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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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는 항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놓여 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법정 스님의 "어느 길을 갈 것인가"는 언제나 마음의 길을 열어놓게 만드는 시다. 우연찮게 발견해서 꾸준히 읽으며 어느새 숙지가 되어 나도 모르게 혼자 되뇌이게 만드는 문장들. 그런 문장들을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알레프]를 읽으며 중얼거리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는 [연금술사]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악마와 미스프랭]이나 [11분] 혹은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더 선호하는 편이라서 [알레프]가 출판되기 전까지 별기대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대다수가 좋다고 말하는 것과 나의 선호는 언제나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 출간 첫날부터 베스트셀러 1위로 올랐다는 보도자료들이 약간은 식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대보다는 정말? 이라는 기우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 [알레프].
알레프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 왠지 외계인이 등장할 것 같은 외계어처럼 들리는 책제목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 읽어나간 내용들은 의외로 이른 새벽 어슴프레한 안개에 매료된 것처럼 신비스럽기 그지 없었다.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가슴에 파고드는 몇몇 문장들까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새벽에 머무를 수 있었다.

생이란 누군가를 위해 성스러운 불을 피우는 것
그리고 그에게 자기 영혼을 나눠 주는 것

인생에 있어서 정오 즈음을 지나고 있는 내게 새벽을 경험하는 일은 아주 멋진 일이 되고야 말았다.
동양에서조차 "환생"이라 "카르마"라는 소재는 흥미로운 소재이며 신비스럽게 빠져들게 만드는데 서양인이 이야기하는 환생과 업보라는 것의 순환은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자기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듯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남자는 2006년 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미리 준비한 프로포즈인양 타인들이 내리는 한 여인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을 건네고 그 장미꽃이 열 두 송이가 되는 순간 남자가 나타났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건가요?"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나는 강물처럼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멋진 답변이었지만 현세에서 그들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남자에겐 아내가 있었고 여자는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디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이렇게만 보면 애절한 사랑이야기같지만 이야기를 처음부터 읽어나간다면 달콤한 고백이 완성되기까지 그들이 깨달아야했던 전생의 이야기가 밑바탕에 전재되어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레드 바이올린]이라는 영화가 무생명체인 바이올린이 동서양, 세대를 지나면서 자신을 거쳐간 사람들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봐주고 우리에게 알게끔 만들듯이 시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이 둘의 관계를 묵묵히 지켜보게 만들고 그들의 전생과 현생에 이르기까지의 인연의 줄을 곁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인 남자나 여자 주인공인 힐랄이 아니라 언제나 등장하지만 인식하기 힘든 "그들의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당신은 나를 저버렸어요.
나는 당신 때문에 죽었고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돌아온 거에요

시간이 멈춘 페이지가 있다. 과거 페스트로 부모를 읽은 그를 도로바준 가족의 딸을 종교재판에서 구해주지 못한 채 처형식에 참여하게 된 도미니크 수사였던 그가 살았던 시간이 그랬다. 여덟 명의 소녀를 처형하는 현장에서 역할이 주어졌던 그가 다시 태어나 다섯을 만났으니 이제 남은 사람은 셋.

떠올려보면, 김만중의 소설에도 이와 같은 줄거리의 작품이 있었다. 노모를 즐겁게 하기 위해 지었다는 [구운몽]이라는 소설인데 팔선녀와 함께 지상에서 환생해 그녀들을 만나는 양소유라는 인물이 꼭 [알레프]의 소설 속 남자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이 독자의 마음 속에 남기는 "마음의 양식"은 참 판이하게 다르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소재와 줄거리가 다르게 보여질 수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알레프] 한 권을 읽고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에 빠져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영혼을 두드리고 있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다음에는 과연 어느 지역을 여행하고 어떤 글과 함께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혹시 동양을 여행하고, 그 중 한국의 문화지역들을 여행하면서 그가 멋진 소설 하나를 남겨준다면 좋겠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끝으로 소설 읽기를 마쳔다.

인생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과거뿐이며 인생이 향하는 방향은 미래여야 한다 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지만 오늘 나는 그와 다른 생각으로 읽혀진 소설 한 권으로 인해 참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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