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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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감정 속에 허우적거리던 10대 시절, 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를 벗어나면, 멀리 떠나면,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지고 또 안정되겠지, 하는. 학생과 달리 어른은 하루를 오롯이 자신이 계획하고 가꿀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괜찮고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쌓여 울고 웃고 화내고 우울해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기대와는 정 반대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이 더욱 다양해진 데다가, 학생 시절에는 비슷한 감성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들에게 이해를 강요하며 어리광을 부림으로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면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10대 때보다도 더욱 불안정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막연한 기대감이 사라져버린 자리에는 텅 비어버린 하얀 공간만이 남아 나 홀로 서있을 뿐이다.


그런 나이기에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라는 제목은 보는 순간 끌릴 수밖에 없었다. 10대 때 가지고 있었던 그 막연한 기대와 믿음이 훅 하고 떠오르며 '괜찮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답이 이 안에 있을지 궁금했다. 책을 펼쳐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확한 해답은 없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그로 인해 갖게 되는 증상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명확한 대답을 알고 싶다면 책이 아닌 1 대 1 상담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겪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담이 필요하다거나 어떠한 도움이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돌아보게 만들고, 그것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게다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혼자서도 어느 정도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은 우울증, 조울증, 번아웃 증후군, 만성피로 증후군 등 현대에 만연한 문제들에 대해 다루며 각 문제에 대한 사례를 살펴보고, 자가 진단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중간중간 "일요일 오후 1시"라는 두 저자의 질의응답 코너를 통해 보다 내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들려주는 사례가 제법 구체적이라서 각 증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느끼고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는 경우라고 생각했던 조울증이 집을 판 돈을 전부 교회에 헌금하거나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막 나가다가 뒤늦게 우울감에 빠져 벌여놓은 일에 손도 대지 못하는 등의 극단적인 상황까지 만드는 위험한 증상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 수 있었다.


또한 각 증상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가 진단으로 확인을 해보기도 하고 내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해결 방법을 보다 꼼꼼하게 읽으며 메모를 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심리학 서적 중에서는 사례와 분석 위주로 된 것들이 많은데, 그런 책들은 앎과 공부의 목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쉽게 읽히지 않고 거리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잘 읽는 편이 아니고 또 읽더라도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의사인 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들려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읽기 편하고 기억에 남는 부분도 많았다. '의사들도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책 전반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고 그만큼 마음에 와닿고 공감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른이라고 다 괜찮지 않으며, 오히려 어른이기에 더 힘들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세심하게 돌보고 가꾼다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이 책은 이 당연하지만 잊어버리기 쉬운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들어주었다. 불안정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다른 딱딱한 심리학 서적보다 말랑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책이자, 감정에 휩쓸려 어쩔 줄 모르고 있다면, 원인 모를 우울함과 무기력감에 허덕이고 있다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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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요가 - 낮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시간
산토시마 가오리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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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나만의 좋은 습관 만들기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웠던 계획들이 삼일은커녕 단 이틀 만에 먼지가 되어버리는 것을 보며 후회하기를 수십 번. 좀 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것부터 해 보자고 마음먹은 것이 시작이었다.


막연한 계획보다 구체적인 습관을 들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며 시도해볼 만한 좋은 습관에 대해 찾아보고 그것을 내 걸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을 보냈다.  물론 막연하든 구체적이든, 확실하든 모호하든 무언가를 시도하고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실패와 도전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시작하고 반성하고 다시 시작하고 반성하기를 계속하고 있을 정도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와중에 몇 가지는 습관은 무사히 일상에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요가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또 매일 아침 눈을 떠서 가벼운 요가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책 <밤의 요가>에 나오는 것을 십분 활용해서 말이다.


책의 작가는 대학생 때 요가를 만나 오로지 이 하나를 위해 미국과 인도까지 갔다 온 이력의 소유자. 그만큼 요가에 능통한 데다가 10년가량의 강사 경험이 있어서인지 책은 쉽게 읽고 따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요가'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낯섦으로 인해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독자들도 마음을 편하게 놓을 수 있도록 책 초반에 '이 책의 사용법'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준다.


작가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우리에게 왜 요가, 즉 휴식이 필요한지 들려주고 먼저 가장 기본이 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호흡에 대해 알려준다. 기본 호흡부터 복식호흡과 4-7-8 호흡, 교호 호흡까지 각 호흡 방법에 대해 얘기해주는데, 호흡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정도였다. 이걸 다 외워서 습관처럼 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책에 적힌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따라 했지만 다행히 반복을 통해 몸과 머리에 기억할 수 있었다. 이후부터는 책 없이도 생각날 때면 의식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출근 준비를 하다가 한 번, 일을 하다가 한 번, 저녁식사를 준비하다가 한 번.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다 보니 호흡은 의식해서 하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 휴식을 누리는 것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조용히 안정된 곳에서 편안하게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일상에서 습관처럼 호흡을 가다듬으며 리프레시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은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요가다. 몸을 유연하게 만들거나 몸매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 낮 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부드럽게 풀어내도록 하는 밤의 요가. 작가는 경직된 몸과 마음을 풀고 수면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밤의 요가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준다.


