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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편지 ㅣ 바벨의 도서관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김상훈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여곡성]과 [검은 고양이]는 공포의 처음과 끝이었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귀를 틀어막으면서도 가끔 손가락에 힘을 빼면서 들으며 시청했던 (?) 여곡성과는 달리 검은 고양이는 눈을 가리고 책을 볼 수 없어 최대한 상상하지 않고 읽으려 애썼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검은 고양이]가 무섭다. 고양이를 기르면서도 포우의 작품 속 고양이는 내가 아는 고양이와 다른 것 같아 무섭다. 마치 굵은 주름이 많은 심각한 얼굴의 찰리 채플린처럼 생긴 에드거 앨런 포우는 불행한 삶의 주인공이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삶 속에서 아름다운 동화를 썼던 안데르센과 달리 포우는 불운한 예술가의 전형처럼 술을 벗삼아 살면서 공포소설들을 써나갔다. 단편소설 형식의 추리소설계의 대가인 포우. 광기로 얼룩진 그의 예술혼은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어 나이 불문하고 언제 읽어도 지하실에서 읽는 것 마냥 뒷골이 오싹해지고 만다.
그 중 [도둑 맞은 편지]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읽을거리였는데, 마지 홈즈와 왓슨의 대화를 듣고 있는 착각이 일만큼 공포보다는 추리와 통찰이 포커스가 맞춰진 소설이었다.
1800년대 파리, 생제르맹 교외 뒤노거리 33번지 4층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찾아온 이는 파리 경찰국장 G. 그는 용렬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지만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면도 있는 있는 인물이라 "나"와 집주인 "오귀스트 뒤팽"은 그를 즐겁게 맞았다.
G의 방문 목적은 어마어마한 포상금이 걸려 있는 어떤 일 때문이었는데,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머리를 빌리고자 함이었다. 용렬한 작자는 왕비로 추정되는 왕실의 여인의 비밀편지를 대담하게 훔쳐낸 D장관으로부터 문제의 편지를 회수해야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강도로 위장해 몸수색도 하고 철저하게 그가 머무는 곳을 비밀수색해도 나타나지 않는 편지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편지를 훔친 사건도 이미 발생했고 범인도 밝혀진 채 시작되었지만 사건을 쫓아가는 독자의 재미는 여전했다. 보물찾기하듯 논리적으로 추리해 들어가지만 우리는 뒤팽처럼 한 큐에 맞힐 수는 없었다.
홈즈의 계보를 잇는 탐정 뒤팽은 두번 째 찾아온 G에게서 수표를 건네 받은 뒤 편지를 전한다.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어떤 경로로 뒤팽이 편지를 훔쳐냈는지 설명되어지고 마치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BBC의 [셜록]을 보듯 그려지는 추리과정은 재미의 탄력을 받아 끝까지 단숨에 읽게 만든다.
소설가 이면서 시인인 동시에 탐정소설의 창시자인 포우는 술과 가난과 고난을 등에지고 살다 40세에 객사한 작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밝은 쪽 보다는 어두운 색채가 짙다. 그 스스로도 별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았던 것 같지 않았다. 군중 속 고독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는 [군중속의 사람]이나, 김주원처럼 갇힌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함정과 진자],그 외 [밸더머 사례의 진상],[병속에서 나온 수기] 등등도 그다지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이다.
오츠이치가 전달하는 끔찍하고 잔인한 공포보다는 다 읽고 난 뒤의 오싹함이 남아있는 포우의 작품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지는 까닭은 역시 잔류현상 때문인 듯 싶다. 어쩌면 작품 속 모든 주인공 들은 포우 자신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외롭고 무섭고 쓸쓸했던, 버림 받았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도 언제나 사람들이 곁을 떠나버려 외로웠던 작가 자신.
작품을 읽으면서 어느 때보다 작가가 안쓰럽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