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시계공 2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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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 서울. 
터미네이터가 보여준 미래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그 시기에 인간은 기계로 몸을 튜닝하기 시작했다. 유행처럼, 명품을 두르는 것처럼 기계몸을 튜닝하는데도 빈부의 격차가 벌어졌고 그 틈새로 그들을 거부하는 자연인 희망연대가 생겨났다. 

자연인 상태로 주어진 삶을 살다가기를 택한 이들의 죽음조차 "자연사"가 아니라 "의지적 죽음"으로 분류되는 사회. 아바타나 아이로봇, 터미네이터, 혹은 미래를 그리고 있는 다른 어떤 영화들도  우리에게 희망적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 스스로가 발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가 내다보는 미래는 언제나 참혹했다. 망하거나 망쳐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2049년의 미래 역시 그랬다. 고도발전을 이룬 문명화 된 도시 이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함께 성장하기 마련이다. 인간을 대신해 대리전을 뛰고 있는 대스 매치 용 로봇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있으면서도 반대로 인간의 뇌만을 훔쳐가는 연쇄살인범을 단번에 잡아낼 수 없다. 

인간의 뇌만 따로 떼어 심어 불사의 몸을 만들기를 원했던 연구가 비밀리에 자행되고 있었다. 이를 새로운 미래로 보는 쪽과 종말로 보는 쪽의 양갈래 시선이 얽히는 가운데 비극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사의 몸.  아마 진시황이 살아있다면 제1의 마루타가 되어도 좋다고 허락했을만큼 그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이겠으나 살아있는 뇌만으로 인간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결국 기계문명의 발달이 부른 참혹한 살인사건이 법정 도마에 올랐다. 민선과 석범이 대치한 가운데    인간의 뇌에 있다는 "증오 회로"는 한 군데가 아니라 두군데나 된다고 했다. 인슐라와 피각. 결국 그 두 군데가 문제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과학이나 의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복수를 불러 일으킨 파장일까.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까지 과학의 영역은 자연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인간이 짐작해보는 상상력 속의 미래가 참혹한 까닭은 우리 스스로가 자연을 거스르는 미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는 두 종류의 로봇이 있다고 했다. 인간을 위해 일하는 로봇과 인간을 대신해 일하는 로봇. 아직 로봇은 인간에게 "일하는 기계"라고 정의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만든 그 기계는 오작동을 일으켜 인간을 해치려 한다. 작가가 시작한 출발점은 어느 영화나 원작 소설속에서도 봄직한 소재거리이긴 하다. 하지만 역시 어떻게 풀어가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의 소설이 완성되곤하는데 [눈먼 시계공]은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는 본 적 없던 또 다른 진화 소설임이 분명했다. 


k1을 방불케하는 로봇 배틀이나 과학적 고증등이 어우러져 아주 똑똑한 미래 소설 한 편이 완성된 듯 하다. 김탁환,정재승. 그들이 뭉치지 않았으면 나오지 못했을 소설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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