재현 사진과 함께 여러 동작들에 대해 알려주는데 편안함이 중심인 만큼 과도한 움직임이 필요한 동작은 없다.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서기도 하면서 부드럽게 자신의 호흡과 몸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몸이 뻣뻣한 사람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우면서 자연스럽게 몸도 마음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신기한 동작들이다.


그 덕에 어렵다고 넘기는 일 없이 총 15개의 동작 모두를 책을 보며 몇 번씩 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모든 동작을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기에 그중 쉽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 몇 개를 골라 이 책 외의 다른 곳에서 알게 된 동작들과 섞어 아침과 밤 모두 할 수 있는 나만의 요가를 정했다. 맞춤형인 만큼 늦잠을 자거나 깜빡하고 바로 잠들어버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하면서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나만의 좋은 습관 하나가 만들어졌다.


보통의 요가 책이라면 호흡과 요가를 가르쳐 주면 끝이겠지만, 이 책은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간다. 호흡과 요가 둘 외에도 하루를 좀 더 즐겁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좋은 생활습관 몇 가지를 얘기해주는 것이다.


크게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져 각 때에 어울리는 습관들을 정리해놓았는데, 언뜻 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 적용하면 제법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다. 일상에 녹아있는 습관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일명 소확행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밤의 요가>는 실용서와 에세이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것 같은 책이었다. 실용성과 재미 둘 다 갖추고 있어 공감하며 읽다가 책을 따라 호흡하고 요가하고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책 자체도 가볍게 잘 읽히는 데다가 담겨 있는 내용, 호흡과 요가 동작, 생활습관도 부담 없이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들이라 더욱 좋았다.


1월에 이 책을 만나 참 다행이랄까. 덕분에 새해에 아침과 밤 요가라는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일상에 지칠 때면 한 번씩 꺼내보며 나만의 습관을 떠올리고 또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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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나라의 앨리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8
루이스 캐럴 지음, 김민지 그림, 정윤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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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토끼, 모자장수, 체셔 고양이, 하트 여왕. 더 할 것도 없이 딱 여기까지만 말해도 대부분 손바닥을 치며 외칠 것이다.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회중시계를 보는 하얀 토끼를 따라가다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된 소녀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원작 소설은 물론, 원작을 바탕으로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미디어로 재탄생되어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더라도 앨리스라는 이름, 그리고 소녀의 기묘한 모험 이야기는 대부분 한 번 이상 들어봤을 정도다.


그에 반해 소녀의 두 번째 모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에 이어 거울 너머에 있는 거울나라에서 한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한 모험을 즐겼다는 것은 첫 모험의 위상에 비해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하얀 토끼를 보는 순간 망설임 없이 곧장 그 뒤를 따라갔던 호기심 많은 소녀가 그 한 번의 모험으로 만족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오히려 더욱 독특하고 멋진 모험을 했다면 모를까, 단 한 번의 모험으로 끝났을 리가 없다.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기에 소녀의 두 번째 모험 이야기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보았을 때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책의 초반, 호기심 많고 상상력 좋은 앨리스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 키티에게 거울 속의 집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집 거실과 똑같이 생겼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인 거울 나라는 앨리스의 관심 대상으로 거울 속 벽난로는 불을 피울 수 있는지, 거울 너머 보이지 않는 복도는 어떻게 생겼는지, 그야말로 궁금한 것 투성이다. 앨리스는 키티를 붙잡고 하나하나 호기심을 표하고, 우연찮게 안개처럼 변한 거울 속으로 쏙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앨리스의 모험은 첫 번째 모험만큼이나 신비롭다. 소녀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붉은 왕과 여왕을 도와주고, 말하는 꽃들과 대화를 나누고, 차표 없이 기차에 탔다가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첫 번째 모험에서 만났던 인연들과 재회하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을 가지기도 하면서 지난번과 유사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하얀 여왕 붉은 여왕 같은 앨리스 여왕이 되어 기념 연회를 열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통통 튀는 모험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꿈과 희망이 가득 찬 신나는 모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기대를 갖고 이 책을 본다면 실망하기 쉽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원작으로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앨리스의 모험은 사실 '신비'보다 '기묘'에 가깝다는 것을.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사라져서 백지화되기도 하고, 이해 못 할 대화들이 오고 가며, 생각할수록 무서워지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소녀, 아니 7살(!) 꼬마 숙녀의 이야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묘하다. 독특한 상상력과 예상치 못한 전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더해져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곱씹어 볼수록 팀 버튼 감독의 영화의 그 음울하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생각난다.


