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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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몆 평자들은 생각이 바뀌고 깊어져야 세상도 변한다고 한다. 헌데 실상은 정반대로, 세상이 흔들리고 뒤틀려야 우리 생각도 그 파장을 따라간다. 고전에 대한 지식과 문학에의 순정으로 무장한 젊은 평론가는 독서가 혁명이라 말하나, 독서 그 자체가 실천적 에너지를 즉각 추동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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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5.7.8 - 창간호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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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비평을 싣지 않는다고 해서 비평적 판단이 결여된 잡지란 존재할 수 없다. 필자 선정이나 기획대담 역시 하나의 비평적 행위이다. 기존문예지와 차별화된 지점을 만들고 싶다면 저가판매나 고전 찬양, '선생'들을 비판하는 행위를 넘어서 비평적 지향점이 뭔지를 밝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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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ter 2015-07-2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저렴해서 출간되자마자 사고, 천명관 작가 인터뷰와 단편 소설, 리뷰 몇 편을 읽긴 했는데... 뭔가 많이 아쉽긴 하더군요. 천명관 인터뷰의 경우엔 인터넷에서 흔히 접해왔던 내용이라 그런지 새로울 게 없었고, 김경욱의 단편은 범작이었고...

리뷰의 경우엔 한 편 정도 유익했습니다만, 나머진 거의 블로그 서평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깊이나 재치 그 어느 것 하나 충족되지 못했었다고 할까요.

생각해보면 문동이나 창비, 문지 같은 문예지도 페이지수가 거의 500-600페이지에 달하고, 가격은 만원대 초반인데... 그냥 가격을 더 보태서 기존의 문예지를 찾아 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디자인이나 레이아웃은 패션 잡지의 그것과 유사해서 신선하긴 했지만...

아무튼 수다맨님 말씀처럼 악스트엔 그 비평적 지향점이란 게 쏙 빠져있는 느낌인 것 같긴 하네요.

수다맨 2015-07-30 08:31   좋아요 0 | URL
악스트가 소설가들의 지면 해결을 위한 잡지, 단순히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잡지로서 ㅡ그러니까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서ㅡ노선을 정했다면 이번 창간호 자체로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잡지 제호(카프카의 소설에서 따왔다죠.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와 편집위원들의 의욕은 거창한 반면에 잡지 내용이 이에 부합한지는 약간의 의문이 듭니다. 위원들은 지금의 문학계 판도에 동승하는 게 아니라, 판도 자체를 바꾸려는 야심을 가진 것 같은데 만일 그렇다면 잡지의 비평적 지향성을, 고유 이념을 뚜렷이 설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잡지의 편집위원들은ㅡ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ㅡ비평의 의의를 너무 낮추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잡지를 창간한 것은 아니지만, 김종철 평론가 같은 사람은 일찍이 문학계를 떠나서 ˝녹색평론˝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요. 이 잡지는 지금도 녹색(환경운동)과 평등(기본소득론, 지역통화운동 등)을 잡지의 지향점으로 삼아서ㅡ사실 저는 이 노선에 동의하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만ㅡ사회주류에 맞서는 대안잡지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지요. 제가 악스트에게 바라는 것은 (당장 평등 운동에 뛰어들라는 게 아니라) 지금의 판도를 바꾸고 싶다면 바로 그들만의 이념과 비평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담이나 뒷담화의 형태로 선생과 출판사의 부조리를 개탄하는 것, 비평은 필요없고 소설만으로 족하다는 생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성과는 그리 크지도, 많지도 않아 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8-06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닥 신뢰는 가지 않습니다. 출판사가 이런 문예지를 통해서 작가를 모으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너써클을 만드려고 하는 욕심은 다 대동소이... 악덕 출판사로 명성이 자자한 ***** 도
왜 문예지 만들려고 했잖습니까..

