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구글을 움직이는 10가지 황금률
구와바라 데루야 / 유페이퍼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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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구글과 애플 중 어디에서 일할래?라는 행복한 질문을 받게 된다면 나는 픽사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 창조적인 자유스러움을 독려하는 회사의 분위기가 언제나 부러웠더랬다. 흔히들 구글을 엔지니어의 낙원이라 일컫지만 구인공고조차 일반적인지 않은 그들의 공고를 애써 찾아가며 땀이 삐질삐질나게 만드는 면접을 통과해야지만 구글러가 될 수 있는 회사에 천재들이 모여드는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예전부터-. 어떤 매력이 있어 구글은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독특한 기업문화/직원복지미래에 대한 비전  만을 장점으로 본다면 전세계에는 구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분명 만족스러운 삼박자를 갖춘 기업이 많을 것이다.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구글은 복리후생과 거액의 보너스, 스톡옵션, 무료식사가 주어지지만 그만큼 또 업무적인 충성도 요구하는 회사다. 주6일 90시간에 가까운 노동시간을 견뎌내야하며 집보다는 회사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일하는 시간을 늘여놓은 곳이기에 이 점을 감안하고도 구글러를 꿈꾸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것은 평범한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궁금증일 것이다.

 

얼마전 [스타강의]를 통해 유수연 강사의 강의를 들은 바 있다. 그녀의 독설이 직타가 되어 크게 감명받고 말았는데 그녀는 기업과 구인에 대해 이런 말을 짧게 남겼더랬다. 기업에는 뛰어난 인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A급 인재, B급 인재, C급 인재가 있어 서로의 역할과 분위기를 맞춰가는 것이다. 라고. 자신이 A급 인재가 되기를 꿈꾸지만 말고 사내에서 어떤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더 현명하다라고. 구글에서 인재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자아가 너무 강해 팀웍을 해칠 사람은 뽑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 역시 A,B,C,급 인재들을 고루 갖춰 각자의 역할 분담을 시켜놓은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애초 구글은 컴퓨터과학자와 데이터베이스컨설턴트 사이에서 태어난 래리 페이지와 수학천재 세르게이브린에 의해 창업되었다. 그들은 구글이라는 빠른 검색엔진을 구축하고 기업에 매각하려고 했으나 많은 관심만 보일 뿐 누구도 선뜻 구매하려들지 않아서 결국 회사를 설립했던 것이다. 10의 100제곱이라는 의미의 "구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했으나 기사용 도메인이어서 "구글"이 되었다는 에피소드에서는 다소 웃긴 이름보다는 구글이 훨씬 낫다싶어졌고 성장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도덕적인 의무까지 고려하는 기업이 도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구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한국인인 나는 구글보다는 네이버 검색이 더 편리하게 느껴진다. 녹색의 바가 떠 있고 지식검색을 통해 내가 찾고자 하는 자료들을 찾아내는 일이 더 일상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 영향을 주고 세상을 바꾼다는 비전을 갖고 사원들을 일하게 만드는 일은 우리네 기업 역시 고려해보아야할 멋진 비전이 아닌가 싶어진다. 애플과 구글이 창의적인 기업으로 살아남는 이유도 남다른 비전에 있음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래리는 니콜라 테슬라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고독한 천재가 아닌 인맥, 경영자원의 필요성도 함께 고려하며 구글을 성장시켜나가고 있다. 바로 이번주에 읽었던 [졸업장 없는 부자들]이 강조한 내용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일인 중 하나인 셈이다. 부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의 유전자에는 특별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책으로 배우고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행해나가고 있으니 부럽기 그지 없다.

 

P. 88 계획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보다는 행운의 여신을 자기 편으로 만드십시오

 

라는 멋진 한 줄을 어제의 일기장에 남겨 놓으면서 구글을 움직이는 10가지 황금률은 단 하나에서부터 파생되었음을 깨닫는다. 바로 구글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심어진 스폐셜한 마인드로부터 출발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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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장 없는 부자들 - 하버드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스무 살 부자수업
마이클 엘스버그 지음, 양성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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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창시절 친구 중에 의대를 지원했지만 결국 농대를 갔던 친구는 모임에 나올 때마다 투덜댔다. 대학다니는 돈이 아깝다고. 그냥 사회에 나가서 돈이나 벌걸~하고. 하지만 그 푸념이 괜한 것임을 알았기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학교를 접고 취직했을텐데 그녀는 끝까지 공부해 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전공은 살리지 못했지만.

