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가 진실의 응시자, 증언자가 아니라 그의 반대지점-회피자, 은폐자, 윤색가-에도 위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피해자들의 상흔과 정면으로 조우하지 못하고 문학이라는 변장술을 통해서 자기 방어와 변명을 거듭하는 화자의 태도는 속죄의 불가능성과 인간의 모순을 참으로 웃프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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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6-1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작가의 권위와 소명의식 같은 것들이 일종의 자기애이자, 망상이자, 모순일 수도 있다는 점을 능란하게 형상화한다. 설정상 ˝속죄˝의 저자인 브리오니는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비극을 맞게 된 연인에게 한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평생에 걸쳐서 용서를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무고 사건 이후로 다시는 로비, 세실리아 커플과 만나지 못하며 그의 반성/사죄 행위는 오로지 텍스트 안에서만 허구적으로 재현되고 반복된다. 이 소설은 지난한 글쓰기를 통한 속죄 행위가 결국에는 저자의 자기 변호/합리화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속補贖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한 번 일어난 비극과 상처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아프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