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의 제국
김재석 지음 / 문학수첩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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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1억원 당선작은 2작품이었다.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라는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던 두 권 중 [도화촌 기행]을 먼저 읽었는데 판타지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환상문학 그 자체를 심사했구나 싶어졌다. 같은 말인 듯 하지만 전달하는 필~이 달랐기에 해리포터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적인 판타지를 기대했던 내겐 약간 기대와 어긋난 작품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게 된 [풀잎의 제국]은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소설이었는데, 코드의 문제이긴 했으나 내겐 후자쪽이 훨씬 쉽고 가깝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한국형 판타지. 
그간 해리포터 시리즈나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시간의 책 등을 읽어나가며 우리에게도 멋진 판타지 소재가 많이 있는데 왜 서양의 재료들에 밀리는 것일까 속상했었던 마음 앓이를 이 책 한 권이 통쾌하게 날려버렸다. 물론 [퇴마록]이라는 멋진 작품이 선재하긴 했으나 그 이후 그를 뛰어넘는듯한 혹은 구미에 맞는 작품이 없어 목마르던 참이었다. 

[풀잎의 제국]엔 다양한 맛의 과자가 가득한 종합선물세트처럼 우리 역사의 곳곳을 건드리며 뭉쳐놓았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린 중3의 소년 호야의 귓가에 언제부터인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나의 무덤으로 오라"는 이상한 부름은 고분박물관에서 백발도사를 만날 운명을 만들고, 그로인해 호야는 명부의 도서관에서 조상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간 고아로만 알았던 할아버지의 과거 행적뿐만 아니라 그 윗대 조상들을 찾아 올라가 결국 호야의 건강을 되찾아줄 전쟁을 치를 조상 셋을 골라내었다. 

그들은 각각 서기 400년 김해에서 백호가 데려온 가야의 대장장이 범종, 청룡과 함께 온 서기 747년 사람인 고구려 유민 무신, 서기 1231년엔 고려 의녀 초희는 주작과 함께 소환되었다. 조상으로서 후손의 생명과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한 전쟁에 동참한 그들의 싸움이 시작된 몸 속 판타지 세계와 호야가 병마에 시달리는 병약한 소년으로 살아야하는 현실의 세상을 넘나들면서 감은사, 석굴암, 백제금동대향로, 첨성대, 거북선, 살수대첩, 혼천의 등등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지만 그 재미가 더해지는 소재들이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매혹적이고 다이나믹하게 펼쳐지면서 한국형 판타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시대와 연대표를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역사적 지식이 짧다고 해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만큼 소설은 기존에 읽어왔던 판타지에 대한 생각들을 날려버리게 만든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게임으로 만들어진다면 [삼국지], [ 바람의 나라 ] 등과 겨루어도 충분하다 싶을만큼의 소스들로 가득차 있다. 멀티활용이 가능한 소설처럼 보여져 더 신나게 만들었던 [풀잎의 제국]은 첫장부터 끝장까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게 만든 파워까지 겸비하고 있어 놀라웠다. 

마지막엔, 

범종               정유년 임인월 계축일 정사시 생.
무신               정유년 임인월 계축일 정사시 생.
초희정           정유년 임인월 계축일 정사시 생.
백발도사       정유년 임인월 계축일 정사시 생.
호야               정유년 임인월 계축일 정사시 생.


까지 60년을 주기로 태어난 연월일시가 같은 그들을 역법으로 풀어놓으며 원인과 결과가 같은 고리에서 풀어져 나왔음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몸을 살리기 위해 무덤의 부름을 받았던 호야는 결국 과거의 업보와 마주하고 인연의 핏줄로 닿아있던 시간의 개념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한류의 바람이 거세다. 드라마에 이어, k-pop까지.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까지 뻗칠 수 있는 저력의 스토리를 가진 우리의 콘텐츠시장이 세계를 향해 있다. 그 속에 가장 한국적이지만 모두가 열광할 수 있는 한국형판타지가 힘찬 물살을 타고 도약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풀잎의 제국]은 그런 바램을 희망적으로 가져도 좋을 작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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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 위풍당당 양준혁이 머뭇거리는 청춘에게
양준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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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그맨의 외침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변하고 있다. 1박 2일에서는 명품조연 특집이후 "대세 김정태"의 새로운 발견이 있었고 무한도전에서는 1인자 뒤, "2인자"를 강조하는 박명수가 대세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이지만 모두가 어울리는 사회 속에서 1등보다 2인자, 3인자가 많은 것이 현실인 셈이다. 하지만 1등 외의 사람들이 주목받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래서 세상은 오래살면 살수록 살만한 세상이 되나보다. 

