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겨울 여행
박정배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은 이렇게 시작된다. 눈이 안개처럼 몰아쳐 내리는 책의 겉표지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올려진 것은 이 단 한문장이었다. 설국. 겨울의 일본은 그 자체가 설국처럼 느껴진다. 작품 때문이 아니라 눈때문에.

 

왠만해서는 눈을 볼 수 없는 지역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눈이 내려 쌓이는 것을 본 적이 얼마 되지 않는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추위를 싫어하는 성격이나 추위에 잘 견디지 못하는 체질인 내겐 안성맞춤인 지역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눈쌓인 정경을 보게 되면 부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부러움을 한껏 담아 [일본.겨울.여행]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료칸이 있고 눈꽃 속에 촛불을 켜 아름다운 밤풍경을 만들어내는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가 있고, 눈에 묻힌 거리, 눈쌓인 층층의 계단, 스위스처럼 펼쳐지는 눈덮인 산악지대가 있는 일본의 겨울 풍경. 줄곳 도시로 각인되던 모습들이 교체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섬이지만 땅같고 밉다가 곱다가 하는 우리의 이웃나라 일본은 그동안 여러 여행책자를 통해 바라보게 만들던 세련됨을 벗어버리고 친근감과 함께 옆으로 성큼 다가앉았다.

 

"노인의 얼굴을 한 소년"장인이 만든 고케시 인형. 그 똑같아 보이는 얼굴 안에 전통이 있고, 장인 정신이 스며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람이 아닌 자연 환경을 통해서도 장인정신을 엿보게 만들고 있는데, 각종 마을의 눈꽃축제가 그러했다. 계속되어오는 그 축제는 마을마다의 특색이 있어,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이 가득한 어느 마을의 축제나 눈 위에 알알이 보석처럼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를 박아 아름다움에 취하게 만든 눈축제는 많은 볼거리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게 만든다. 추위를 싫어하는 나조차 구경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솜씨들이었다.

 

 

20대 감성에 젖어 보았던 [러브레터]나 얼마전 다시 읽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한류 열풍에 한몫을 하고 있는 [아이리스],[설국]의 무대인 곳들이 소개되면서 겨울 밤을 좀 더 촉촉하게 젖게 만드는 책은 마치 눈이 만든 마법을 뿌려대는 것만 같다. 읽는 내내 추위를 잊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어보는 어린아이마냥 신나서 구경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비와 지진을 피해 눈과 만날 수 있는 다가오는 새로운 겨울에는 어쩌면 일본에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홀딱 반해버렸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