현재의 그녀를 사랑하지만 당시의 그녀에 대해 알리 없는 그래서 어정쩡한 제 3자의 시선이 될 수 밖에 없는 화자. 그가 궁금해하는 내용들이 바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이라 그는 바로 독자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과연 15년 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라는 궁금증은 공소시효를 며칠 앞두고 불륜의 현장에 던져지는데, 가정까지 포기하고 애인을 택하려는 "나"에게 그녀, 아키하가 범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자신도 가족을 속이고 애인과 함께하는 밤을 보내면서도 그녀에 대한 믿음의 증거가 왜 필요한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인간 저 밑바닥에 존재하는 공포와 [인간의 증명]에서처럼 최소한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증거는 필요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서른 한 살이 된 아키하 주변에는 그래서 당시 담당 형사, 별거중이었던 아버지, 집안 일을 봐 주던 이모,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죽은 여인의 여동생까지 맴돌고 있었고 "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15년 전 일이 밝혀지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진실은 아키하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밝혀지는 추악한 가정사. 결국 아키하를 둘러싼 진실은 가정내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며 가정내로 숨겨진 이야기였던 것이다. 원하는 만큼의 진함은 없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솜씨의 작품이었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좀 더 긴장감을 갖고 읽던 과거의 그 느낌을 전달받을 소설을 만나고 싶다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원하는 바다. p.254 정말 듣고 싶어요? 혼조 레이코 살해 사건의 진범은 나카니시 아키아, 당신이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이야기인데도?
스물 네살이 되어서야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것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세월이 아깝다거나 후회로 시간을 때우기 보단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위한 일을 시작했다. 자신의 삶이 이해되는 순간 타인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 것이었다. ADHD를 활용하면서..... 미국에는 이미 850만이나 되는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아동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들을 사회에 이해시키기 위해 그리고 일반화하기 위해 "정상인"들에게 ADHD의 특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어떤 것인지 경험자로서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행복과 성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을 서문에 드러내고 있었다. 20살무렵, 딥스 를 감명깊게 읽은 내게 리틀 몬스터는 또 다른 재미난 자극이 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해의 관점에서. 아들만 다섯이 있는 집의 막내로 태어난 저자에게 집안의 수재이자 신경과 의사인 큰 형, 스포츠 스타인 둘재 형,친구가 많은 셋째형, 개그맨인 네째형의 존재는 평범하다기보다는 비교대상이지 않았을까.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등장하던 제제처럼 그는 집 안에서는 튀는 존재였을 것이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칠칠치 못하고 하는 일마다 시원찮고 별나기까지 하다는 평가는 자기가 자신에게 내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도리어 누군가들이 내뱉은 말들이 조합되어 세뇌된 것은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낮은 자아존중감을 가지게 된 어린 소년은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조건을 이겨냈다. 물론 적절한 약 처방을 받아 약을 먹기도 했고 환경을 바꿔가며 적응력을 키워보기도 했고 사회적인 지지망을 구축해 우울감이나 무가치감을 떨쳐내려 노력하기도 했다. 적극적인 자세로 자존감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점! 무엇보다 이 점이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인지 그는 현재에는 소위 그가 말하던 "정상인"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대학교수가 되어 지난 날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 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ADHD 아동들은 대부분 자신들도 좋은 아이가 되려고 애쓰고 있으며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길 원한다고. 나는 ADHD를 앓고 있지도 않고 그런 자녀를 키우는 부모도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의 한 편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아동 심리나 아동관련 서적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가장 충만하게 흡수할 수 있는 서적들이므로.
