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풍수 3 - 땅의 마음 나남창작선 35
김종록 지음 / 나남출판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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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상에 올리는 밤은 깍는것이 아니고 친다고 표현한다. 신을 불러들이는 음목이며 생명력 때문에 그리 불리는데, 칼날을 밖으로 향하게 잡고 껍질을 쳐서 날리기 때문이란다. 

제사를 지낼때 한번도 밤치는 것을 직접 본 일이 없어선지 이 묘사는 생경했다. 풍수에 관심을 두게 되면 이렇듯 만사가 관찰로 이어지나 보다. 생각보다 예민한 학문이라는 깨달음에 맞닿기 시작했다. 그저 공부한다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득량은 지인을 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야 했다. 그 슬픔이 묻어나는 그들의 마지막 방에 득량은 사람이 명당이라고 했다. 그런가. 사람이 명당이라니. 이토록 사랑하면서도 운명이 아닌 이들의 사연은 슬프지만 애초에 이 소설은 인연이나 멜로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었기에 사랑이야기는 빨리 지워져 버린다. 

3권은 태을과 득량이 명당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득량과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득량을 찾아헤매던 지인을 뒤고하고 이제 득량은 혼례를 목전에 두고 있다. 혼례직전까지 태을과 함께 돌아다니며 음기가 강해 색마가 여인을 덮친 동네와 서애 유성룡을 낳은 안동터, 천불이라 칭송받는 스님이 사는 절터 등등 음양의 조화 속에서 살고 있는 땅의 기운에 대해 득량도 이제 어느 정도 터득한 모양이었다.

명당만 잡는 것이 풍수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높아만 가는 아파트, 빌트인이 잘된 집, 높은 땅값 등등을 배제하고 우리가 정말 살아야되는 터는 어디인지 책은 고민하게 만든다. 

어디서 살 것인가. 땅의 마음을 읽게 만드는 3권 [풍수]의 읽기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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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2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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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 서울. 
터미네이터가 보여준 미래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그 시기에 인간은 기계로 몸을 튜닝하기 시작했다. 유행처럼, 명품을 두르는 것처럼 기계몸을 튜닝하는데도 빈부의 격차가 벌어졌고 그 틈새로 그들을 거부하는 자연인 희망연대가 생겨났다. 

자연인 상태로 주어진 삶을 살다가기를 택한 이들의 죽음조차 "자연사"가 아니라 "의지적 죽음"으로 분류되는 사회. 아바타나 아이로봇, 터미네이터, 혹은 미래를 그리고 있는 다른 어떤 영화들도  우리에게 희망적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 스스로가 발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가 내다보는 미래는 언제나 참혹했다. 망하거나 망쳐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2049년의 미래 역시 그랬다. 고도발전을 이룬 문명화 된 도시 이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함께 성장하기 마련이다. 인간을 대신해 대리전을 뛰고 있는 대스 매치 용 로봇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있으면서도 반대로 인간의 뇌만을 훔쳐가는 연쇄살인범을 단번에 잡아낼 수 없다. 

인간의 뇌만 따로 떼어 심어 불사의 몸을 만들기를 원했던 연구가 비밀리에 자행되고 있었다. 이를 새로운 미래로 보는 쪽과 종말로 보는 쪽의 양갈래 시선이 얽히는 가운데 비극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사의 몸.  아마 진시황이 살아있다면 제1의 마루타가 되어도 좋다고 허락했을만큼 그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이겠으나 살아있는 뇌만으로 인간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결국 기계문명의 발달이 부른 참혹한 살인사건이 법정 도마에 올랐다. 민선과 석범이 대치한 가운데    인간의 뇌에 있다는 "증오 회로"는 한 군데가 아니라 두군데나 된다고 했다. 인슐라와 피각. 결국 그 두 군데가 문제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과학이나 의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복수를 불러 일으킨 파장일까.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까지 과학의 영역은 자연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인간이 짐작해보는 상상력 속의 미래가 참혹한 까닭은 우리 스스로가 자연을 거스르는 미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는 두 종류의 로봇이 있다고 했다. 인간을 위해 일하는 로봇과 인간을 대신해 일하는 로봇. 아직 로봇은 인간에게 "일하는 기계"라고 정의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만든 그 기계는 오작동을 일으켜 인간을 해치려 한다. 작가가 시작한 출발점은 어느 영화나 원작 소설속에서도 봄직한 소재거리이긴 하다. 하지만 역시 어떻게 풀어가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의 소설이 완성되곤하는데 [눈먼 시계공]은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는 본 적 없던 또 다른 진화 소설임이 분명했다. 


