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와타나베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다. 너무도 유명하고 그만큼 호불호가 있는 모양이지만, 아마도 그것은 일본 소설 특유의 어투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학생시절에 함께 했던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에서 느꼈던 일본 소설 특유의 그 말투.


야하다.


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이 책은 단순히 포르노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사 장면보다도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맥주 마시는 장면. 음식을 먹으면서 가볍게 맥주. 또 맥주.



사랑보다도 오히려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즈키의 죽음, 미도리 아버지의 죽음, 나오코의 죽음, 하쓰미의 죽음. 이 책의 대부분의 죽음은 자살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나오코의 죽음은 와타나베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지금을 잃어버릴 정도로, 지금의 장소를 찾지 못할 정도로.



나오코의 죽음이 와타나베에게 충격인 이유는 그녀를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를 기즈키에게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와타나베는 그녀의 죽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었기 때문에, 그녀가 정말로 ‘괜찮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와타나베도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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