 

반면에 중학교 동창의 동생 중에 아주 특이한 애가 있었는데 우리가 그 집에 공부한답시고 우루루 몰려갈때마다 연년생의 그 여동생은 부업을 하고 있었다. 위로 네 명의 언니들이 수재소리를 들으며 학교를 다니는 동안 걔는 부모님의 한숨은 뒤로 하고 샤프심 넣기, 인형 눈 달기, 친구네 떡볶이 공장에서 허드렛일 하기를 하며 통장을 불려 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만날때마다 니 여동생은 요즘 무슨 부업하냐?고 묻곤 했는데, 그 여동생이 대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하다가 샵매니저가 되었다는 얘기를 끝으로 더이상 묻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중학교때부터 불려온 그 애의 통장은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려져 있었으니까.

 

물론 친구의 여동생과 비교도 안되는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이 책 속에는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평범한 길을 거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혹은 돈이 될만한 일이 눈에 보이는 길을 선택했고 그 예상이 적중해서 큰 부자가 되었다. 도중에 파산했던 사람도 있고 너무 가난해서 밥사먹을 돈이 없어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던 사람도 있다.

 

재능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인맥을 통해 성공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마케팅과 세일즈의 힘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저자 마이클 엘스버그는 강조한다. 그는 고학력자였으나 프리랜서의 삶을 기반으로 해서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그 과정 속에서 어떤 특별한 비법을 발견해냈고 자신보다 더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성공의 기술"를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물이 바로 [졸업장 없는 부자들]이다.

 

서태지가 정규 교육의 틀을 거쳤던가. 정주영 회장이 정규교육을 마쳤던가. 아니다. 모두 이들을 따라나설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꿈을 가지고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충고대로 경제적 안정을 추구한 다음 세일즈와 마케팅을 둘 다 익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과 잘 접목해 내야 한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베풂"이라고 충고한다. 돌려받기 위한 베풂이 아니라 일종의 투자를 위한 베풂으로 그 결과는 인맥과 성공으로 언젠가는 돌아온다고 한다. 그 역시 체험했던 일이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20대 후반 저자는 빈털터리였다. 하지만 더이상은 가난한 채로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돈의 흐름에 대해 공부해나갔다. 그리고 오늘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 하는데 성공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길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지만 그에 앞서 부자가 되는 일 또한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단순히 학교를 뛰쳐나온다고 해서 보장되는 미래는 없다. 남들이 가는 평범한 길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려면 큰 용기와 함께 "독기" 또한 필요함을 나는 [졸업장 없는 부자들]을 통해 깨달아가고 있다. 역시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들은 없었다. 돈이든 사람이든 인생이든 내가 원하는 만큼 얻기 위해서는 죽도록 노력하고 관리하고 공부해나가야했다. 그것을 마케팅과 인맥관리와 세일즈로 풀어서 설명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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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or 세계를 물들인 색 -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한 인간의 분투
안느 바리숑 지음, 채아인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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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식감을 높이는 색이 있고, 식감을 낮추는 색이 있다. 어떤 그림을 보고 나면 유난히 배가 고파지게 만드는 그림도 있고 유독 피로감을 안겨주는 그림도 있다. 다 색감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미술을 강의하는 언니를 통해서 작년 즈음해서 알게 되었다. 그녀가 늘어놓은 이야기들은 마치 마술과도 같아서 들으면서 색에 대한 흥미로움이 새싹처럼 돋게 만들었는데, 그 이후 따로 미술을 공부할 시간을 갖지 못했기에 호기심은 거기에서 딱 접혀버린 상태였다. [더 컬러- 세계를 물들인 색]을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을 덮은 많은 색을 우리의 눈은 다 인식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눈뜨고 장님같이 살아가고 있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눈에 보이는 색만으로도 충분하니 그만 욕심내야 되겠다 싶다. 어린시절 12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다가 24색, 36색, 48색, 126색...이렇게 점점 더 많은 색을 가지다보니 달랑 12개만으로 그릴때보다 그림은 더 풍성해지고 색을 겹쳐쓸 수 있어 미술시간은 언제나 마술시간처럼 기다려지는 수업시간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결국 전공은 하지 못한 채 다른 길로 들어섰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색감이 마음에 드는 물건은 갖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때도 알지는 못했다. 이런 색들에 예전부터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어 왔다는 것을......!