k1을 방불케하는 로봇 배틀이나 과학적 고증등이 어우러져 아주 똑똑한 미래 소설 한 편이 완성된 듯 하다. 김탁환,정재승. 그들이 뭉치지 않았으면 나오지 못했을 소설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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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와 파수꾼의 탑 치우 판타지 시리즈 2
이준일 지음 / 문학수첩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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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라는 이름은 아주 용감한 이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어디에서 치우라는 이름이 들릴때면 나는 아주 우람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곰처럼 커다란 사람을. 

그러나 [치우와 파수꾼의 탑]에 나오는 치우는 열 다섯살이다. 첫번째 이야기를 읽지 못했지만 해리포터나 그 밖의 다른 판타지 서적들이 그러하듯 권별로 읽어도 재미는 누락되거나 파괴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1억원 고료 수상작에 걸맞는 책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애초에 가볍게 읽기 위해 골랐던 [치우와 파수꾼의 탑]은 올리비아가 치우를 찾아 서울로 오는데서부터 시작된다. 가이아 랜드를 구하고 메데스티의 음모를 저지시켰지만 죽이지는 못한 까닭에 그 사악한 마법사는 세상에 나갈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올리비아는 치우를 찾기 위해 서울로 왔다. 역삼역에서부터 그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치우를 만났지만 겉모습만 치우의 모습일뿐 그는 치우의 또 다른 영혼인 로딘이었고 로딘에 의해 몸 속에 갇혀 버린 치우는 한동안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파수꾼을 찾아헤애던 끝에 가이스가 파수꾼인 것을 알게 되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살아있음도 알게 되지만 엄마를 구할 수는 없었다. 또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힘인 후퍼와 인간의 지혜를 둔 타협을 벌인 끝에 치우는 후퍼에게 메데스티의 지혜를 주어버렸다. 

치우와 파수꾼의 탑은 끝이면서도 끝이 아닌 이야기였다. 이대로 끝내버리기엔 작가는 아직은 거두지 않은 많은 씨앗을 글밭에 뿌려둔 상태이고, 계속 시리즈물이 나오기엔 터 있는 싹의 크기가 아직 작다. 그의 말처럼 익지 않은 벼인 자신이 다시 치우 시리즈로 돌아올땐 치우가 아주 많이 성장한 상태였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어 왔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만큼 이야기 부자가 되어 왔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역으로 읽게 되었지만 이제 2권을 읽으면서 치우를 알게 되었으니 거꾸로 1권을 읽으면서 치우에게 어떤 일들이 있어왔는지 과거를 탐구해보아야겠다. 순서대로 읽는것도 재미있겠지만 때로는 거꾸로 읽으면서 추리해가는 것도 추리물을 읽는 것과 같은 재미난 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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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가는 저 구름아 1 - 초정 속의 사미인곡
박종화 지음 / 문예당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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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 박종화. 
그의 작품들 속에는 뼈가 녹아 있다. 잔뼈들이 아니라 굵은 역사의 뼈들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을때면 줄기를 찾아가며 읽게 되는데, 오랜만에 전7권 분량의 월탄의 책을 마음먹고 읽기 시작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비평가이기도 했던 거목작가가 이젠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에도 상실감이 적게 드는 까닭은 그가 남긴 묵직한 작품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드는 안타까움은 한글이 너무 우수하다보니 번역되었을때 제 맛을 다 살리지 못하여 이런 주옥같은 작품들이 국제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박경리 작가나 기타 여러 우수한 작가들을 배출해내면서도 우리 작가들이 아직 우물 밖으로 던져지지 못하고 있어  그것이 안타깝다. 