자신 역시 인생의 명품 조연이라 자처하는 전직 야구선수가 있다. 남자들의 자격으로 우리곁에 성큼다가온 양준혁 선수다. 그는 2인자로 살아온 삶을 회고하며 "좋았노라"고 고백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없는 형편에,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는 굴욕도 겪었고 본인은 의리를 지켰지만 자신을 배신한 구단도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즐거웠다"고 추억하는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야구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어서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어도 나는 은퇴전까지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서 그를 알게 되면서 전직 야구선수였으며 꽤 유명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전직 삼성맨"이지만 혜택을 여전히 누리고 있다는 한 광고를 통해서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자세히 인식하게 된 사람 중 하나다. 

그랬기에 반대로 야구를 뺀 인간 양준혁에 더 호감을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퇴 이후 지도자의 길을 모색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그는 여유롭다. 마음만 여유롭고 사실 그는 매우 바쁘게 산다. 밀려드는 강연에, 예능 나들이에, 야구해설에, 이젠 책까지. 책을 통해 고백하는 그의 비명은 그래서 "행복한 비명"처럼 들린다. 

"한방"을 기다리지 않고 "한 발" 더 뛴 사나이의 삶은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은 진솔한 감동이 전해진다. 야구를 통해 얻은 인생의 몇가지 깨달음을 우리에게 털어놓으며 누구나 하는 실패 뒤의 다음 삶을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는 더이상 야구팬들만의 양준혁이 아닌 것이다. 32년의 야구인생 동안 하기 싫은 것을 참고 해냈던 90년대 타자는 그 당시엔 가장 빠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현재엔 가장 멀리 와 있는 사람이 되어 우리네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고,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강한 자로 기억될 사람이다. 

그리하여, 

"버텨라, 살아남아라. 그래야 강해질 기회를 얻는다"

라는 그의 충고는 직언이자 리얼토크로 우리의 가슴에 홈런된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요~"라는 구수한 말투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고 "사람은 늙었다고 생각할때 늙는다"라는 멋진 말도 서슴치 않으며 누구는 외워서 하는 말을 그는 경험에서 우러나 해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놓는다. 

그는 더이상 2인자가 아니었다. 제 2의 양준혁은 있을지 몰라도 우리 앞에 양준혁은 하나며, 첫번째다. 최고의 대우를 받지 못해도 팀을 위하는 길을 택했던 그가 이젠 전혀 다른 멤버 속에서 팀웍을 다지며 주말마다 나타난다. 심방제동을 앓아 운동을 그만두라는 의사의 권고를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인생이 얼마나 변했을지 그 열여섯의 소년은 감히 상상이나 해봤을까. 

12월 31일과 이듬해 1월 1일이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라는 한 문장으로 공자, 맹자 같은 순간의 깨달음에 도달하게 만든 그의 촌철살인을 가슴에 새기며, 이런 사람이 함께 사회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새삼 알아가고 있다. 살아있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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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아이
오틸리 바이 지음, 진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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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 [룸]은 어린 여자를 가두어놓고 성폭행하며 종국엔 아이까지 낳아 기르게 만든 파렴치한에게서 낳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를 옷장에 가둬 키우는 여자와 그 아들에 관한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소설이었다. 두 가지 충격요소가 결합해서 웃을수도 울 수도 없는 소설을 완성해냈는데, 소설에서 아이를 가두는 행위는 "보호"가 목적이었다면 또 다른 문제작 [벽장 속의 아이]에서 아이를 가두는 행위는 "학대"를 목적으로 행해진다. 

새 남자에 미친 엄마가 제 아들이 손찌검 당하고 굶겨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물론 남자가 떠날까봐 아이를 벽장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워버리는 페이지에선 손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남자가 뭐라고 제 뱃속에서 열달동안이나 소중이 담았다 세상에 꺼내놓은 착한 아이를 세상과 단절시켜버린 것일까. 그들은 다섯살난 아이를 벽장에 가둬둔채 레스토랑에 가고 소리내어 웃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만찬을 즐겼다. 인간이하의 상식을 가진 그들에게 부모라는 이름은 사치였다. 