 

흰색 은 백악, 고령토, 조개나 알 껍데기 등에서 얻어지는 색으로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에서는 신성한 색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여신들의 몸에 걸치는 옷들도 다 흰색이었으며 이슬람, 가톨릭, 불교, 종교를 막론하고 신성시 여기는 색이어서 순례자의 옷까지도 흰색이었지만 수의나 상복에 사용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죽음을 함께 하는 색이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뉴기니 이아트물족은 성인식을 치를때 흰색을 즐겨사용하는데 통과의례용이라고 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빨간색 은 성적으로 성숙된 색이라 동화 백설공주에서는 순수의 흰색에 빨간 피가 떨어지는 것의 의미도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어린 시절 무릎이 까지거나 팔꿈치가 까지면 할머니들이 의례 발라주곤했던 빨간 약의 레드는 보호를 전투의 색으로 쓰일때는 피를 상징하며 그로 인해 빨강은 위험과 죽음을 나타내는 색으로도 두루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흰색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색은 빨간색말고도 검정색 이 있는데 식물탄, 그을음,유럽밤나무,진흙 등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색이었던 검정은 죽음,금욕,저승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힌두교의 최고신 비슈누가 아나율로 현신할땐 검은색으로 나타나 무섭게 인간들을 내려다보았고 진시황은 주왕조의 붉은 색을 걷고 자신의 검은색을 문장으로 삼았단다. 사실 블랙이라고 하면 프랑스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샤넬을 대표하는 색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검정색이 상징하는 것은 심플하다는 의미 말고도 참 많았다는 것을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아는만큼 이해하게 되나보다. 특히 관심도 없었던 코란의 검은 쿠픽체를 보면서 꼭 뱀이 구불거리는 것 같은 그 서체가 묘하게 아름답게 느껴져 얼른 친구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아마 확인해보고 그 아룸다움에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앞의 색들과 달리 어렵게 얻어진 색들도 있다. 파란색, 보라색, 녹색은 희귀한 색들로 구하기 쉽지 않아 사용도 조금씩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물감이든, 크레파스든, 색연필이든 간에 풍족한 현대의 우리들에겐 다소 어려운 일이지만 셋 중 가장 없어서 못썼던 색인 녹색 은 녹토, 공작석, 녹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색이었으며 성장, 부활, 풍요, 좋은 꿈의 상징이자 이슬람교의 상징의 긍정적인 의미가 많이 부여된 색이어서 그 희소성에 당대에는 많은 안타까움으로 발을 동동 굴렀으리라 짐작이 된다. 작년 한 해 질리도록 보았던 얀 반에이크의 [아를놀피니 부부의 초상]에서 녹청이 치마 가득 사용되어서 희귀한 색인지 미처 몰랐으니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들도 참 많은 것 같다.

 

보라색 역시 얻기 힘든 색이긴 마찬가지였는데 자주색과 혼동되던 색으로 보여진 작품 중에선 이집트 콥트 교도의 미라를 감싼 태피스트리의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듯한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유머가 섞여져 있는 듯 하여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과거 파란색 을 만드는 일은 정교한 일이라 여성에게 그 임무가 맡겨졌는데 얻기 어려워 조금씩만 사용되거나 신성시한 까닭에 조심히 다루었던 색이었다. 하지만 양면적 의미도 부여되어 "공포의 색"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는데 게르만 족이 전투시 머리카락부터 말끝까지 스머프처럼 파랗게 물들인데다 그들의 눈동자색까지 푸른 눈이어서 적국의 전사들에게는 파란색은 곧 공포로 각인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아시아에서는 파란색에 마력,죽음,애도의 뜻을 부여하기도 했고 인도에서는 거부의 의미로 이 색이 사용되어왔다.