수다맨 2015-08-07 09:55   좋아요 0 | URL
자본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양심적 전위도, 읽을만한 글줄도 부각되기 어려운 시대이니 저 문예지만 갖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저가 판매나 선물 공세(저한테는 공책과 연필을 주더군요), 문단의 선생님들 뒷담화에서 그칠 게 아니라 잡지 창간에의 포부와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주는 비평과 이념이 있어야한다는 거지요. 지금으로서는 은행나무라는 출판사의 엄청난 지원을 받는 일반문예지에 불과해 보입니다.
말씀하신 악덕출판사 *****는 한숨만 나오지요. 서구의 급진적 철학자들(아감벤, 바디우 등등)의 담론들은 잘도 출판하면서 그곳의 작업 환경은 70년대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이건 뭐 국회의원들의 이중성보다도 더한 듯합니다.

아 그리고 술 약속은 제가 다다음주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집안의 큰 어르신(올해 연세가 90이라) 이 돌아가실 듯해서요.
 
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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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밀어붙이는 힘이 전만 못하고, 인물의 통각과 시대의 이면을 부각하는 솜씨도 떨어져 보인다. 유럽에 이슬람 정권이 도래한다는 설정은 기발하나 그 변화의 파장을 지식인의 눈으로만 포착하려 들기에 넓이와 깊이가 빈약하다. 작가 특유의 지적언어들이 설득력없이 공허하게 겉도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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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7-2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지도와 영토˝에서 보였던 우엘벡의 한계가 이 책에서 좀 더 극대화된 것 같다. 지극히도 우엘벡적인 화자(지식은 많지만 지독히 염세적이며 언제나 사랑에 목말라해서 우울해하는 인물)가 바라보는 미래상(이슬람화되어 소시민적 행복이 만연해진 유럽)이 내게는 그닥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차라리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에 바탕한) 유럽인의 갈등과 반목을 좀 더 첨예하게 그려냈어야 하지 않을까. 화자가 만일 지식인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나, 노농 계급이었다면 이같은 디스토피아적 결과가 나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극언을 하자면, 지금 이 작품에는 배부른 체념과 자기 연민의 무게가 너무 많다.
 
개같은 날들의 기록 시인동네 시인선 31
김신용 지음 / 시인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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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뱃속을 달래기 전에는 영혼을 진정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수다한 시들이 말놀이로 경사하거나 관념의 체조를 벌일때 김신용은 인간의 통점을 자극하는 언어로 시대의 심장을 겨눈다. 추위와 주림을 뼛속 깊이 겪어본 자의 시어에는 우리가 외면했던 세속의 병폐와 남루가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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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지기 2015-07-1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복간되었군요. 이렇게 반가울수가. 예전 기억이 떠오릅니다. 김신용의 작품을 처음 접할 때였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그의 소설 `고백`을 읽었습니다. 저는 늘어진 자세로 `고백`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다가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자세로 앉은 다음 긴장한 상태로,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그의 소설들도 복간했으면 좋겠습니다.

수다맨 2015-07-18 01:44   좋아요 0 | URL
˝고백˝은 천년의 시작이란 출판사에서 ˝달은 어디에 있나˝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여전히 8500원(!)인 것을 보니 많이 팔리지 않은 듯하군요.
˝개같은 날들의 기록˝은 예전에 세계사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이번에 시인동네라는 출판사에서 다시 나왔습니다. 시의 주된 정조는 첫 시집인 ˝버려진 사람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느낌이 드네요. 저도 오랜만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시집을 읽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창고지기 2015-07-19 05:33   좋아요 0 | URL
`작가가 심장에 칼을 꽂고 썼구나.` 저는 좋은 문학 작품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김신용의 <고백>이 바로 이런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문학 작품을 읽을 권리가 있는 독자로서 젊은 작가들에게 감히 충고하나 하자면, 문학이란 자기 심장에 칼을 꽂고 쓰는 심정으로 써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수다맨 2015-07-19 21:32   좋아요 0 | URL
그런데 누군가 ˝고백(달은 어디에 있나)˝을 저에게 다시 읽으라고 권하면, 저는 읽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장 가혹한 독서 경험을 주었던 책이라서요. 지하 깊숙한 곳에서 건져 올린 그 언어를 다시 마주하기란 약간의 두려움이 듭니다.
 

