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트레이시
워렌 비티 감독, 워렌 비티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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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독창성은 없지만 감미로운 재즈의 선율과 화려한 색감, 몇몇 배우들(특히 알파치노)의 연기 변신은 인상적이다. 지금의 시선에서 볼 때는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그 당시 만화 원작을 영화로 옮기려고 했던 시도의 의미를 감안한다면 오늘날 슈퍼히어로 무비들의 조상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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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8-09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도시의 영웅 딕 트레이시와 그를 연모하는 댄서 마돈나가 아니라) 악랄하면서도 찌질하고 코믹한 빌런 ‘빅 보이‘를 찰지게 연기하는 알 파치노이다. 시도의 참신함과 도발성을 떠나서 ˝딕 트레이시˝는 서사라는 내용물만 놓고 본다면 이채로운 부분이 사실상 없는 영화인데 알 파치노의 미칠 듯한 포스와 연기력이 주인공을 압도할 정도로 강렬하여 이 작품에 흡인력을 만들어 준다.
날이 덥고 비까지 내려서인지 요즈음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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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마지막 걸작이라고 부를만한 작품! 세상은 인민의 힘으로 바뀐다는 것이 황석영과 같은 진보적 문학가들의 주장이라면 이문열은 대다수의 인간은 권세가의 위력에 굴복할 뿐이며 드높은(!) 개혁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들의 고두叩頭와 순종은 변치않는다는 것을 참으로 능갈맞게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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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7-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나 지금이나 이문열은 보수와 반동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작가였고 그의 근작들은 줄꾼의 무능과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같은 작품을 다시금 일독하면 (누군가의 눈에는 반동이라고 부를 법한) 그의 주제의식이 묘하게 흥미성과 신빙성을 갖게 된다. 이문열의 눈에는 권세가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들도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이들의 질서가 변하는 시간은 ‘다수의 봉기‘(진보파)가 아니라 종래의 권세가보다 ‘더 힘과 개념을 갖춘 능력자가 도래‘하는 때이다. 부언하면 엄석대의 몰락은 같은 반 급우들의 저항(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 같은 소설은 철저히 이 입장에 있다)이 아니라 새로 바뀐 담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동안 엄석대에게 충성을 바쳤던 급우들은 화자의 말마따나 ‘교활하고도 비열한 변절자‘로 변해서 기존의 권세가를 비난하고 새로 온 능력자를 환영한다.
허무주의와 혐오주의의 냄새가 짙은 소설임에도 이 작품은 여전히 시의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특정 업계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이문열의 주제의식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기 때문이다.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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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계약직인 노인노동자의 삶을 통해서 이사회에 만연한 갑질의 실상을 폭로한다. 비인격적 대우, 비위생적 환경, 장시간 노동이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부수는 과정은 눈물겹고도 끔찍하며 낮고 힘든 자리에서 일하는 이들도 엄연히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메시지는 감동적이면서 웅숭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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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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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진실의 응시자, 증언자가 아니라 그의 반대지점-회피자, 은폐자, 윤색가-에도 위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피해자들의 상흔과 정면으로 조우하지 못하고 문학이라는 변장술을 통해서 자기 방어와 변명을 거듭하는 화자의 태도는 속죄의 불가능성과 인간의 모순을 참으로 웃프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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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6-1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작가의 권위와 소명의식 같은 것들이 일종의 자기애이자, 망상이자, 모순일 수도 있다는 점을 능란하게 형상화한다. 설정상 ˝속죄˝의 저자인 브리오니는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비극을 맞게 된 연인에게 한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평생에 걸쳐서 용서를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무고 사건 이후로 다시는 로비, 세실리아 커플과 만나지 못하며 그의 반성/사죄 행위는 오로지 텍스트 안에서만 허구적으로 재현되고 반복된다. 이 소설은 지난한 글쓰기를 통한 속죄 행위가 결국에는 저자의 자기 변호/합리화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속補贖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한 번 일어난 비극과 상처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사람의 아들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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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써서 부와 명예를 얻던 시절이 있었다. 진보/보수라는 구분을 떠나서 소설가가 좋게는 고결한 지식인이건, 단순하게는 재미난 이야기꾼이건 그이의 가치를 사회에서 중요하게 보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최인호-이문열-황석영이 성향은 판이할지언정 그시절의 출세자,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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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6-01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는 ‘생은 다른 곳에‘라는 장편소설에서 전제주의의 시대를 가리켜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때였다고 표현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문학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못된‘ 총독들이 있을 때 대사회적으로 그 중요성과 의의가 극도로 부각된다. 상술했듯이 나는 최인호와 이문열, 황석영 등이 그들의 자질 및 필력의 출중함을 떠나서 시대 흐름의 덕을 본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독재자와 그의 부역자들이 기세등등할 때 문학가는 그 지향과 성향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가라타니 고진 식으로 말하면) ‘영구혁명 안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이 된다. 즉 그들은 대놓고 혁명가이거나 혁명적인 존재에 자리매김된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상 끝나게 되는 지점을 일러서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고 부른다.
이문열의 이 중간본重刊本에 대해선 사실 내용적으로는 별다른 할 말이 없다. 나는 93년판 ˝사람의 아들˝ 판본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의 줄거리도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위 평은 중간본에 있는 이문열의 새 서문을 인터넷 미리보기로 읽고 쓴 것이다. 그는 이 책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덕분에 괜찮은 단독주택을 얻었다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기쁨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황석영이나 최인호의 어느 산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즉 초기작이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려서 자기 집을 마련했다는 것.
맨몸으로 소설을 써서 사회로부터 존경심과 명성을 획득하고, 자가를 마련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아득한 신화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