게다가 앨리스의 모험은 늘 다양한 말장난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대화를 청한(address) 사람을 묻는 말에 숄을 걸쳐준(dress)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라고 답하는 등 철자를 이용한 말장난들. 첫 번째 모험의 계보를 이어 두 번째 모험에서도 계속해서 여러 가지 말장난들이 나온다. 나름대로 코드가 맞는다면 재미있는 요소로 읽힐 수 있을 테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마저도 기묘한 분위기로 읽힌다. 대화에서, 이야기 전개에서, 나도 모르게 흠칫하며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런 묘한 분위기 자체가 이 책만의 독특한 매력이기에 첫 번째 모험에 이어 두 번째 모험도 그 나름대로 즐길 수 있었다. 신선한 이야기와 분위기, 예쁘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그리고 호기심을 안고 거울나라를 모험하는 앨리스의 귀여운 상상력 덕분에 제법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끝으로 책을 읽고 난 후 외출 준비를 하다가 거울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것은 이 책으로 인해 얻은 소소한 재미 중 하나랄까. 난해하지만 통통 튀는 매력의 책 덕분에 일상 속에서 작은 모험을 누릴 수 있게 됐으니,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책의 존재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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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 나의 일 년 - 질문에 답하며 기록하는 지난 일 년, 다가올 일 년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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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12월이 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벌써 연말이네. 언제 이렇게 됐지? 시간 참 빠르다. 올해는 한 게 없는데."


돌이켜보면 한 해도 빠짐없이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말을 하며 지난 일년을 함부로 보낸 것에 후회하곤 했다. 내년에는 좀 더 알차게, 의미 있게 보내야지 하는 다짐도 그때뿐. 새해가 시작되면 작심삼일은커녕 작심 일일 만에 모든 의지는 가루가 되었다. 그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만약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난 일 년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꼼꼼하게 내년을 계획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떨까. 올해는, 그리고 내년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이 책 <자문자답 나의 일년>을 발견하고 난 후였다.


팬톤이 뽑은 2018년 올해의 색이라는 보라색 커버에 당신의 1년은 헛되지 않았다고, 하나씩 되새겨보면 기억에 남을 멋진 한 해였다고 말하는 것 같은 띠지. 첫인상부터 제법 매력적인 책은 연말이 됨과 동시에 또다시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고 있는 내게 여백이 있는 질문을 던져왔다. 막연하게 올해는 어땠는지 묻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당신의 일년이 궁금해요'라고 말하는 듯 하나하나 세심하게 물어와 자연스럽게 나 역시 곰곰이 생각해보고 꼼꼼하게 답하게 만들었다.


올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나 올해 나의 인생 그래프 그리기처럼 전체적인 것부터 시작해 1월 1일에는 어디서 무엇을 했었는지, 연초의 계획은 무엇이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등 시간을 들여 생각해야 하는 것들까지, 다양한 질문들 덕분에 지난 1년을 차분하게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고생하고 있는 다리 골절 때문에 다른 무언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시간을 다 버렸구나'라 여기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자문자답하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지 2018년은 내 생각보다 더욱 다사다난했고, 문자 그대로 좌충우돌한 한 해였다. 굵직굵직한 것만 생각해도 취직, 졸업, 골절 등 큰 사건들이 여럿 있었고 그 사건들로 인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꼈다. 평생 다시없을 배움과 깨달음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단지 시간이 가진 망각의 힘에 떠올리지 못했을 뿐.  만약 이 책을 통해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그대로 잊혀져 그저 그런 한 해, 함부로 보낸 시간이 되었을 터였다.


게다가 올해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이나 함께해서 좋았던 순간, 올해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 등 소소하면서도 떠오르는 순간 미소 짓게 되는 질문들 덕분에 현재의 불행과 불만에 대한 생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올해는 악재야, 나쁜 일이 많았어'라는 생각이 '그래도 좋은 것들도 있었어. 나름 괜찮았어.'라는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년을 돌아보고 난 뒤에는 앞으로 새롭게 시작될 한 해를 준비하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2단원 역시 1단원과 마찬가지로 막연하게 내년 계획을 묻는 대신 섬세한 질문을 통해 현재의 나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좀 더 명확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거기에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부록까지. 이번 한 번의 정리와 계획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히 나의 일년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구성이 마음에 쏙 들었다. 시간을 들여 추가해나가고 싶은 부분들도,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변해야 하는 부분들도 많이 있어 한동안은 책을 펼쳤다 닫았다를 반복할 것 같았다.


