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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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써서 부와 명예를 얻던 시절이 있었다. 진보/보수라는 구분을 떠나서 소설가가 좋게는 고결한 지식인이건, 단순하게는 재미난 이야기꾼이건 그이의 가치를 사회에서 중요하게 보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최인호-이문열-황석영이 성향은 판이할지언정 그시절의 출세자,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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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6-01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는 ‘생은 다른 곳에‘라는 장편소설에서 전제주의의 시대를 가리켜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때였다고 표현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문학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못된‘ 총독들이 있을 때 대사회적으로 그 중요성과 의의가 극도로 부각된다. 상술했듯이 나는 최인호와 이문열, 황석영 등이 그들의 자질 및 필력의 출중함을 떠나서 시대 흐름의 덕을 본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독재자와 그의 부역자들이 기세등등할 때 문학가는 그 지향과 성향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가라타니 고진 식으로 말하면) ‘영구혁명 안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이 된다. 즉 그들은 대놓고 혁명가이거나 혁명적인 존재에 자리매김된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상 끝나게 되는 지점을 일러서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고 부른다.
이문열의 이 중간본重刊本에 대해선 사실 내용적으로는 별다른 할 말이 없다. 나는 93년판 ˝사람의 아들˝ 판본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의 줄거리도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위 평은 중간본에 있는 이문열의 새 서문을 인터넷 미리보기로 읽고 쓴 것이다. 그는 이 책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덕분에 괜찮은 단독주택을 얻었다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기쁨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황석영이나 최인호의 어느 산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즉 초기작이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려서 자기 집을 마련했다는 것.
맨몸으로 소설을 써서 사회로부터 존경심과 명성을 획득하고, 자가를 마련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아득한 신화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