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 일인지 고리키가 결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 아닌 거 같다. 어떤 작가들 경우엔 그들이 실제 존재했다는 걸 쉽게 믿을 수 있다. 투르게네프나 D.H. 로런스 같은 작가들. 헤밍웨이는 반만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그는 실제 존재했으면서 또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 근데 고리키는? 그는 뭔가 매우 강력한 걸 실제로 썼다. 혁명 이전에. 그러다 혁명 이후에는 글이 창백해지기 시작한다. 투덜댈 거리가 별로 없었던 거다. 반전운동가들도 같은 신세다. 그들도 전쟁이 있어야만 번성할 수 있으니까. 반전운동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 없으면 그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른다. 걸프전쟁 기간에 한 떼의 작가와 시인이 대규모 반전 시위를 계획하고 시며 연설문 등을 준비해뒀다. 그런데 별안간 전쟁이 끝나버렸다. 시위는 한 주일 뒤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위를 취소하지 않았다. 아랑곳없이 밀고나갔다. 무대에 서고 싶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래야만 했다. 그건 인디언의 기우제 춤과도 좀 비슷했다. 나 자신도 전쟁에 반대한다. 반전주의가 대중의 지지를 얻는 고상하고 지적인 그 무엇이 되기 전인 먼 과거에 난 이미 반전주의자였다. 하지만 난 직업적인 반전운동가들 중 많은 이들의 용기와 동기를 미심쩍게 여긴다 ㅡ 찰스 부코스키

 

위선과 집단을 극도로 증오했던 진정한 아웃사이더, 그의 이름은 찰스 부코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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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이긴 하되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죽었다. 향년 90세이니 적게 산 것은 아니다.

 

그는 생전에 굉장히 괴팍했다. 남에게 친절하지 않으면 가족에게라도 애정을 주어야 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혈족에게는 도타운 정을 가졌던 반면에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에겐 아주 차갑게 대했다. 그가 평생토록 유지했던 이러한 단점은 결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임종을 맞이할 즈음에는 한 점 혈육인 딸을 제외하고 아무도 그의 곁에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2. 내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에서 정치가나 기업가만큼 저질인 부류들은 다수의 종교인들이다.

 

살찐 중 두 명이 한 시간 동안 불경을 외우고는 오십만 원씩 가지고 갔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불교 신자인 친척과 가족들은 그들이 가져간 돈을 (아깝게 여기기는 했어도)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 생각한 듯하다. 최저임금 6000원(정확히 말하면 6030원) 시대에 목탁 두드리며 경 읽는 행위로 시급 50만원을 버는(그리고 당연히 바라는) 부류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을 처먹고 살이 쪘는지, 얼굴에 기름기가 반들거니는 중이 이렇게 말했다.

'정성을 다해서 고인의 혼을 달랬으니 좋은 곳으로 가실 겁니다. 이제는 집 안에 복락과 행운이 가득할 터이니 안심하십시오.'

이봐요 스님, 당신의 요설을 믿느니 차라리 돈 백만 원의 권위(?)를 믿겠소.

 

3. 사흘 동안 밤샘을 했다.

 

상주의 나이가 적지 않아서, 내가 상주 대신 서 있을 때가 많았다. 새벽에 상주가 부속실에 가서 눈을 붙일 때면 빳빳한 방석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가져온 책들은 네 권이었지만 유일하게 반복해 읽었던 책은 찰스 부코스키의 일기집인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였다.

새벽에 누가 왔을 때도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머리가 센 노인이었는데 나를 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절을 마치고 그가 볼멘소리로 나를 꾸짖었다. 요지는 상주다운 예의를 지키라는 거였다.

하지만 영감님, 그런 말은 남에게 하기 전에 자식에게 먼저 하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당신이 죽는 날, 당신의 아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지도 모른답니다.

 

4. 만일 죽게 된다면, 아주 조용히 죽고 싶다.

 

장례식에서 치르는 허다한 의식들과, 고인을 추모하러 오는 적잖은 이들을 볼 때면 그 갸륵한(?) 정성보다는 먼저 한숨부터 나온다. 위대한 인간이건 하찮은 소인이건 죽으면 그냥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니, 조용히 죽자. 시체는 다들 병원에 기증하는 것이 좋겠고, 의식은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 굳이 추모 공간을 만들고 싶거든 조용한 공간을 빌려서 천막 하나 치고, 향불을 피울 화로와 꽃 몇 송이만 준비하면 된다. 이 이상 준비하는 것은 치레이자 호사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가, 담백하고 간소하게 죽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5. 앞에서 말한 대로 이 페이퍼는 찰스 부코스키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읽고 작성한 글이다. 부코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도대체 얼마나 거룩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니미럴,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오줌을 얼마나 누어대는지 궁금하게 여겨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먹고 싸지르는지는? 수 톤 될 거다. 끔찍하다. 우린 얼른 뒈져서 여길 떠나주는 게 제일 좋다. 우리 몸에서 뽑아내는 걸로 세상 모든 걸 오염시키고 있으니까"(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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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2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미럴 때문에 빵터졌어요. ㅎㅎ
죽음에 대한 생각을 요즘 부쩍 하게됩니다.