월탄의 이번 배경은 선조시대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 중 하나인 선조재위시절. 선조와 광해, 임해와 양화당 인빈 그리고 신성군이 있던 시대. 수많은 인재가 묻히고 나타나고 사라졌던 시대. 그 시대의 줏대를 월탄은 송강 정철로 세워두고 있었다. 

송강 정철. 중고교시절 우리는 그의 이름과 문학에 귀에 피딱지가 앉지 않았던가. 시험을 위해 암기했던 그의 모든 것들은 잊혀졌더라도 송강 정철의 호와 이름만큼은 익숙하리라 생각된다. 

그를 중심으로 세워 시작되는 이야기는 역시 뼈째 소화해도 좋을만큼 굵직굵직한 스토리들이 전개된다. 한국화로 치자면 잔선들이 아니라 화선지 한 장에 큼지막하게 처음 그려지는 굵은 중심선처럼 그의 작품은 그렇게 시작부터 굵게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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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하우스
정다겸 지음, 송재정 극본 / 양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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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드라마가 시작되면 1회를 시청한다. 첫 시작이 괜찮으면 2회까지도 시청하고 2회까지가 만족스러우면 종방까지 의리를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2회분까지 보고 계속 봐야겠다는 마음이 휴지통으로 버려지면 그 드라마는 머릿속에서 잊혀진다. 

채널이 많아지고 본방 사수 하다가도 지루해지면 채널이 돌아갔다가 되돌아오기 힘든 현실 속에서 드라마는 좀 더 자극적이거나 매력적으로 분초를 다투는 씬 전쟁 중이다. 그런 가운데 [커피하우스]는 2회분까지 시청했던 드라마였다. 

사실 2회분까지 시청했던 이유는 강지환이 맡고 있는 캐릭터 때문이었는데, 좋아하는 특정 배우가 나오지 않는 드라마를 시청하게 만드는 힘은 캐릭터와 대본의 힘일 것이다. 

강지환이 연기하고 있는 까다로운 남자 캐릭터는 기존에도 많이 있어왔다. 잭 니콜슨이나 양조위 역시 그들만의 까다로운 남성상을 만들어낸바 있다. 하지만 강지환의 캐릭터가 독특한 까닭은 그의 까다로움이 과잉 친절로 덮여 있다는 점이다. 즉 타인은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아주 독특하고 까다로우며 매사에 그냥 넘어감이 없는 남자. 마치 이가 썪는 물질위에 달콤함을 입혀 아이들 앞에 내어놓아 먹게 만드는 달콤한 사탕과자처럼 그는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의 별남을.

그런 남자 캐릭터가 오랜만이고 또한 매력적으로 보여져 드라마를 1,2회 시청했었다. 하지만 더 재미난 드라마가 케이블에 뜨자마자 나의 채널은 돌아가고 말았다. 드라마 보기는 끝났지만 원작은 또 어떻 문체를 가지고 있을까 싶어 서점가를 돌아다녔다. 찾고 싶은 책이 있기도 했지만 살짝 이 책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재미난 원작을 발견할 때도 있으니까. 

빙고~!! 결국 옆구리에 책을 끼고 돌아오게 된 저녁, 나는 단숨에 소설을 다 읽어버렸다. 역시 원작이 훨씬 재미있게 읽혀졌다. 마치 원작 [애자]를 읽을 때처럼 술렁술렁 쉽게 읽기는 문체하며 훨씬 더 잘 묘사되어 있는 녀석의 특이성까지. 과장되지 않아 좋고, 상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까지 웃기며 끝나버린 드라마 원작 [커피하우스]. 물론 다른 제목이어도 좋았겠지만 그 독특한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고, 소설에선 훨씬 더 배가 되어져 좋았던 승연의 툴툴거림까지 사랑스러웠다. 

만약 드라마보다 살짝 더 재미남을 찾고 있었다면 원작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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