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부터 봄 - 거친 삶, 맨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이들에게
노익상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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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바다가 있고, 숲이 있고, 산과 들이 있다. 변두리 풍경을 그리는 노익상의 문장은 시를 닮았으며, 곳곳에 나오는 사진들은 밑바닥 사람들의 애잔한 삶을 반영하려는 저자의 온기가 더해져 은은하고 오롯하다. 발품을 팔아서 쓴 글, 관념에 기대지 않고 체험에 바탕한 글이란 정녕 이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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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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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박범신의 "은교"는 이 소설의 오마주에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은교"의 인물들보다 더 추하고, 왜소하고, 멋없다. 그럼에도 황혼의 사랑과 노인의 회한을 그려내는 힘은 "은교"보다 깊고 그윽하다. 이 분량 짧은 소설엔 마르케스의 모든 저력이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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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2-23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틴 문학은 무조건 송병선이군요. 번역은 깔끔하신 것 같은데 이분 옛날에 보르헤스론에 대한 책 하나 썼는데 진짜 못 쓰더라고요.... ㅎㅎㅎ. 마르케스는 모두 다 기본은 하기에 믿고 읽을 수 있습니다.

수다맨 2014-02-23 16:07   좋아요 0 | URL
송병선 씨 번역은 유명하던데 평론가로서의 자질은 좀 떨어지나 보군요 ㅎㅎ 그런데 번역이라도 잘 하시니 다행인 듯합니다. 번역도 못하고 평론도 못 쓰면 그건 정말 눈물 날 것 같아요.
마르케스 옹이 현재 고령(86세)이고 치매까지 걸리셔서 작품을 더 쓰지는 못할 듯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마르케스 옹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될 듯합니다. 소설을 읽다가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버림받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89쪽)."는 표현이 나오더군요. 이 대목 읽고 울컥했습니다.
 
황천기담
임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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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작가가 이번에 가닿은 곳은 황천이란 이름의 환상적 공간이다. 가상의 공간 안에서 저자는 역사의 그늘과 인간의 상처를 특유의 서정적 문장으로 잡아낸다. 더러 구성의 비약이나, 이야기의 작위적 나열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이 저자가 아직 '임철우다움'을 잃지 않았다는 게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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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2-2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철우, 아.. 아직 살아 있군요. 붉은방이었던가요 ? 그거 읽은 기억은 있는데 도통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군요..

수다맨 2014-02-23 13:06   좋아요 0 | URL
네, 고문 받은 사람 이야기를 다룬 '붉은방'이라는 소설이 있죠. 저도 오래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ㅎㅎ 이상문학상까지 받은 작품인데 말이죠.
저자의 나이가 은근히 젊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올해 환갑이더군요. 때문에 예스러운 느낌이 나서 조금은 식상하게 읽히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사평역'이나 "봄날"의 느낌을 여전히 잘 간수하고 있는 모습이 미덥게 보이더군요. 진정성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3 16:00   좋아요 0 | URL
임철우 씨가 꽤 젊은 나이 때부터 알려졌으니 사람들이 꽤 나이가 들었을 거라 짐작하시더라고요..ㅎㅎ

