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면 장르불문하고 열정적으로 찾아보던 시기가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랬고, 온다 리쿠도 그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진한 작품에 물이 스며들듯 색이 옅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어김없이 그들을 떠나 다른 작가의 매니아가 되곤 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역량을 보이던 작가라 참 오랫동안 그의 작품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 일년간 둘러본 몇몇 작품들의 색이 옅어지기 시작하며 나는 이전 작품들 속에서 그가 쏟아부었던 열정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작품인 [새벽거리에서]는 근래 드물고 보고싶어진 작품이었는데 내용이 15년 전 한 가정에서 일어난 비극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 형사가 용의자를 뒤쫓지만 포커스는 당시 학생이었던 용의자인 그 집 딸의 현재 유부남 애인인 "나"에게 맞춰져 있다. 현재의 그녀를 사랑하지만 당시의 그녀에 대해 알리 없는 그래서 어정쩡한 제 3자의 시선이 될 수 밖에 없는 화자. 그가 궁금해하는 내용들이 바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이라 그는 바로 독자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과연 15년 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라는 궁금증은 공소시효를 며칠 앞두고 불륜의 현장에 던져지는데, 가정까지 포기하고 애인을 택하려는 "나"에게 그녀, 아키하가 범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자신도 가족을 속이고 애인과 함께하는 밤을 보내면서도 그녀에 대한 믿음의 증거가 왜 필요한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인간 저 밑바닥에 존재하는 공포와 [인간의 증명]에서처럼 최소한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증거는 필요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서른 한 살이 된 아키하 주변에는 그래서 당시 담당 형사, 별거중이었던 아버지, 집안 일을 봐 주던 이모,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죽은 여인의 여동생까지 맴돌고 있었고 "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15년 전 일이 밝혀지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진실은 아키하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밝혀지는 추악한 가정사. 결국 아키하를 둘러싼 진실은 가정내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며 가정내로 숨겨진 이야기였던 것이다. 원하는 만큼의 진함은 없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솜씨의 작품이었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좀 더 긴장감을 갖고 읽던 과거의 그 느낌을 전달받을 소설을 만나고 싶다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원하는 바다. p.254 정말 듣고 싶어요? 혼조 레이코 살해 사건의 진범은 나카니시 아키아, 당신이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이야기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