 

 

 

 

 

 

 

 

 

 

 

 

 

 

 

 

  매미 울음

 

  김신용

 

  아직은 어둠의 자궁 속에 누워 있겠다 그러나

  미라는 되지 않겠다 꿈틀거리겠다

  그 꿈틀거림의 삽질로 허물 벗겠다

  한꺼풀씩 에벌레의 의식 껍질 벗기겠다

  저 푸른 하늘 날아오를 나래를 위해

  우리의 넋, 그렇게 힘줄 푸른 근육 입히겠다

  단 7일간의 생이 앞에 놓여 있다 해도

  7년간의 긴 세월, 흙속에 파묻혀 있겠다

  온갖 화사한 무늬 박힌 햇살의 손짓 따라

  무작정 이 어둠의 집을 버리면

  아직 연약한 살결의 의지는 타버리고 만다

  그래, 끊임없는 허물벗기의 삽질과

  땀과의 교직만이

  우리 뜨거운 여름을 건져올릴 그물을 지을 수 있다

  지금 세상은 윤유월 땡볕이 끓고 있다

  하늘 빗방울 소식 한 점 없이

  가뭄에 가슴의 땅이 쩍쩍 갈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 폭력만이 그물에 구멍을 뚫는 것은 아니다

  고문 기술자는 독버섯처럼 우리 가슴에도 숨어 있다

  그래서 지금은 어둠의 자궁 속에 누워 있을 때

  그 밤의 얼굴, 폐부에 문신으로 새기며

  나래를 만들 때

  이 땅의 메마른 입술 적시는 빗방울, 그 분신으로

  단 한 번 내 노래 타오를 수 있다면

  그 나래, 황홀히 가을볕에 말라 바스러질 때까지

  (112~113쪽)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샀다. 누군가의 신작 시집은 아니고 이 역시 한때는 절판의 운명을 맞이했기에, 최근에 다시 나온 중간본重刊本이다.

이오덕과 권정생이 쓴 편지들을 엮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와 더불어, 다시금 출간되어서 다행스럽고 반가운 책이다. 이런 시들을 대한민국에서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신용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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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 2015-09-0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고 오랜만에 시집을 샀답니다. 조금씩 읽고 있어요.

수다맨 2015-09-09 13:48   좋아요 0 | URL
김신용의 시에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표하는 분도 의외로 적지 않더라구요. 제가 보기에는, 오늘날 말놀이로 경사하거나 관념의 향연을 벌이는 시들의 대척점에, 김신용의 시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친애하는 블로거(곰곰생각하는발)님의 평소 말씀처럼, 김신용의 시는 세상을 `독하게` 쏘지요. 이런 독침을 소지하는 글쟁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외 2015-09-11 09:41   좋아요 0 | URL
우선 노동자로서 ˝그러나 왜 혼신의 넋이 깃들지 못할까, 우리 일터˝ 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왔어요. 하하 투박하지만 내던지지는 않을 느낌입니다. 문학에 대해서 저는 대개 느낌뿐인데 수다맨님 코멘트는 분명해서 도움을 많이 얻습니다. 전 황병승 앞뒤 이른바 젊은 시인들의 사탕발린 감상적 사투리가 지긋지긋하던 차였어요.

수다맨 2015-09-13 00: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 또한 요즘 나오는 시집들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뭐랄까, 제가 보기에는 절박함도, 그렇다고 신선함도 충분치 않아 보여서요. 그냥 고담준론만 오가는 학예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집에 있는 시집도 많이 버렸어요. 황지우 안도현 정호승 황동규 고은 김경주 황병승 등등 버리고 나니까 박남철과 박영근, 김신용과 백무산 정도만 남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