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

 

  김신용

 

  아직은 어둠의 자궁 속에 누워 있겠다 그러나

  미라는 되지 않겠다 꿈틀거리겠다

  그 꿈틀거림의 삽질로 허물 벗겠다

  한꺼풀씩 에벌레의 의식 껍질 벗기겠다

  저 푸른 하늘 날아오를 나래를 위해

  우리의 넋, 그렇게 힘줄 푸른 근육 입히겠다

  단 7일간의 생이 앞에 놓여 있다 해도

  7년간의 긴 세월, 흙속에 파묻혀 있겠다

  온갖 화사한 무늬 박힌 햇살의 손짓 따라

  무작정 이 어둠의 집을 버리면

  아직 연약한 살결의 의지는 타버리고 만다

  그래, 끊임없는 허물벗기의 삽질과

  땀과의 교직만이

  우리 뜨거운 여름을 건져올릴 그물을 지을 수 있다

  지금 세상은 윤유월 땡볕이 끓고 있다

  하늘 빗방울 소식 한 점 없이

  가뭄에 가슴의 땅이 쩍쩍 갈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 폭력만이 그물에 구멍을 뚫는 것은 아니다

  고문 기술자는 독버섯처럼 우리 가슴에도 숨어 있다

  그래서 지금은 어둠의 자궁 속에 누워 있을 때

  그 밤의 얼굴, 폐부에 문신으로 새기며

  나래를 만들 때

  이 땅의 메마른 입술 적시는 빗방울, 그 분신으로

  단 한 번 내 노래 타오를 수 있다면

  그 나래, 황홀히 가을볕에 말라 바스러질 때까지

  (112~113쪽)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샀다. 누군가의 신작 시집은 아니고 이 역시 한때는 절판의 운명을 맞이했기에, 최근에 다시 나온 중간본重刊本이다.

이오덕과 권정생이 쓴 편지들을 엮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와 더불어, 다시금 출간되어서 다행스럽고 반가운 책이다. 이런 시들을 대한민국에서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신용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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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 2015-09-0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고 오랜만에 시집을 샀답니다. 조금씩 읽고 있어요.

수다맨 2015-09-09 13:48   좋아요 0 | URL
김신용의 시에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표하는 분도 의외로 적지 않더라구요. 제가 보기에는, 오늘날 말놀이로 경사하거나 관념의 향연을 벌이는 시들의 대척점에, 김신용의 시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친애하는 블로거(곰곰생각하는발)님의 평소 말씀처럼, 김신용의 시는 세상을 `독하게` 쏘지요. 이런 독침을 소지하는 글쟁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외 2015-09-11 09:41   좋아요 0 | URL
우선 노동자로서 ˝그러나 왜 혼신의 넋이 깃들지 못할까, 우리 일터˝ 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왔어요. 하하 투박하지만 내던지지는 않을 느낌입니다. 문학에 대해서 저는 대개 느낌뿐인데 수다맨님 코멘트는 분명해서 도움을 많이 얻습니다. 전 황병승 앞뒤 이른바 젊은 시인들의 사탕발린 감상적 사투리가 지긋지긋하던 차였어요.

수다맨 2015-09-13 00: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 또한 요즘 나오는 시집들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뭐랄까, 제가 보기에는 절박함도, 그렇다고 신선함도 충분치 않아 보여서요. 그냥 고담준론만 오가는 학예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집에 있는 시집도 많이 버렸어요. 황지우 안도현 정호승 황동규 고은 김경주 황병승 등등 버리고 나니까 박남철과 박영근, 김신용과 백무산 정도만 남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