수다맨 2014-02-23 16:10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렇게 젊을 날에 힘을 쏟아서 그런지 근작은 힘이 좀 떨어져 보입니다. 약간은 수필적이거나 반복적인 느낌도 더러 있구요. 초기작이 좋은 작가가 있고, 만년작을 잘 쓰는 작가도 있는데 임철우는 아무래도 전자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나는 눈 위에 살찐 여섯 마리의 꿩을 늘어놓고 검은색과 불그스름한 갈색 무늬의 깃털을 뽑았다. 깃털은 눈가루와 함께 바람에 흐트러져서 무거운 꼬리 깃털만 발치에 남았다. 깃털 아래의 꿩의 살은 차가워져서 딱딱하고 그 위에 탄력 있는 충실한 저항감을 갖추고 있다. 깃털 사이의 솜 같은 잔털에는 투명하고 예쁘장한 이가 잔뜩 붙어 있어서 그 꿩들은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폐 속으로 이가 붙어 있는 잔털이 빨려 들어갈까 봐 두려워서 콧구멍만으로 약한 호흡을 하면서 추위에 곱아들기 시작한 손가락으로 깃털을 계속해서 뽑았다. 문자 그대로 '닭살이 돋아 있는' 버터 같은 색깔의 얇은 피부가 갑자기 맥없이 찢어지더니, 그 아래에 있는 것에 닿은 손가락 끝에 기분 나쁜  감촉이 전해져 온다. 찢어진 피부가 순식간에 균열을 확대시켜 검붉게 상처 입은 살이 나타났는데, 온통 핏멍울과 납으로 된 산탄투성이다. 완전히 벗겨진 몸에서 남아 있는 털을 뽑아내고, 모가지를 비틀어 떼어내기 위해 목을 빙글빙글 돌려 힘을 준다. 목은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잘려 나갈 것 같은데, 그렇게 힘을 조금 더 가하는 것을 내 안에서 거부하는 무언가가 있다. 잡고 있던 대가리를 놓자 비틀려 있던 목은 마치 강한 용수철처럼 힘좋게 제자리로 돌아와, 주둥이가 내 손등을 날카롭게 찔렀다. 그래서 나는 꿩의 머리를 독립적인 하나의 물체로서 처음 발견하고 그 머리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환기시키는 것에 주의를 집중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이야기 소리와 갑작스런 높은 웃음소리가 뒤뜰 우물가와 뽕밭을 갈라놓는 산 중턱의 눈 속에 흡수되어버리자, 새로 내리면서 나의 귓불에 닿는 눈이 눈송이끼리 서로 부집치는 소리가 아닐까 싶을 만큼 미세하게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 "만엔원년의 풋볼", 웅진지식하우스, 288~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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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가 집요한 외국 작가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이언 매큐언과 오에 겐자부로다. 이 중에서 '잔혹'이라는 성격까지 더한다면 아마 오에 겐자부로가 갑일 것이다. 

내가 읽어본 오에 초기 소설('사육', '죽은 자의 사치', "절규", "개인적인 체험", "만엔원년의 풋볼")의 묘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혹하고 화려하면서도, 단순히 이미지즘에 그치지 않고 서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특히 이 "만엔원년의 풋볼"은 한 장면 한 장면이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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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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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손택은 사르트르의 후예이다. 손택은 사진의 재현적 성격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 사진과 현실의 엄청난 간극을 지적한다. 또, 연민이라는, 시들해지거나 잊히기 쉬운 감정에 빠지지 말고, 보다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폭압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설 것을 독자에게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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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4-02-1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뒤표지에 쓰인 진중권의 표사는 책 내용과 다소 어긋나 보인다. 진중권은 손택의 글이 뜻하는 바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정도로 생각하는 듯한데, 내가 보기에 손택은 연민 이상의 복합적 감정ㅡ여기에 분노와 경멸, 반감과 증오와 같은 감정이 뒤섞이는 것은 물론이다ㅡ을 가지기를 독자에게 권고하고 있다. 저자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손쉽게 잊히고, 증발되기 쉬운 감정이라는 점을 책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8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수잔 손택 팬입니다. 옛 여자친구가 손택을 워낙 좋아해서 대부분 다 읽었는데 아 이거 헤어지고 나니 제 서재에는 손택 책이 없어요. 이 참에 얿는 그녀 책 짬짬이 모아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손택은 철학적 에세이를 가장 탁월하게, 아름답게 쓴 작가'입니다.

수다맨 2014-02-18 08: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손택 글을 단편적으로만 접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단행본을 읽었는데 느낌이 굉장히 좋습니다.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행동하는 모습(앙가주망)을 보면 사르트르를 닮아 있고, 글의 냄새는 다소 부드럽고 지적인 오웰 같다고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연민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내는 지점에서 감탄했습니다. 또 사진의 이중적 성격(가장 사실적이고 저널적인 재현의 장르이나 얼마든지 조작하고 가공할 수 있으며, 이것이 오히려 현실과의 간격을 넓힐 수 있다)을 드러내는 부분도 훌륭했고요. 알기 쉬운 문장을 쓰면서도 철학적 향훈과 사회적 통찰을 동시에 보여주는 힘이 대단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