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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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쓰고자 장대한 서사가 동원되는 작품이 있다. 종묘, 사직, 전하 등 허울뿐인 말들이 넘치다가 치욕의 의식(삼전도의 굴욕)을 거쳐서 사라진 자리에 서날쇠와 같은 민초들의 삶의 풍경이 펼쳐진다. 김훈소설의 본령(말들의 신기루와 인간삶의 자연성)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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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는 삶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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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이민자의 마음 풍경을 그려내는 솜씨는 탁월한데 젊은 군의관의 사랑과 우울을 다루는 대목은 허하다. 이 책이 어느 동양인 이민자가 늘그막에 겪는 관계의 소외와 스산한 심정만을 다루었다면 더 짜임새 있는 작품이 되었을 듯싶다. 위안부 이야기는 있으나 마나한 고명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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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분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3
윌리엄 포크너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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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세계만을 이해하는 백치, 관념의 영역만을 중시했던 젊은자살자, 손익의 지점만을 헤아리는 가장, 인고와 헌신의 세월을 견디는 나이든 하녀를 통하여 몰락해가는 한가문의 모습이 절제된 문체로 그려진다. 미국에서 남부가 차지하는 의미, 영광의 과거와 치욕의 오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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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7-10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근데 저는 이 작품....무쟈게 지루하더라구요~ 보다가 말았다는..
이걸 걸작으로, 감명 깊게 읽을 날이 제게 올까...하는 의구심이 있네욤. 개인적으로 한 가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들은 이상하게도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뤼..^^;;

수다맨 2017-07-11 03:48   좋아요 1 | URL
저도 4년 전에 구입하고는 세번쯤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1부인 백치의 서술과, 2부인 이십대 장남(나중에 자살을 하지요)의 서술이 지독하리만큼 난해하게 여겨지더군요.
최근에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나서 맘먹고 손에 붙들고는 일주일 만에 완독을 했는데, 처음에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더라구요. 이 작품은 가문의 일대기를 (통상적인 방식인) 연대기순으로 엮은 게 아니라 각각의 화자를 도입하고, 화자의 음성과 심정에 걸맞는 문체를 사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더군요. 특히나 어렵게만 여겨졌던 백치의 감각적 언술(이 사람은 백치라서 개념어나 전문 용어를 모르고 몸에 받아들이는 감각들로만 생각을 합니다)과 요절자의 관념적 서술(이 사람은 하버드대 출신이나 이른 나이에 절망과 고통에 빠져서 내면에 침잠하는 사념적 또는 서정적인 문장만 씁니다)이 뭔가 뜻깊게 다가오더군요.
확실히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런 작품을 쓰는 데 들였을 작가의 실험성과 도전 정신은 높이 평가하고 싶더군요.
 
백낙청 회화록 7 백낙청 회화록 7
백낙청 회화록 간행위원회 옮김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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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이 진보적인 소장파 평론가였던 무렵에, 보수적인 노장파 문인들(백철, 선우휘 등)과 나눴던 토론에는 그만의 열정과 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나이 들어서 내놓는 글에는 젊은날의 혈기 대신에 어른이 된 이의 훈화와 훈시만 가득해 보인다. 그가 어른의 무게에서 좀더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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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2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낙청의 책을 사서 읽은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80년대 나온 책들은 읽을 만했습니다만..^^

수다맨 2017-06-29 17:12   좋아요 1 | URL
저는 백낙청의 비평적 안목을 높게 보지는 않습니다. 확실히 김현으로 대표되는 그 옛날 문지 라인과 비교하면 백낙청의 작품 읽기와 작품 평가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섬세한 독법이 부족해 보이죠. 비유를 들자면 평론가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함께 들고 다녀야 하는데 백낙청은 항상 망원경만 들고 다니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데만 치중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사실 백낙청을 계획자이자, 설계사로서 더 높이 평가합니다. 그가 없었다면 리얼리즘이나 민중문학이라는 테제들이 당대에 그만큼 높은 인정을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확실히 그는 시대의 변혁과 사람들의 요구(권위주의 정권 극복과 민중들의 삶 갱신)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문학이 이러한 과제들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을 설파해서 기존의 보수적인 노장파 문인들이 구성했던 판도를 아예 바꾸어 버렸지요.
다만, 지금의 백낙청은 그 옛날 보수적인 노장파 문인들이 갔던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의 백낙청은 계획자이자 설계사로서의 역량도 소진되었다고 보거든요. 이런 류의 훈화록/훈시록(백낙청 회화록 6-7권)을 낸다는 자체가 그의 문학적 수명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좌 같아서 좀 씁쓸합니다.
 
- 오정희 장편소설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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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거리 육상선수가 마라톤 선수가 되려면 훈련과 시련을 거쳐야 한다. 특유의 유려한 문체와 감상이 절제된 시선이 빛나긴 하지만 거장의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중량감과 치밀함이 부족하다. 장편은 문체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복잡함을 떠안고 서사화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에서 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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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6-2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누가 오정희 좋다 해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미숙해서 굉장히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다맨 2017-06-28 15:22   좋아요 1 | URL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정희는 문체(지상)주의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체의 탁마와 수련(만)으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정희도 이러한 반열에 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오정희의 최장점은 장편이 아니라 몇몇 소품에 가까운 단편들에서 드러난다는 인상이 듭니다.
이런 문체(지상)주의자들은 장편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금방 역량과 밑천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서사에 대한 전략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문체(만으)로 소설을 만들려고 하면 제풀에 지치죠. 비근한 예를 들자면 김훈과 같은 작가도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 정도를 제외하면 돌올한 장편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훈 특유의 문체의 마력에 힘입어 소설의 서사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사료들(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었다는 데서 찾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yamoo 2017-06-2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고교 동기동창이 오정희 소설이 좋다길래 읽어봤는데, 저하고 맞지 않더라구요...저는 문체보다는 흡입력 있는 스토리라인에 스며든 주제의 형상화가 더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컨대 ‘파리대왕‘같은 작품처럼요.^^

수다맨 2017-06-29 16:59   좋아요 1 | URL
˝파리대왕˝은 가히 명작의 반열에 들 만한 작품이죠. 아마도 윌리엄 골딩이 쓴 책 중에선 가장 쉽고도 박진하며 깊이가 충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이후에 쓴 장편들(˝첨탑˝, ˝피라미드˝ 등)도 몇 편 읽어보았는데 문학적 가치를 낮추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갈수록 난해해져서 서사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지더군요.
오정희의 소설은 상술한 것처럼 문체의 힘에(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녀는 일상의 세밀한 부분, 비의적인 지점을 포착하는 데는 강하지만 흡인력 있는 스토리라인을 보여주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고, 저 역시 오정희에게 나름의 경외감과 존중감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호감을 가지기는 어렵더군요.

흠.. 2017-06-30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인의 한계를 말씀 하시는 거 같아...

안타깝네요.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요.

수다맨 2017-06-30 14:39   좋아요 0 | URL
글쎄요. 굳이 한국인으로까지 외연을 넓힐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ㅎㅎㅎㅎ
정확히 말하면 한국인의 한계라기보다 오정희라는 작가의 한계로 보아야겠지요. 물론 오정희의 미덕과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그보다 더 심원한 지점을 찾고 읽어내려는 작가/독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