또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아이에게 소리를 내지도 못하게 윽박지르고 그나마 잊어먹기 일쑤인 음식을 가끔 넣어주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종용하며 아이가 사랑받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인 할머니의 집으로 보내는 것도 원천봉쇄했다. 남들이 욕할까봐.  아이가 그저 벽장에서 조용히 죽어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이렇게 보호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한 채 서시 파리하게 말라가다 걷는 것조차 제 의지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 가엾은 아이의 이름은 "장"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트위스트]만큼이나 딱한 아이 장은 그렇게 벽장 속에 갇힌 채 9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컴컴한 벽장 속에 갇힌 9개월 동안 아이를 공포스럽게 한 것은 혼자라는 사실과 벽장 속에 갇힌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새아빠 폴과 친엄마 데니스 사이에 딸이 생겼지만 그들은 "장"에 대한 학대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할머니와 이웃사람들의 끊임없는 수사와 제보로 출동한 경찰과 아동복지국에 의해 장은 9개월만에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신들의 자식이 생겼지만 부모의 자격을 이미 예전에 박탈당한 짐승같은 부부는 장이 구해지는 순간까지도 뉘우치지 못하고 사람들이 난리를 떨어댄다고 소리소리 지른다. 이 말도 안되는 소설이 실화라는 사실에 나는 잠시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전직 기자출신인 작가 오틸리 바이가 1982년 프랑스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실화 보도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 이유는 다시는 지구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러하듯 아동학대 역시 너무나 쉽게 잊혀진다. 

양심의 시선보다 남의 시선을 더 의식해서 아이를 꼭꼭 숨겨두고 학대했던 부부의 이야기가 소설로라도 남아 읽는 순간만큼이라도 독자들의 마음속에 다시 불을 지폈을면 하는 마음이 강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자격증이나 수료증처럼 부모의 자격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었다면 세상의 버려지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조금쯤은 줄어들 수 있었을까. 하늘이 하는 일에 대해 인간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소재의 소설을 대할때마다 마음 정중간엔 구멍이 뻥 뚫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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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공부
김병목 지음, 김지원 그림 / 희목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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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다보니 혹시나 무지한 나로 인해 불편함을 겪게 될까봐 참 많은 책들을 보고 공부해 나가고 있다. 한 일년 전쯤 시작된 고양이 공부는 시중에 나온 책들을 다 훑고 또 새 책이 나온다 싶으면 부지런히 서점으로 달려가게 만든 것은 물론 가장 좋아하는 이용한 작가시리즈와 [이기적 고양이] 외에도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고양이가 원하는 고양이 기르기]만큼이나 좋은 책을 결국 또 한 권 찾아내게 만들었다. 

제목조차 [고양이 공부]인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어라?" 라는 감탄사가 제일 먼저 터져나왔다. 왜냐하면 책을 집필한 수의사가 기르는 고순이, 삼순이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낯익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구에서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삼척에서 공중방역수의사로 근무했다는 그의 이력 또한 낯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어느 카페에선가 고양이들의 일상을 담은 글들을 올리는 것을 몇 건 본 일이 있었고 그가 키우는 고양이 중 삼순이가 내 고양이와 같은 종인 샴이라 눈여겨 봤던 기억이 남아 그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이렇듯 가득한 반가움을 갖고 펼친 책은 그간 내가 구해놓은 고양이 서적 중 단연 최고의 도움서적이었고 내용이 너무나 알차, 처음 기르는 사람은 물론 고양이를 몇마리 키우고 있는 지인들에게조차 선물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고양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단계에서부터 영양학, 사료 급여법, 아이 고양이 기르기, 함께 생활할때 신경써줘야 하는 것들은 다른 책에서도 이미 본 바 있지만 더 꼼꼼하게 체크되어 있었고 고양이가 느끼는 세사을 몸의 언어와 목소리로 분류해 이해하도록 돕고 그들의 걸음걸이와 꼬리를 마는 방법에서 읽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재미나게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의 가족계획까지 고려해야만 할 집사에게 팁을 주는가 하면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쉽게 정리해 알아보기 쉽게 돕고 여러 질병들이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때 상세하면서도 집사들의 시각에서 정리되어 있어 가정의학서처럼 그때그때 뒤적거려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무늬만으로 몇종류 갖춘 성의없던 책과는 달리 자신이 고양이와 함께하는 집사여서인지 꽤나 많은 증상들과 대처법들이 실려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고양이는 항상 사춘기 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차 한 발짝 다가왔다가도 
이내 수줍어 시선을 돌리는 부끄럼쟁이입니다. 