 

마지막으로 황토, 강황, 목서초에서 얻어지는 노란색 은 아시아에서는 행복과 신, 권력을 의미했고 불교나 폴리네시아의 부족사회에서는 성스러움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루벤스의 극찬을 받았던 나폴리 노랑과 달리 미라노랑이라 불리는 색은 아마천 붕대와 미라의 피부를 갈아만든 색이라고 하니 노란색을 마냥 순수하게 좋아할 수만을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미라 노랑은 끔찍하게 여겨졌다.

 

사실 이 책에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색은 빠져있다. 단지 7가지 대표색에 대해서만 그 색이 어떻게 얻어져왔고 무엇이 원료가 되었으며 어떤 작품들 속에서 사용되어 왔는지 밝혀두고 있다. 하지만 이 7가지만 알고 있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그림을 감상할때나 일상생활에서 어떤 식으로든 색을 대할때 어제와 달리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병실의 색은 어디를 둘러보나 흰색이다, 영화제의 카펫은 언제나 빨간색이며 수묵화는 먹으로 검게 그려진다. 쉽게 변하지 않을 이 색들이 대표하는 의미들을 잘 알게 된 지금, 색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참으로 재미난 스토리텔링을 가진 자연의 일부라 생각되어졌다.

 

 

살펴보면, 우리는 참 재미난 세상, 재미난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그것에 감사하며 며칠동안 누워 읽은 책 한 권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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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양장) -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4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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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채널을 돌리다가 강의가 있으면 반드시 멈추는데 강사에 따라 채널이 1분만에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에이, 좀 더 일찍 틀어볼껄. 언제부터 시작한 거야?"라는 아쉬움을 갖고 남은 시간동안 시청할 경우도 있다.

 

바로 얼마전의 경우에도 그랬다. [23살 맨땅에 헤딩하기]를 읽고나서부터 그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으며 독설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케이블 TV의 <스타 특강쇼>를 통해서.

 

그녀의 독설은 적절했다. 한마디,한마디가 폐부를 찌르며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고 그 어떤 명강사의 칭찬보다 더 획기적이며 효율적인 충고들로 가득했다. 총 5가지 에피소드를 골라 채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알차게 메우며 진행한 특강이었는데 처음부터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찾아볼만큼 매력적인 강의였다.

 