백과사전만큼이나 두꺼운 [거짓의 미술관] 1권 읽기를 끝냈다. 1권을 덮으면서 그 어떤 길이의 긴 판타지를 읽은 것보다 만족스러운 느낌으로 충만했다. 역시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가 발굴한 랄르 이자우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일어난 명작의 연쇄 도난 사건과 마주쳤을때만 해도 추리소설식으로 풀리는 명작도난 사건쯤으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그 표면적인 도난 사건의 수면아래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어 호기심을 자극해댔다. 스릴러를 읽으면서 지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니!!! 랄프 이자우는 과연 어떤 작가인지 뒤돌아 보게 만드는 작품이 바로 [거짓의 미술관]이 된 셈이다. 파리의 루브르 미술과느 런던의 테이트 보던 미술관 오스트리아 빈 예술사 박물관에서 도난이 일어날 때 마다 르네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가 언급되곤 했고 그 관련 물건들이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또 누가 무엇을 목적으로 그것들을 훔쳐가고 갖다놓고 하는 것일까? 두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이 두꺼운 소설을 읽어나가며 나는 그 어떤 여행보다 재미난 여행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 깨달음은 1권을 읽고 나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었고 흠뻑 빠져지내면서도 그조차도 알지 못했다. 다음번에 도난당할 미술품의 존재보다 테오가 누구인지 또 알렉스와 같은 유전자를 지닌 인간은 대체 몇명이나 더 등장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알렉스는 알렉산더도 될 수 있고 알렉산드리아도 될 수 있는 양성을 지닌 인간이면서 헤르마프로디테였다. 여성적인 특징과 남성적인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그녀와 2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나타난 동일한 특징을 가진 형제자매들의 존재는 이 미술품 도난과 무슨 연관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종결짓게 될는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이전에도 이런 재미를 맛보지 못했고 아마 이 이후에도 이런 재미를 맛볼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는 2권을 기다렸다가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할 것 같다. 연쇄 도난 사건. 그 뒤의 거대한 음모는 분명 매력적인 이야기였고 판타곤적이라고 일컬을만한 작품이었다. 2권. 빠른 시일내에 읽기를 시작해야 할 듯 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을 다시 살펴보면서 이 시대 화가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보러 가던 지난 날과 달리 그림들의 탄생배경과 화가들의 환경을 이해하고 나니 그림은 다른 모습으로 와 닿았따. 강렬하고 우아한 그림에서부터 17세기~18세기 바로크, 로코코 미술에 이르기까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림들은 우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뭉크의 "절규"같은 그림에선 화가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예술 프로그램에서 자주 접하다보니 이젠 일상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더 알게 될 새로운 것이 없어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볼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만들고 화가 뭉크는 "절규"이외의 {불안}이나 {사춘기}같은 그림까지 두루두루 구경하게 만든다. 특히 "불안"은 "절규"의 후속작처럼 느껴지는 연장선상의 그 무언가를 전달하는데, 얼굴이 처러딩딩한 시체같은 사람들이 동일 원근법으로 그려져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전달받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가정은 어머니, 누나가 결핵으로 사망했고 30세 무렵엔 동생까지 사망해 우울한 느낌을 화폭에 담은 뭉크는 그러나 [사춘기]를 통해서는 그간의 이상한 표정을 벗어나 소녀의 누드화를 통한 정상적인 그림을 보여주나 했다. 하지만 이 그림이ㅔ서조차 큰 그림자가 불안을 상징하면서 정신과 몸이 모두 불안한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다. 글과 영상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이렇듯 분위기 및 기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코드가 숨겨져 있음을 아이들이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어졌으나 [어린이를 위한 세계의 명화]를 통해 보니 어렵다고만 해서 아이들에게서 좋은 그림을 이해할 시간을 빼앗는다는 것은 어른의 이기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좋은 그림을 보고 같은 것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에 걸맞는 색다른 해석을 해내 어른들을 놀래킬 수도 있는 것이므로... 누군가의 해석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것이 그림의 해석이기에 이 책에 나온 좋은 작품들이 아이들에게 널리, 두루 구경되어 그 어떤 느낌들을 전달하기를 기대해본다. 근대 미술을 구경하며 아이들은 어떤 표현을 늘어놓을까. 그것이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