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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섬 ㅣ 밀리언셀러 클럽 119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로스트]는 어느날 무인도에 불시착하게 된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드러내며 죽은 자가 살아돌아오고, 장애다리가 건강한 다리로 고쳐지는 섬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도쿄섬]도 비슷하리라 기대했다. 읽어보니 절반은 기대정도이며, 절반은 기대를 빗나갔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있다보니 그것에서부터 자유로울 시간이 없는 일본사람들이 그들의 가식을 벗어던지며 때로는 교활하게, 때로는 음흉하게, 때로는 바보스럽게 섞여 살아가는 곳이 도쿄섬이다. 애초 기요코와 다카시 부부가 표류해 온 섬에 3달 뒤, 요나구지마 섬으로 향하던 23명의 젊은이들이 더 표류해 들어오고 곧이어 중국인 무리까지 더해져 총 32인의 표류인구가 살아가게 된 섬 도쿄섬.
거주지에 따라 오쿄, 오다이바, 도카이무라, 홍콩등으로 터전을 나누어 살아가는 그들 중 홍일점은 기요코 하나였고 그래서 나이 막론하고 기요코는 46세라는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선택권이 주어진다. 법적 부부였던 다카시가 의문의 사고사로 죽고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가스카베 역시 의문사한 가운데 19명 중 다시 남편 뽑기에 돌입한 기요코는 가장 어리숙하고 착해 보이던 GM을 남편으로 선택했다. 그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척 하고 있는 남자였는데, 순진한 모습 뒤에 철두철미하고 계획이며 그룹을 이끌어갈 리더적 성향을 지닌 남자였다.
우왕좌왕하던 일본인 무리들과 달리 처음부터 "양"이라는 지도자의 지휘아래 무사태평하게 지내던 중국인 무리의 탈출 시도에 혹한 나머지 남편과 동지들을 버린 채 함께나선 기요코가 실패를 맛보고 다시 섬으로 돌아왔을 때엔 일본 그룹 역시 예전 그들의 모습들이 아니었다. 기억을 되찾은 GM을 중심으로 뭉친 일본인들은 서바이벌 본능을 되찾고 표류 5년째인 섬에서 무언가 다른 준비를 계획중이었다.
양의 아이인지 GM의 아이인지 모를 쌍둥이를 출산한 기요코는 결국 도쿄섬을 탈출하지만 마지막에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뉘어 진다. 세월이 흘러, 10살이 넘게 자란 쌍둥이들의 입을 통해 탈출한 사람들의 거짓말과 나겨진 사람들의 거짓말을 들으면 어즈 쪽이든 절반만의 진실이 포함된 훗날의 얘기 속에서 우리가 건져내야할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만들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 식도 아니었고 로스트 식의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도쿄섬은 여자 하나에 남자 여럿이라는 환경 속에서, 탈출본능과 적응본능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의 벗겨진 진심을 엿보게 만든다. 추악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장 리얼한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게 만드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달까. 아무튼 끝까지 읽어도 두 개의 결과 앞에서 어느 쪽도 "다행이다"라는 안도를 내쉴 수 없게 만드는 묘한 결말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