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 바스커빌 가문의 개 펭귄클래식 69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남명성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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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가 221B. 주소만으로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름, 셜록.



내가 알고 있는 셜록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왓슨은 마틴 프리먼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한 영국의 드라마 셜록. 추리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나는 항상 결말을 먼저 확인한다. 그래야 안도감을 느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읽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나 소설 셜록은 단순한 추리 소설, 그 이상이다.



<분홍색 연구>에서는 셜록과 왓슨의 첫 만남이 나온다. 왓슨을 관찰하고 그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일을 했으며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이야기하는 셜록. 드라마 <셜록>의 1화에서도 이 장면이 연구실에서 나온다. 현대적으로, 그리고 원작에 충실해서. 원작 소설에서 셜록은 거만하지는 않지만 왓슨의 칭찬을 좋아하는 아이같은 모습은 베네딕트의 모습과 겹쳐진다.



추론의 과학, 이라는 이름으로 셜록이 관찰하는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주변에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이 불룩하게 나와 있고 검지와 엄지에서는 물어뜯은 흔적이 있으며 왼쪽 네 번째 손톱은 유난히 길다는 점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바스커빌 가문의 개>는 셜록과 왓슨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왓슨을 먼저 보내 조사를 시키고 그 뒤를 따르는 셜록. 셜록에게 보내는 왓슨의 보고서, 편지. 왓슨은 조수가 아니다. 왓슨은 셜록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인정하는 친구인 것이다. ‘친구’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영혼의 동반자라는 표현은 조금 간지러우니까.



베이커가 221B. 주소만으로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름,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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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제주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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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와타나베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다. 너무도 유명하고 그만큼 호불호가 있는 모양이지만, 아마도 그것은 일본 소설 특유의 어투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학생시절에 함께 했던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에서 느꼈던 일본 소설 특유의 그 말투.


야하다.


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이 책은 단순히 포르노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사 장면보다도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맥주 마시는 장면. 음식을 먹으면서 가볍게 맥주. 또 맥주.



사랑보다도 오히려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즈키의 죽음, 미도리 아버지의 죽음, 나오코의 죽음, 하쓰미의 죽음. 이 책의 대부분의 죽음은 자살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나오코의 죽음은 와타나베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지금을 잃어버릴 정도로, 지금의 장소를 찾지 못할 정도로.



나오코의 죽음이 와타나베에게 충격인 이유는 그녀를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를 기즈키에게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와타나베는 그녀의 죽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었기 때문에, 그녀가 정말로 ‘괜찮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와타나베도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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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기적인 탐욕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사랑을 헌신적이고 남을 배려하며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 사랑은 소름끼치도록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에 충실해서 너에게 이를 강요할 때
네가 나에게 맞춰주기를, 내 말을 내 기분을
내 모든 것을 기억해주면서도 동시에 내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기를



누구나 병적인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데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뿐
아프다고 이만큼, 그러니까 나를 좀 신경쓰라고 걱정하라고
술을 마시거나 잠을 못자거나 몸이 아프거나.
자해가 이해될 수 있는 나이는 지났고 이제는 도피일 뿐이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집에 데려온 아이였는데 둘은 소꿉친구이자 모든 것을 함께한 어린 연인 같은 존재. 그러나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아닌 린턴을 택해 결혼한다.
린턴과 히스클리프 사이에서 하나를 강요받던 캐서린은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고 결국은 딸을 낳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 후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에 대한 복수를 준비한다. 캐서린과 언쇼 가문, 린턴 가문에 대한 복수를. 그의 복수는 상당히 치밀하고도 끈질겨서 캐서린의 딸과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어린 캐시, 헤어턴 언쇼, 어린 린턴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히스클리프의 계획대로 어긋난 삶을 살게 된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사랑을 마냥 부정할 수도 없다. 캐서린의 무덤 앞에서 그녀의 관을 열어놓고 얼굴이 빨리 변해버려서 남편인 린턴도 몰라보게 되길 바라는 히스클리프의 모습. 캐서린의 유령을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는 단지 너무 늦게, 그리고 먼저 찾아가지 못했던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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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습니까?



가끔씩은 내 안에 있는 악을 조절하지 못할 때가 있다. 악은 드러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일 뿐, 그리고 가능하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타고 있는 버스에 누군가가 타려다가 이를 놓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내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간발의 차로 타게 되었을 때.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은데 옆에 앉은 사람이 다리를 너무 벌려서, 혹은 앞에 앉은 사람이 다리를 쭉 내밀어서 불편할 때.
시도때도 없이 울고 있는 옆집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을 때.



사람이 본능적으로 선을 타고 났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을 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또 나름대로 너무 재미없고 불쌍한 인생일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강제로 선을 선택하게 된다면?



자신의 의지로 하는 악, 강제로 행하게 되는 선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신의 피조물에 가까운 것인지.



주인공 알렉스는 미성년자인 자신의 신분을 활용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비행 청소년’이다. 물론 그 수위가 깜찍하게 넘어갈 수 있는 장난의 정도는 아니지만. 알렉스는 자신의 친구들(패거리)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상점을 털거나 지나가는 행인을 구타한다. 그야말로 폭력, 강도, 강간이 난무한다.



특이한 점은 알렉스가 음악을, 그것도 클래식을 즐긴다는 것인데 눈을 감고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감상하면서 폭력에 심취한다. 예술이 그에게는 폭력의 마무리이자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 알렉스가 감옥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고 강제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는 폭력을 상상하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진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그는 청춘이란 가버려야만 해! 라고 소리친다.



청춘이란 가버려야만 해!



시계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앞으로 전진만 할 수 있었던 시기.


그러나 그만큼 맹목적일 수가 있었던 시기는 인생에서 흔치 않다.


노인이 된 알렉스는 청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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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24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패러디로 누군가가 이 작품 후속작을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노인이 된 알렉스를 주인공으로요. ^^

방랑 2016-05-24 20:30   좋아요 1 | URL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알렉스가 평범한 삶을 꾸린 후 뭐라고 말할 지. 결말이 조금 아쉽기도 해요 세뇌가 풀린 상태에서 끝나도 괜찮았을 것 같기도.

초딩 2016-05-2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음 아 음 :-) 뭔가 신선할 것 같아서 읽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