여백 위를 한 줄 한 줄 힘주어 채워 넣으며 차곡차곡 내 안을 쌓고 의지를 다질 수 있었던 시간. 제법 많은 시간이 들었고 또 들 예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아깝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년에 한 번이 아니라 이 책과 함께 꾸준히 나의 삶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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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보겠습니다
니시다 데루오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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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든 어른이든, 혼자 사는 삶이란 쉽지 않다. "필요해요" "부탁해요" "감사해요" 이 세 마디면, 아니 굳이 말할 필요 없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챙겨주는 누군가의 배려와 함께 살다가 혼자가 되어 살고자 하면 모든 것이 고단하고 힘들고 괴로운 법이다.


처음에는 '혼자가 편해' 혹은 '혼자라서 좋은 점도 있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연한 수순으로 그 생각을 후회하게 된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 먹을 밥 한 끼, 간식 하나, 물 한 잔도 먹거나 마실 수 없고, 매일 필요한 양말과 속옷은 순식간에 빨랫 바구니를 채우며, 방바닥에는 탈모가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쌓이게 되는 상황. 살고자 한다면 움직여야 함을 처절하게 깨닫는 것이다.


사지 멀쩡하고 체력 좋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으로 부풀어 있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혼자 살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조차 쉽지 않은 혼자 살아가는 삶. 그 삶을 만약 몸이 불편하거나 체력이 없거나 또 그다지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는 사람이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너저분한 공간에서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것이 전부인 사람, 당장 죽더라도 아무도 모른 채 지내다 악취로 인해 겨우 그 죽음을 알리게 되는 사람, 그 외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운 빠지는 모습들이 연상된다.


여기에 혼자가 되는 과정이 결코 바라지 않았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과 동시에 일어난다면? 자신도 모르게 "최-악-"이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보겠습니다>는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흔의 나이에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를 병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어버린 작가가 직접 그 힘든 시기를 지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차분하게 적어나간 기록이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책에서는 80세라고 이야기한다) 일흔도 안 된 아내가 남성인 자신보다 먼저 갈 것이라고는 작가도 아내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아내는 병을 확인하고 대략 일 년 반 정도가 지나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일 년 반 동안 아내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홀로 남을 남편을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작가는 혼자 살아가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우지만,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 혼자 사는 삶이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의 먹을 음식을 만들고, 세탁을 하고, 집을 치우는 것도, 기준에 맞춰 쓰레기를 분리하고 버리는 것도, 계절마다 옷을 찾아 입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올 충분한 시간도 없이 곧바로 혼자 살아가는 삶에 직면해야 했다. 충분히 슬퍼할 시간도 갖지 못했다.


수많은 추억을 새기면서 함께 살던 집에 홀로 남아 그 흔적과 추억을 되새기며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는 삶이란 얼마나 서글플까. 상상만으로도 슬픔이 밀려오는 그 상황을 작가는 오롯이 겪어야 했다. 기쁨도 슬픔도 나눌 상대가 없어졌음을, 그로 인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음을 기록하는 글에서 느껴지는 상실감은 나를 슬프게 했다. 이별 후 남은 이의 심정과 상황을 말하고 아내를 그리는 책의 초반부에서는 공감과 안타까움 먹먹함 등 여러 감정과 함께 읽어나갔다.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밀려드는 일상의 무게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자신의 생활을 시작하는 모습 역시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큰 감정은 공감으로,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나 역시 자취를 하면서 혼자 사는 삶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기에 직면했던 어려움과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떠올리며 혼자 사는 삶의 막막함과 어려움에 깊이 공감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주는 사람(작가의 경우 아내, 내 경우 엄마) 없이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은 크고 작은 문제와 함께 조금씩, 정말 조-금씩 나만의 틀을 잡아가는 지난한 과정임을 알기에 이따금 '에이. 그건 아니지'하면서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고개를 저을 때조차도 내가 작가와 같은 상황이라면, 예를 들어 지금이라도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여러모로 스스로가 버거워지는 나이라면, 같은 생각이 들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사고로 오른발 뼈가 부러져 수술을 한 탓에 혼자서 뭘 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요즘이기에 더더욱.


그러한 상황에서도 어렵게나마 자신의 생활 리듬을 찾아가고, 그 힘든 여정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기록한 작가의 노력 덕분에 나는 이 책을 만나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공감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면서 타인의 소중한 이야기를 읽은 시간, 가슴에 먼저 와닿아 꾹꾹 눌러 담은 문장들, 현재를 되돌아보며 그려본 미래 같은 것들. 여러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 사랑을 그저 받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소중히 기록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사랑을 나눠줬고, 그 사랑을 받은 나는 그 안에 담긴 온기 덕분에 몽글몽글 좋은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 다시없을 소중한 이를 그리며 그 이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걸까.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 삶에 마음 깊이 감사와 응원을 보냈다.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보겠다는 그의 다짐처럼 나 역시 지금보다 더 잘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사람에 따라 공감 대신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괜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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