만약 공자가 살아있다면.....나는 그도 그 강의의 패널로 그날 그자리에 앉아 있었을 거라고 장담한다. 현자인 공자 역시 오늘날 우리의 인재들이 그 어느 곳에도 들어갈 곳이 없는 것처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던 인물이 공자였기 때문이다. 그 역시 이 시대의 말로 표현하자면 고학력 백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 드넓은 중국 대륙을 돌고 돌아 제후들을 직접 만나며 면접을 보는 적극성을 띄였고 일터의 환경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따라 자신도 같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후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자 후학을 양성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어록을 후대에 남기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옆나라 조선으로 전해져 조선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유수연 강사가 강조했던 것처럼 방안에서 검색으로 없는 것을 찾기보다는 경험하며 발로 뛰는 적극성을 보였던 인물이 바로 공자였다. 그랬기 때문에 비록 자신의 뜻을 펼칠 환경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의 종장이자 춘추 전국 시대 대표 사상가인 공자는 이렇게 청년 취업과 실업대란이라는 현업과 맞물려 쉽게 다가와 주었다. 이 뛰어난 인재를 그 드넓은 대륙의 많은 나라 제후들 중 아무도 등용하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실력이 모자란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남긴 말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장, 한장 넘기면서 조선왕조가 숭산했던 유교의 바이블 [논어]가 총 20편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책이 개인의 저작을 뛰어넘은 고전이라는 말에도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공자의 어록집이자 사후 그 제자들이 편집한 담화집을 이토록 간결하게 읽어볼 수 있기에 그 옛날로 돌아가 공자에게 직접 듣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마치 중학교 한문시간으로 돌아가 그 시절 한문 선생님이 칠판에 필기하고 그 뜻을 밑에 달아놓은 채 엮인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셨듯이 그때를 상상하며 나는 한장, 한장을 읽어나갔다. 물론 영어공부를 하듯 처음에는 훑어보기부터 시작했다. 꽤 두꺼운 책이기에 짧은 시간에 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곤 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애벌 읽기를 끝냈고 다음날부터 정독을 위해 메모를 위한 포스트 잇을 책 앞에 끼워두고 재독하고 있다. 결코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지식이 아니라 현문을 내것화 하는 일인데 어찌 시간을 넉넉하게 내어놓지 않겠는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p.83 정말로 인에 뜻을 두고 있으면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올 시간에 나는 미드 한편을 틀어놓고 있었다. 최근에 보기 시작한 [크리미널 마인드]가 할 시간이라 잠시 책읽기를 멈추었는데 하필이면 이 문장을 읽고난 후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는 내내 저 범인이 논어를 읽었다면 인에 뜻을 두고 나쁜 짓을 멈출 수 있었을까. 아니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돌고돌아 스토리 라인을 쫓기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공자의 어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친구와 잠시 통화를 했는데, 전화를 끊고 다음에 눈에 들어온 문장이 바로

 

p.90 덕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라는 문장이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는 인물은 아니었는지 통화를 마친 친구로 인해 나는 이 문장 속 덕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의 멋진 이웃이자 가족같은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고 힘들지 않고 언제나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스타특강에서처럼 민폐가 아닌 인맥으로 곁에 있기 위해 2012년은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마음 먹고 있다.

 

사람이 뜻을 품으면 그 뜻을 펼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내야한다. 그래야 그 뜻을 펼쳐 세상에 나아가고 사람을 얻어낼 수 있다. 결국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명강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에 관한 것이기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겼으므로. 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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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문화 이야기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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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세계화, "글로벌한 인재양성"을 외치멶서도 대한민국은 그 이면에 이중적인 잣대를 대고 있다. 마치 양면이 다른 아수라 백작같은 얼굴로-.

 

십수년전 새내기가 되어 선배들을 따라 동아리 농활 취재차 동행했는데 그때도 우리네 농촌엔 타국에서 시집온 "외국 며느리"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했으나 그네들이 마을 사람들과 섞여 음식을 하고 노래를 하고 함께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거리낌없이 함께 하다 돌아왔던 시간이 떠올려졌다. [다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를 읽는 순간.

 

이제 그들이 이땅에서 낳아기른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점에 이르렀는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적이 "한국"인 그 아이들이 미처 상상치도 못한 상처로 이 땅을 하나, 둘 떠나고 있다. 떠나지 못한 이들은 상처를 떠안으며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요. 여기서 태어나도 국적조차 갖지 못하는 아이들도 태반이란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인 경우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함께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 법의 현실이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 어떤 혜택도 기대할 수 없는 그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서 있었다.

 

당연하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국민의 한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경제니 체감현실이니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네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인종차별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일민족의 장점만을 우리것으로 할 수는 없을까. 단일민족.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국민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생김새 상관없이 "똘똘 뭉쳐" 서 "우리"가 되는 것. 그것을 장점화한다면 글로벌화는 대한민국내에서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읽다보니 약간씩 눈에 눈물이 맺힐 떄가 있었는데, 아이들의 멍든 동심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 때였다. 우리에겐 당연한 것들이 그들에겐 간절한 것들이었다니, 이땅의 국민으로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할지 곰곰히 고민하게 만든다.

 

이들을 위한 좋은 대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한국을 알리는 일은 돈을 들여 해외마케팅을 하기 이전에 자라나는 새싹들의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할 제도적 장치마련은 어려운 일인 것일까. "우리"라는 테두리가 좀 더 넓고 관용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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