수다맨 2015-08-24 21:4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프레이야freyja님. 누추한 서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례를 한 번 치르고 나니 조용하고, 간소하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듭니다. 아울러 종교는 가능한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죽는 게 (제가 보기에는) 아주 바람직해 보입니다.

2015-08-24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4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4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8-2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가장 좋죠. 모든 절차는 간소하게...

수다맨 2015-08-25 21:10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곰곰발님, 약속 갑작스럽게 취소해서 송구합니다. 오늘 삼우제를 지내서 답장도 많이 늦었네요.
혹여 시간이 있으시면, 이번주 금요일 6시에 유진식당에서 약속을 잡는 게 어떠할까요? 이번에는 꼭 뵙고 싶습니다.

2015-08-26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6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 / 모멘토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부코스키가 발자크나 졸라보다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세계적인 거장들에 견주면 부코스키는 그들보다 한 끗발 내지 두 끗발은 밀린다. 그러나 나는 부코스키보다 진실하고 정직한 작가를 알지 못한다. 그의 글은 맑고 투명하며, 세속의 허영과 역겨운 가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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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8-2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아웃사이더라고 불릴 만한 작가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8-2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약속 잊지 않으셨죠 ?
그나저나 나 이책 읽고 오늘 보면 드려야 겠다 생각했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사실 전 아직 다 안 읽었습니다.

수다맨 2015-08-21 13:50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 정말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고비는 넘기신 줄 알았는데, 방금 전 제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네요;;;
아무래도 장례에 가고 밤샘도 해야할 것 같아서, 오늘 약속을 지키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되어서 저 역시 당혹스럽고, 죄송하기 그지없네요;;;
머리 숙여 송구합니다.

2015-08-22 0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2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인은 미쳤다! - LG전자 해외 법인을 10년간 이끈 외국인 CEO의 생생한 증언
에리크 쉬르데주 지음, 권지현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숲 바깥에서 숲을 보는 이방인의 시선에 경의를 표할 때가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고성장이라는 목표를 명분으로 삼아, 구성원들에게 상명하복의 법칙과 우승열패의 논리를 가하는 과정을 통렬히 보여주는 책이다. 요컨대 한국의 모든 장長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누리려는, 유사 박정희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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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8-1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조만간 봅시다요.

수다맨 2015-08-12 11:31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답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다음주 금요일 즈음에 약속 잡으면 어떠신지요? 우리집 어르신이 고비는 넘겼는데, 하필 주말에 제사가 있어서 멀리 외출하기가 어려울 듯싶습니다. 다음주에 시간 있으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8-12 15:49   좋아요 0 | URL
아니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 어이구... 뭐, 평일만 빼면 주말은 시간이 됩니다. 다음주에 함 뵙도록 합지요. 장소는 수다맨 님이 정하십셔...

수다맨 2015-08-13 11:53   좋아요 0 | URL
할머니(올해 아흔입니다)께서 며칠 내로 돌아가실 듯했는데 다행히 고비는 기적적으로 넘겼다고 하더군요.
다음주 금요일 저녁에 한 번 뵙도록 하지요. 장소는, 저번처럼 유진식당에서 만나면 어떨까요? 거기 냉면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ㅎㅎ

2015-08-13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3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5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지음, 최인자 외 옮김 / 해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신을 기린다는 명분으로 행하는 수도원 공사의 기만과 참혹을, 신을 거역하는 행위(하늘을 나는것)에 숨겨진 거룩한 신성神聖을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소설이다. 현세의 신이란 지배층의 권위나 권력이 아니라 세상을 초극하려는, 인간 불굴의 의지에서 나온다는 것을 중량감 넘치는 필력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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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8-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의 수다와 서술이 (불필요하다 싶을 만치)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야기꾼으로서의 미덕을 알려주는 징표일 수 있지만 지나친 군더더기로 보일 때가 많다. 400쪽에 압축할 수 있는 내용을 600쪽이 넘게 풀어 놓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