첫장에 실린 이 말이 좋아 일년넘게 다닌 동물병원을 접고 저자가 부원장으로 근무한다는 병원을 방문해볼 예정이다. 고양이를 기르고 있어 더 마음을 이해해주는 수의사, 같은 처지여서 더 귀기울여주고 증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 내 고양이를 사랑과 정성으로 돌봐줄 의사가 있다면 거리가 먼들 무슨 상관일까. 다행스러운 일은 찾아보니 소개된 병원이 참 가까운 동네였지만.

그곳에 가면 책에 실린 똘망똘망한 삼순이의 눈망울도 통실통실한 고순이의 엉덩이도 구경할 수 있을까. 올 여름대비 예방접종과 기타 건강관리는 새로 옮긴 병원에서 새 의료수첩을 받으며 시작해야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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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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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초, 첫 시작을 [살인자의 편지]로 시작했다. 살인이 추억의 대상이 되거나 고백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로 그런 제목들이 붙여진 까닭은 아마 아이러니를 부각시켜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역시 그랬다. 손이 말굽으로 변하는 장애극복 소설이 아니라 한 인간의 폭력성을 비유적으로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장치로 손바닥을 뚫고 나오는 말굽이 사용된다.

바닥이나 디뎌야 할 말굽이 사람을 치고 생명을 앗는다. 그 자체로도 이미 폭력이다. 그 대상이 인간이기를 이미 포기한 사람들일지라도 폭력에 대한 응징이 폭력으로 되갚아진다는 계산 또한 또 다른 폭력이기에 ㅅ설은 기이한 살인에 관한 긴 보고서가 된다.

[외등] 이후 줄곧 놓치지 않고 읽게 된 저자의 소설들은 선이 굵으면서도 감정을 저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는 매력을 담고 있었다. 39년이나 작가로 살아온 그는 39번재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25년한 선생노릇도 내려놓았고 막내 아들의 결혼으로 아버지 노릇까지 내려놓았으니 이제 작가노릇만 남았다며 겸손스런 서문을 덧붙였다.

살아있는 한 역할의 끝이 어디있겠느냐 만은 그만큼 더 원숙미를 갖추고 집중하며 작품을 써 냈다는 소심한 자랑이 아니었을까. 어느 해 헐리웃 노감독이 내뱉은 말처럼 우리는 아직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고백하고 있는 살인의 기록만 뒤적여 보아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허가 삶터에서 개장수 아비와 살아가던 "개백정의 아들"이 이사장 무리의 모함으로 여린의 집 방화범이 되고 옥살이를 하고 나올 동안 정적들은 그 땅에 샹그리라를 건축해 놓았다. 운악산의 샹그리라는 15년쯤 전에 지어진 집으로 원룸 14칸이 들어차 있었고 명안진종의 창시자가 된 이사장은 종교적 지도자의 탈을 쓰고 육욕을 채우기 급급한 인간이었으며 그 곁의 백주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이었다. 단식원으로 알려진 명안진사는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궁전이 되고 육림의 장이 되고 소리없는 폭력의 삶터로 변모되어 있었다. 화상으로 흉측해진 얼굴의 사내가 샹그리라로 돌아왔을 때, 그 안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여린이 맹인 안마사가 되어 정적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을 읽다보면 인간의 추악함의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여서 같은 붉은 피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부끄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소설 속에서 잔혹함을 대할때마다 심장 저 어딘가가 황폐해져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그들의 폭력과 몰락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게 만든다. 그들의 끝이 어디로 닿아 있는지 확인하게 만든다. 그래야만 시원해질 것만 같아서.

문학의 기능 중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작품도 있지만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처럼 적어도 이렇게는 살지 말아라는 교훈을 남겨 각성하게 만드는 작품도 있다. 그 기능이나 효능이 어찌 되었든 간에 읽어본 바에 의하면 소설은 그 쓸모가 하나도 헛된 것이 없었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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