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6학년... 몇 권되지 않았던 학급문고에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목걸이를 읽게 되었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넘치게 책을 사주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교실에 굴러다니는 동화책 몇 권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삽화와 함께 줄거리를 적당히 초등학생용으로 요약한 다이제스트 판이었는데... 부잣집 딸로 곱게 자란 여주인공 잔느가 결혼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은 체 줄리앙을 만나 결혼을 하지만 그 결혼생활은 남편의 심한 외도로 인해 파탄의 길을 걷게 된다. 그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의지하며 살아가지만...행복은 잠깐이었고~결혼 이후 철저히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잔느를 보며 어린 나이지만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던 것 같다. 몇 번을 빌려서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최초로 책에 관심을 보였던 시기가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집에는 교과서를 제외하고 별반 읽을 거리가 없었던 때 였는데... 어느 날 위인전과 세계문학전집 그리고 내가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셜록홈즈 전집을 한꺼번에 아빠가 구입해 주셨다. 갑자기 대량 구입한 책 때문에 덩달아 책꽃이까지 새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거실에 나란히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얼마나 뿌듯하던지
지금은 내가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사보기도 하고...
그 때보다 훨씬 많은 책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때의 설레이던 마음은 다시 없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작은 아씨들, 비밀의 정원, 소공녀와 소공자...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했던 플란다스의 개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완역본도 아닌 요약본의 책들이지만 그 때는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았던 샘 솟는 즐거움의 원천들이었다.
긴 겨울 방학...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도 여의치 않은 추운 날이 계속되면
하루종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다니며 뒹글뒹글 책을 읽었다. 컴퓨터나 핸드폰이 없어도 지루한 줄 몰랐고...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마이마이 카세트 하나면 충분했다.
오히려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없었으므로...스스로 혼자 노는 방법이나 형제들끼리 어울리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셜록 홈즈 같은 경우에는 내가 먼저 읽은 후, 동생들을 불러 놓고 목소리 크게 읽어주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참 소박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내일이면 아들의 긴 겨울방학도 끝나고 개학날이다. (물론 나에게는 긴 방학이었지만...내일 학교에 가야하는 아들 놈은 완전 아쉬움에 울상이다.)
방학이어도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학원에 다녀야 하는 아들 녀석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이 행복조차 100% 원금 보장은 아니다) 지금의 시간들을 담보로 희생해야 미래의 행복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 널 위해서야
이렇게 말해보지만... 씁쓸하다. 딱히 멋진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아무리 돌려서 말하고, 멋지게 꾸며 말해도... 결론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풍족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적당한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그 때는 결핍인줄도 잘 몰랐다. 다들 비슷비슷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작은 일에 만족했고,
작은 것을 소중히 알았고 행복했다.
연습을 끝내고 늦게 들어온 아들 녀석을 위해 간식을 준비해 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간식을 먹는 동안 잠깐 대화를 나누고... 아들은 게임을 하며 쉰다 ㅠ.ㅠ
더 많이 풍요로워졌고...
더 많이 소유했고...
더 많이 편리해졌지만...
마음은 늘 분주하고.. 뭔가 허전하다.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 잡다한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